키가 얼마나 자랐는지 보여주는 오래된 벽의 눈금처럼, 덜 자란 나의 앞에 우리가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는 걸 깨닫게 해 주는 네가 있다. 돌아보면 발자국은 꽤 길었고 그 때마다 잘 버텨 왔다며 쓰다듬어주는 네가 있어 안심이었다. 나 역시 작은 키로 너의 머리를 매만진다. 너의 머리는 참 동글동글해서 만질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 그저 이 순간들이 보기 좋게 차곡차곡 쌓여서 너와 내가 무사히 어른이 된다면 좋겠다. 나이가 들어서도 옆자리를 지키는 당연한 짝꿍이 된다면 좋겠다. 2인 초대권을 받았을 때 누구와 함께 가야 하는지 고민하지 않아도 자동으로 네가 내 옆에 앉아 있었으면 좋겠다. 그 모든 게 선택 옵션이 아니라 기본 설정이었으면 좋겠다. 좋겠다 좋겠다 주문을 외우듯 내뱉었던 부푼 꿈. 그러나 그 모든 바람이 이제는 사라지고 없다. 누군가 툭 하고 무심히 터트리고 도망간 것처럼. 원래부터 없었던 것처럼.
우리가 아무 살갗도 닿지 않았던 어느 밤, 순정을 가진 사람처럼 가만히 앉아 있던 하이 로우 토토 사이트 꼿꼿함에 나는 또 한 번 무너졌다. 우리는 조금도 닿지 않았지만 나는 그 날 너를 몇 번이나 안아주고 돌아왔다. 너를 안지 않았음에도 충분히 쓰다듬을 수 있었다.
절대로 나를 곁눈질 하지 않는 너의 순수함에 멋대로 솔직해지는 내가 있었다. 그런 너를 졸업한 나에게도 졸업장이 있을까. 상장의 한가운데에 적힐 말들을 상상해 본다. 가장자리에는 금빛으로 빛나는 테두리도 있을까. 야속하게도 끝까지 내 이름은 호명되지 않았다. 너를 개근하지 못한 나는 타에 모범이 되지 못해서 유급되었다.
언제나 내 옆에 있던 너를 생각한다. 자는지 묻고 싶은 마음도 보고 싶다는 말도 모두 이불로 덮는다. 아주 조금만 나랑 걸어줄래, 너의 집 앞에서 몇 분만 얼굴을 마주칠까, 오늘은 몇 시에 끝나. 그런 질문들은 삼키기에 적당한 크기고 목구멍도 그만큼 늘어나 있다. 나는 소리가 나오지 않는 공간만큼을 늘 빈 칸으로 둔다. 너라는 졸업장에 차마 인쇄되지 못했던 나의 이름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