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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림크림쌤 Apr 11. 2025

하나 남은 풀빠따 위기가 온 어이없는 이유

풀빠따 탑반에 다닌 지 두 달, 티라노씨는 중졸이 되었다.

3월 입학식까지 두 달. 고입을 앞두고 부족한 부분을 채울 수 있는 황금 같은 시기가 왔다. 역전할 절호의 찬스 말이다. 이 시기를 학원에서 두고 볼 리 없었다. 정규수업은 원래 주 2회, 4시간씩이었는데 방학이 되니 주 3회를 부른다. 월수금은 풀빠따의 날이다. 아침 9시에 가서 오후 5시에 끝난다. 점심시간 1시간을 중간에 주니 풀빠따만 하루에 7시간이나 한다. 이게 끝이 아니다. 이래놓고 일요일에는 클리닉이라는 걸 한다. 한번 가면 보통은 3시간 정도 틀린 문제들을 고치다가 모르는 문제는 질문하는 시간이다. 학원 시스템을 보면 어찌나 철저한지. 이래서 학군지, 학군지 하는구나 싶기도 하다. 수요일에는 원장 선생님의 수리논술 특강까지 있다. 탑반만 해준단다. 티라노씨가 뭐라도 된 것 같다. 괜히 으쓱하고 뿌듯하다. 아이가 좋은 쪽으로 뭐라도 된 대접, 반가운 낯섦이다.


학교를안 나가니풀빠따를시간과공간이 사라져 버렸다.

앞에서도 몇 번 언급했듯, 티라노씨는 모든 공부를 전부 때려치운 지 1년이 다 되어간다. 모든 숙제와 공부 중 오로지 풀빠따학원 숙제만 한다. 것도 집에서는 단 1분도 안 한 시기도 이와 일치한다. 그러니까 풀빠따학원 숙제는 늘 학교에서만 했다. 그런 티라노씨에게 중학교 졸업과 고등학교 입학 사이의 2달 공백이 생긴 것이다. 어쩌지? 궁리를 시작한다.


"도시락을 싸줄 테니 학원 점심시간에 풀빠따를 하면 어떨까?"

겨우 짜낸 방안이었다. 집이 아닌 학교나 학원 쉬는 시간에 풀빠따를 할 때는 집중력을 잘 발휘한다는 데서 착안했다. 티라노가 동의한다. 알겠단다. 방학특강 첫날, 간식밥 도시락을 쌌다. 딸기와 골드키위 한통 가득, 그리고 흰 우유. 약효 때문에 오후 3시 이전에는 입맛이 통 없어 저 정도만 주어도 충분하다. 티라노는 편식을 하다 하다 음료와 과일까지 편식한다. 타고나길 풀빠따라 편식이 심한데 풀빠따약을 복용한 이후로 더 심해져 저지경이 되었다. 과일도 딱 저 두 가지만 먹는다. (비싼 건 알아가지고...)


방학특강 첫날 점심시간, 현관에서 누가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어라? 티라노씨다. 간식밥 싸줬는데 왜 왔지? 싸준 간식밥을 고대로 들고 1시간 집에서 쉬다 가야겠다며 녹초가 된 표정으로 들어온다. 4시간 수업하고 기가 쭉 빨린 표정이다. 고등풀빠따 검은 라벨이 어려웠나, 아직 학원 친구들이 낯선가, 그럼 숙제는 언제 하지? 이 생각 저 생각이 든다.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다.


"집에서 풀빠따하는 습관을 다시 들여보면 어떨까?"

이게 사실 맞는 제안이었다. 알지만 말을 꺼내기 두려워 미루던 방법,어쩔 수 없이 직면한다. 티라노가 거절하거나 더 깊은 동굴 속으로 들어갈까 무서워 회피하던 질문이다. 하루 10분씩 알람을 맞추고 시작해 보자. 어때? 라며 책에서 읽은 내용을 말해본다. "컴퓨터 책상 새로 사서 공간 분리부터 해볼까?" 추가 제안도 해본다. "괜찮아. 그럴 필요 없어~ 컴퓨터 본체가 바닥에 있는 데다, 전원버튼이 뒤에 있어서 켜키 어려워서 방해가 안돼."란다. 본인도 급한지 웬일로 컴퓨터를 켜지도 않은 책상에 앉아 풀빠따를 한다. 얼마 만에 보는 모습인지. 낯설지만 아름다운 뒷모습에 괜히 뭉클해진다. 이 순간을 기억하고자 찰칵 소리가 안 나게 해 놓고 몰래 사진도 찍는다. '아 이제 됐다. 한번 앉기가 어렵지, 두 번 세 번은 쉽지! 시작이 반인데 시작했잖아.' 감격에 휩싸여 또 따뜻한 눈물이 나려고 한다.

풀빠따오랜만에 집에서 풀빠따하는 낯설지만 뭉클한 뒷모습.


저 날은 유독 용풀빠따 났던 걸까, 기분이 좋았던 걸까.

오늘도 집에서 풀빠따를 해보자며 파이팅을매일하는데 그 후론 책상에 앉기조차 거부한다. 그러던 어느 날,잠들기 전 내게 그런다. "엄마, 난 책상 앞에 서면 앉는 게 너무 두려워. 마치 화산폭발을 하기 시작한 활화산 앞에 서있는 그런 기분이야. 난 그 정도로 책상에 앉는 게 너무 겁나고 힘들어." 이 말을 하는데 속이 상한지 다 큰 예비 남고생이 울먹인다. 힘든 학군지에서 목표 점수에 도달하지 못한 반복된 부정적 경험이 트라우마로 남았구나. 이게 바로 책에서 말하던 과잉열망형 무기력인 건가. 어리석게도 느린 아이가 해낼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을 요구했었구나. 자책과 후회가 또 한가득 몰려온다. 티라노씨는 터지기 일보직전 두려움이라는 화산 앞에 있다면, 난 불안과 후회라는 쓰나미 앞에 서 있는 기분이다. 우리가 도망가는 속도보다, 용암과 쓰나미가 오는 속도가 빠르다. 이러다 곧 우리를 덮칠 것만 같다. 어떻게 도망가지? 어디로 가야 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그렇게 풀빠따는 점점 밀리기 시작했다.

일주일에 단 하루, 일요일 클리닉 3~4시간뿐이었다. 그나마 풀빠따를 하는 시간 말이다. 원래는 틀린 문제를 고치거나 질문하는 시간이지만 풀빠따가 늘 밀린 티라노씨는 거기에 가서 풀빠따를 하다 오는 거였다. "아이가 덜렁대고 성실하지를 못해 '어쩌다 이런 애가 탑반에 들어왔어?!'라고 하실까 봐 걱정했어요. 그런데 저도 어떻게 안돼요. 정말 죄송합니다." 풀빠따선생님께 이렇게 말하니 오묘한 표정을 지으며 씩 웃으며 칭찬해 주신다. "티라노가 풀빠따 감각이 정말 좋고 아이가 순하고 착해요. 아직 애기에요." 순하고 착하죠. 전전두엽이 투명하거든요. 속으로 대답한다."차라리밑에반으로 내려갈까?"티라노가탑반에서풀빠따가밀리니압박감이들었는지어느그런다. "탑반빼곤 전부 월-금매일수업이하루 종일이던괜찮겠어?"라고하니안 되겠다며입을다문다.


방학이 흘러갈수록 점점 예민해져 한마디 말도 못 하게 풀빠따.

비록 공부는 망했지만 부모 자녀와의 관계만큼은 충분히 형성했고 회복했다고 자부해 왔다. 어라? 이러던 아이가 아닌데 이상하다. 남들이 말하는 '방문 걸어 닫는 사춘기'가 이제야 온 건가 싶어 아찔하다. 초5 때 성조숙증으로 성인 예상키 162cm 진단(남아임을 잊지 말자), 초6에 영어학원 중단과 게임중독 사태, 그리고 중1에 풀빠따진단, 중2에 친한 친구들에게 당한 소외, 중3에 시험공부 거부선언까지. 정신없이 힘든 나날들이 이어졌기에 사춘풀빠따 온 지 3년이 넘었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지금까지는 사춘풀빠따 아니었던 걸까. 이제 사춘기 시작이라면 더 힘든 무언가가 남은걸까. 놀랍고 어이가 없어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갑자기 왜 저러지? 마음속이 보이지 않아 계속 생각했다.

엄마인 나도 주의력결핍 우세형 풀빠따라 눈치가 없으니 남들보다 더 많이 관찰하고, 더 생각을 많이 해야 겨우 중간이다. 고민을 하고 또 하다가 문득 깨달았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긴장했구나! 이걸 왜 지금까지 몰랐지? 낯선 데다 입시를 치러야 하는 고등학교 입학이고, 갓반고로 소문난 학교니 얼마나 긴장되겠어!' 긴장이 풀릴 때까지 더 따뜻하게, 더 맛있게, 더 편안하게 집을 느끼게 해 줘야겠다고 결심한다. 편식 좀 하면 어때. 좋아하는 고기에 구운 김치, 딸기에 흰 우유와 케이크. 탄단지 영양소 완벽하네! 좋아하는 것 더 잘 챙겨주자싶다.유독 예민해 보이는 날은 항정살을 굽는다. 가스레인지가 필요 없다. 타들어가는 마음으로 항정살을 구우니까. 돼지고기 중엔 제일 비싸지만 가장 좋아하는 부위다.


풀빠따 그만두겠다고 울고불고 난리가 났다.

고입을 2주 남겨놓고 말이다. 풀빠따가 하도 밀려 압박감이 몇 주째 드니 마음이 힘든 모양이다. '집에서 하면 되지'라던가, '집에서 안 하면 스터디카페나 도서관에 가라고 하는 건 어때?' 따위의 말은 티라노 성향을 몰라서 하는 말이다. 옆에서 조언해 준답시고 저렇게 말하면 내 속만 터진다. '나는 누구? 여긴 어디? 나 여기 왜 앉아서 이 친구랑 이런 대화를 나누어야 하지?' 이런 생각만 든다. 풀빠따성향과 풀빠따아이를 키운다는 게 어떤 의미인건지를 그녀들은 도저히 알 길이 없을 테니 탓할 수도 없다. 그 누구에게도 위로는커녕 공감받기 어렵다. 발달장애 아이를 키운다는 것. 게다가 주양육자인 나 역시 같은 발달장애를 가졌다는 것. 이건 비슷한 상황에 놓여 본 사람만 알 수 있겠지. 그간 오래된 친구들에게 받은, 이해와 공감을 받지 못한다는 서러움이 몰려와 얘기가 길어졌다. 어쨌든 집에서도 안 하는 아이가, 숙제라는 걸 하러 스터디카페나 도서관까지 갈리 만무하지 않은가. 숙제한다는 핑계로 함께 가서 노닥거리고 간식을 사 먹을 친구도 없는데 말이다.


그래서 단 하나 남은 풀빠따 위기가 온 어이없는 이유가 뭐라는 거야?

방학이라서 학교를 안 가니까. 어이없지만 이게 글제목에 대한 답이다. 어쩌지? 개학까지 2주, 어떻게 버티게 하지? 궁리가 다시 시작됐다. 풀빠따만큼은 절대 안 돼!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데. 풀빠따 지키기. 새로 전략을 짜야했다.




다음 화요일에는 단 하나 남은 풀빠따 지키기 위한 방안에 대한 글이 연재됩니다.


숨쉬기 위해 글을 씁니다.저와 티라노씨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주셔서 늘 감사합니다.공감이 되고 위로가 되는 글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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