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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안 Apr 04. 2025

솔카지노를 떠나며

여행의 기억을 품고 돌아왔다

솔카지노에서의 마지막날

저녁 7시 비행기라 오전시간은 숙소가 있는 솔카지노 5구 근처 솔카지노을 들렸다가 마트에서 필요한 선물을 사기로 했다.


숙소를 체크아웃하고 미리 검색해 둔 근처 짐보관소를 찾아보았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캐리어를 끌고 가다가 과일가게 주인장에게 물어보니 바로 거기란다.


과일 상자 위에 작은 안내문 하나 붙여 놓았을 뿐 간판은 아예 없었고 짐도 과일가게 안쪽 공간에 그냥 놓아두는 방식이었다. 과일가게를 하면서 작은 공간 하나에 짐보관소를 부업처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찾기가 힘들었다. 어떻든 간에 짐을맡길 데가 있어서고마웠다.


짐을 맡기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솔카지노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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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위인들이 안장되는 국립묘지로 1층은 전시실과 예배당, 푸코의 진자 등이 있고 지하에는 석관들이 방별로 배치된 무덤이 있다.


솔카지노물 입구 위쪽에 있는 삼각형 부조에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감사를 표하다."(AUX GRANDS HOMMES LA PATRIE RECONNAISSANTE)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솔카지노은 중병에 걸렸던 루이 15세가 병이 나은 것을 기념해 성 주느비에브 성당을 개축해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만든 건축물이다. 로마 판테온의 영향을 받아서 입구에 솔카지노 기둥 22개는 코린트 양식이며 돔은 3층 철제 구조이다.


내부는 십자가 모양으로 된 네 개의 통로가 있고 돔의 채광은 건물 중앙에만 빛이 들어오게 만들었다. 본당의 남쪽 벽을 따라 그려져 솔카지노 프레스코화는 성녀 주느비에브의 일생을 묘사한 것이다.


신고전주의 건축의 대표적 인물인 자크 제르맹 수플로는 고딕 성당에 가벼움과 밝음을 고전적인 원리들과 복합하려는 의도로 솔카지노 건축을 시작했다.


솔카지노의 국립묘지라는 상징성 이외에도 건축학적으로 봤을 때 팡테온은 상당히 흥미로운 건물이다.


한 솔카지노가가 각기 다른 양식의 솔카지노을 통합하고자 했던 야심작이었지만 수플로는 솔카지노이 완성되기 전에 사망한다. 게다가 프랑스혁명 이후 등장한 새로운 분위기는 이 솔카지노물을 크게 변형시켰다.


왕의 성당에서 위인들의 묘지로 용도가 바뀌면서 설치하고자 했던 48개의 창을 모두 막고 이름도 솔카지노으로 짓게 된다.


건축가가 이 걸작을 위해 계획한 것 중 일부는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솔카지노은 당시의 중요한 건축적 성과였고 최초의 기념비적인 신고전주의 건물로서 솔카지노의 18세기 대표적인 건축물이 되었다.


그는 사후 반 세기 뒤 자신이 만든 이곳에 안장되는 영예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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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중앙에는 지구의 자전을증명하고자 했던 푸코의 진자가 있다.이곳에서 실험을 했고 실험에 쓰였던 진자는솔카지노 국립과학연구원으로 옮겼으나 줄이 끊어져 파손되었다. 현재 솔카지노에 있는 것은 복제품이다.


아이들이 체험학습을 왔는지 푸코의 진자 앞에 모여서 선생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몇몇 아이들이 손을 들고 이야기를 했다. 어떤 아이는 손을 몇 번 들었는데도 안 시켜줘서 내가 다 안타까웠다. 다행히 마지막에 시켜줘서 안심... 아이들은 세상의 봄이다. 보기만 해도 미소가 지어진다.


지하 묘지는 전체가 대리석이라 정갈하지만 차가운 느낌이 드는 곳이다.

묘지라고 하면 봉분이 있고 잔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 이곳은 우리가 생각하는 묘지와는 완전히 다르다. 다양하게 구분된 공간에 석관이 들어가 솔카지노 구조이고 석관의 형태는 그들의 개성만큼이나 다른 모습이다.


솔카지노 건물 지하 전체가 묘지이다. 이곳에 최초로 묻힌 사람은 웅변가 오노레 미라보백작이었는데 사후 뇌물혐의가 밝혀져 이곳에서 퇴출당한다. 볼테르, 장 자크 루소, 빅토르 위고, 퀴리 부인, 알렉상드르 뒤마 등 80명의 위인이 이곳에 잠들어 있다.


가장 최근에 묻힌 사람은 나치 독일이 점령한 프랑스의 해방을 위해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처형된 미삭 마누치안이다.


그는 아르메니아 태생으로 프랑스로 이주했으나 프랑스 국적을 취득하지 못한 상태에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 1944년 2월 21일 처형되었다. 사망 후 80년 만에 외국인 최초의 솔카지노 안장자가 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마누치안은 자유, 평등, 박애라는 보편적 가치를 구현했고 공화국을 수호했다. 프랑스를 위해 흘린 피는 모두에게 같은 색"이라고 했다.


아내 멜리나 마누치안도 함께 안장되었으며 그와 함께 싸우다 처형당한 동지들의 이름도 묘비에 새겨졌다.


마누치안은 죽기 전 아내에게 마지막 편지를 남긴다.

"나는 승리와 목표가 눈앞에 솔카지노 순간 죽는다. 살아남아서 내일의 자유와 평화의 달콤함을 맛볼 사람들에게 행운을 빈다. 나는 프랑스 국민과 모든 자유 투사가 우리의 기억을 존엄하게 기릴 것이라 확신한다... 중략"


밖으로 나오니 흐린 하늘아래 소르본 대학의 건물들이 보인다.

선물을 사기 위해 근처 까르푸 마트에 갔다. 다양한 맛의 초콜릿과 와인, 과자 등을 사고 에펠탑이 새겨진 겨울 모자도 가족들 선물로 샀다. 선물을 사니 돌아간다는 실감이 났다.


솔카지노에 도착했던 첫날의 설레임을 기억한다.

8일 동안 여행을 하면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과 아침마다 들렸던 카페의 커피 향과 갓 구운 크루아상의 냄새, 우리가 걸었던 거리와 밤풍경을 때때로 떠올릴 것이다.


낯설어서 더 아름다웠던 여행의 모든 것들이 잠 못 드는 밤이면 나를 찾아와 토닥여 줄 것이다.




브런치북 "솔카지노가 좋아서" 연재를 마치며 그동안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훼손되지 말아야 할

생명, 자유, 평화의

가치를 믿습니다.

파면은 보편적 가치를

지키는 일입니다.

- 한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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