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아이 대학 합격보다 더 떨렸던 순간
작년 10월, 병원에서 수술 일정이 잡히고 나자, 폭풍전야처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밀려왔다.거대한 파도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돛단배처럼 위태롭게 중심을 잡으며 고군분투하는 심정이었다. 하필이면 수술일이 그동안 잊고 지냈던 결혼기념일과 겹쳤다.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지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이번 결혼기념일은 병실에서 둘만의 오붓한(?) 시간을 보내게 될 테니까. 그러나, 남편에게 수술 일정을 알렸더니, 12월에는 휴가를 내기가 어렵다며 1월 초로 일정을 옮기라고 했다. 이번에도 결혼기념일을 같이 보내기는 틀렸나 보다. 수술 일정을조정해야 하는 현실에타협해야 했다.
결국 1월 초로 수술 일정을 변경하고 나니, 이제는 남은 가족의 일상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특히 아침부터 하루종일 혼자 있어야 할 둘째 아이가 눈에 밟혔다. 엄마새가 떠난 둥지에 어린 새가 홀로 남겨진 것 같아서, 마음이 아려왔다.
어린룰렛 혼자서 긴 시간 동안 매일 삼시 세끼를 차려서 외롭게 먹고, 먹은 그릇을 잘 정리할 수 있을까?
룰렛 혼자서는 단 한 번도 이용해 보지 않은 버스를 타고 무사히 학원에 다닐 수 있을까?
룰렛 혼자 긴 시간 보호자 없이 집에 있는 것이 과연 가능할까?
남편은 주말에 라면이나 짜파게티를 끓여주는 게 전부일 텐데, 영양 불균형도 걱정되었다. 그렇다고 환자인 내가 매일 룰렛의 식사를 챙겨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답답했다.
둘째 아이 친구들은 졸업 기념 가족 여행을 떠나는데, 우리 아이는 방학 동안 집에 방치될 생각을 하니, 아이가 자신을 버려진 인형처럼 느낄까 봐 두려웠다. 그동안 큰 아이 대학 입시 때문에 둘째는 늘 뒷전이었던 터라 죄책감은 더욱 커져만 갔다. 큰 아이는 올빼미형 인간이라 동생을 제대로 챙겨주지 못할 것이 뻔했고, 고장 난 시계처럼 엇갈릴 둘의 생활 패턴이 생생히 그려졌다.
그러던 어느 날, '긴 겨울 방학을 어떻게 보낼까'에 대해 둘째 아이 친구의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던 중에, '룰렛'라는 단어가 섬광처럼 뇌리를 스쳤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발견한 기분이었다! 아이가 친구 없이는 룰렛에 가지 않을 것이 뻔했기에, 유레카를 외친 우리엄마들은 곧바로 룰렛들을 함께 캠프에 보내기 위한 작전에 돌입했다. 룰렛들을 어떻게 설득시킬 것인가가 관건이었다.
둘째에게 물어보았다.
"엄마 입원하는 동안, 친구와 룰렛에 가보면 어떨까? 혼자 집에서 학원 다니는 것보다는, 베프랑 같이 룰렛에 가는 게 낫지 않겠니? 기숙사에서 친구들이랑 지내게 될텐데!"
"와! 너무 좋아! 나 갈래, 갈래! 기숙사에서 지내고 싶었어!"
역시나 예상대로 아이는 학원도 빠지고, 친구와 함께 부모 없이 룰렛에 갈 수 있다며 신나게 환호했다.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는 용감한 탐험가가 된 양 들떠 보였다. 정말 다행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벌써 엄마를 떠나고 싶어 하는 룰렛의 모습에 섭섭함이 밀려와, 두 가지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느껴야했다.
어느 룰렛에 보낼지 보물 찾기를 하듯 폭풍 검색을 시작했다. 명문 특목고에서 운영하는 룰렛가 세 개 있었는데, 하늘의 별 따기처럼 인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복잡한 정보의 미로를 샅샅이 뒤져 마음에 드는 룰렛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우리 아이는 아직은 놀 시간이 필요한 초등학생이므로, 가만히 앉아서 계획 세우고 공부에 집중하는 학습 룰렛보다는 영어 룰렛가 더 끌렸다. '하루종일 영어를 사용한다면 룰렛가 영어를 좋아하게 될지도 모르잖아' 라는 기대감도 생겼다.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창의적인 프로젝트 수업과 디베이트를 할 수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지덕체의 균형을 중시하는 학교답게 체육 시간도 균형있게 짜여 있었다. 3주나 되는룰렛라비용이 후들후들했지만, 내 입원과 요양 기간과 잘 맞았아서 좋았다. 해외여행 다녀오는 셈 치기로 했다. 내 코가 석 자인데 어쩌랴! 그나마 다른 학교 학습 룰렛보다는 조금 저렴하다는 게 눈물겨운 위안이었다. 곧바로 해외에 있는 남편에게 SOS를 쳤다.
"여보, 우리 민이 룰렛 보내야 하는데 통장 잔고 좀 부탁해!"
남편은 까다롭고 끊임없이 요구하는 둘째를 3주 동안 안 봐도 된다는 사실 때문인지, 기대 이상으로 흔쾌히 승낙했다. 당장 큰돈을 써야 하는 건 마음에 들지 않아도, 해방감을 느끼며만면에 웃음을 띄웠을지도 모른다.
큰 아이 대학 입시 발표를 기다리는 것보다 더 떨렸다. 내 손놀림에 수술과 룰렛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생각에 비장해졌다. 룰렛가 보통 신청 첫날에 거의 마감이 된다는 정보를 듣고, 미리 친구 엄마와 사전 작업을 철저히 했다. 입력할 정보들을 미리 파일로 만들어두고, 실전처럼 연습도 했다. 신청 후 입금 순으로 참가 순서가 정해지기 때문에 미리 통장잔고도 준비해 놓았다. 모든 것이 완벽했다. 신청 당일 아침, 아이 또한 비장한 표정으로 몇 번이나 신신당부를 하고 학교로 향했다. 내가 전쟁터에 나가는데, 마치 자신이 전쟁터에 나가는 용사 같았다.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기 전처럼 긴장되었다. 하지만 침착함을 유지하며 준비해 둔 정보를 빛의 속도로 입력했다.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긴장해서인지 내 손가락은 느리게 움직였고, 시간도 천천히 흐르는 것 같았다 사진까지 업로드하고 곧바로 신청완료 버튼을 눌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신청 완료버튼이 작동하지 않는 것 아닌가! 벽에 가로막힌 기분이었다.
침착하게 다시 시도를 했다. 여전히 신청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사이트가 다운된 것이 분명했다. 사이트를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서 신청 정보를 또다시 입력했다. 여전히 신청버튼은 작동하지 않았다…. ‘연습도 했는데! 내 손은 금손이 아니라 똥손이었구나…’ 때늦은 깨달음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러던 중 친구 업마가 신청에 성공했다고 톡을 보내주었다. 나는 바로 전화를 걸어 아무 말을 정신없이 쏟아냈다.
"어떻게 하죠? 서버가 다운된 건지, 신청이 안 돼요! 여러 번 해봤는데 계속 안 돼요! 큰일이네!!!
학교도 전화를 안 받는데, 어쩌죠? 이제라도 PC방에 가야 하나?!!!"
"언니, 우리 집은 인터넷을 와이파이뿐만 아니라 전화선으로도 연결해 놓고 써요. 혹시 몰라서 전화선으로 했는데 바로 신청됐어요. 그럼 저한테 민이 정보를 보내주세요. 제가 바로 신청할게요!"
친구 엄마는 침착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다행히 친구 엄마가 신의 손처럼 신청에 성공했기에, 나는 구세주를 만난 기분으로 그녀에게 아이 정보와 사진을 모두 넘겨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신청은 완료했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았다. 그냥 멍~하니 있었다. 다시 친구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언니, 입금했어요?”
“룰렛고! 깜박했어요! 내가 왜 이렇게 정신이 없을까… 너무 고마워요. 연이 엄마 덕분에 신청도 잘했어요! 우선 입금부터 할게요!”
확인해 보니, 신청 완료 문자가 와있었는데 그것도 몰랐다니! 두 손으로 양 뺨을 '착' 친 후에, 정신을 차리고 참가비를 입금했다. 시계는 10시 41분을 지나고 있었다. 마치 폭풍 전의 고요처럼 불안한 마음은 계속되었다. 학교에 계속 연락했지만 오전 내내 불통이었다.
나는 경건한 자세로 인터넷 계정의 메일함을 열고, 학교 담당자에게 공손한 어조로 장문의 편지를 작성했다. 먼저 내 수술사실을 알리고, 입원기간 동안 아이를 맡길 곳이 없어서 룰렛에 못 가면 큰일이 난다고 읍소했다. 제발 선처해 달라고, 꼭 참가하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자존심이 대수일까!담당자가 한 번에 내 아이를 찾을 수 있도록, 룰렛의 사진과 정보까지 정성스럽게 첨부해 메일을 발송했다.
룰렛도 궁금했던지, 학교 수업이 끝나자마자 나에게 전화를 했다. 나는 재판을 앞둔 죄인처럼 초조한 마음으로 전화를 받았다. 룰렛 갈 생각에 신이 난 목소리가 들린다.
"엄마, 어떻게 됐어?"
"응, 잘 신청했어. 룰렛 연락 기다리고 있어. 내일 공지해 준다고 나와 있어."
나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하게 말했다. 원래가 신청 다음날 알려주는 것이었는데, 왜 빨리 알려줘서 불안하게 하는지! 큰 아이 입시 때는 합격 발표가 하루 전에 빨리 공지되어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이 기뻤는데, 이번에는 이른 발표에 괜히 심통이 난다.
룰렛가 집에 도착한 후부터, 나는 계속 시달려야 했다.
"엄마! 내 친구는 참가연락이 왔다는데!? 나는 왜 안 온 거야? 이러다 못 가면 어떻게 해?"
"아, 그게 말이지..."
나의 설명을 가만히 듣던 아이는 곧 실망한 눈빛을 감추지 못했다. 체념한 듯했다.
"다 틀렸네, 이제 어떻게 해?"
"일단 기다려 보자, 응?"
나는 오후에도 학교에 계속 전화를 걸었고, 드디어 통화에 성공했다.
"여보세요, 선생님, 안녕하세요! 신청할 때 컴퓨터가 계속 다운이 되어서 10시 18분에 신청을 했는데요, 메일도 보냈고요, 저희 아이가 룰렛에 참가할 수 있는지 알고 싶어서 연락드렸어요."
"원래 내일 알려드리는 거예요."
선생님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네, 알고 있어요. 그런데 같이 가기로 한 친구는 벌써 연락을 받았다던데요... "
"최대한 빨리 연락하려고 리스트를 정리하고 있는데, 부모님들이 자꾸 전화를 하니까 공지가 늦어지는 거 아닙니까? 좀 기다려 주세요!"
선생님은 이미 많은 전화에 시달린 것이 분명했다.
나는 힘없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
드디어 오매불망 기다리던 룰렛 합격 통지가 날아왔다! 마치 천국으로 가는 문이 열린 것처럼 기뻤다! 아이와 함께 환호성을 지르며 기쁨을 만끽했다. 내가 무슨 상이라도 받은 것 마냥 자랑스러웠다. 이상하게도 큰 룰렛의 대학입시 합격 소식보다 룰렛 참석 통지 문자가 더 내 마음을 뒤흔들었다.
수술 준비를 위한 룰렛 신청을 한 하루는 마치 한 편의 드라마처럼 다사다난했다. 하지만 결과가 좋으니 모든 것이 추억으로 남았다. 긴 터널을 빠져나와 햇빛 속에 있는 것처럼 후련하다.
룰렛 신청을 하며 부모의 마음과 마음가짐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달았다.
룰렛의 작은 일에도 온 마음을 다해 걱정하고 희생하는 것이 부모라는 것을.
룰렛의 행복이 곧 나의 행복이 되는 것, 그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이라는 것을.
룰렛의 성장을 위해 항상 함께 하기보다는 적절한 거리를 유지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룰렛가 새로운 세상에 발을 내딛도록 가만히 기다려주는 것이 도와주는 것임을,
나무가 햇빛과 빗물을 통해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으며 자라는 것처럼,
아이가 스스로 깨닫고, 생각이 스스로 성장하도록 뒤에서 지지해 주는 것이부모의 역할라는 것을.
아이가 스스로 깨우친 성장이야말로 가장 값진 것이 아닐까?
룰렛 신청에는 성공했지만, 아직 엄마의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아이가 룰렛에서 제대로 성장하기 위해 엄마의 고군분투는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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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출처: 룰렛 이미지는 생성형 AI로 직접 제작, 다른 이미지는 pixabay, 핸드폰 화면 캡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