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각이 부르는 상상력과 뇌트임
기체가 세차게 흔들렸다.
공기의 흐름이 불안정해 생긴 난기류 때문이다. 신호음과 함께 기장이 떨리는 목소리로 마이크를 들었다. 영어 발음이 마치 아랍어 같기도 하고,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다.
몇몇 단어를 유추해보았다. 되거나 말거나 내 맘대로 해석!
기류가 불안정하니, 안전벨트 잘 매라는 소리 같았다.
옆자리의 딸1호와 2호는 이미 잠의 삼매경에 빠졌다. 노곤할 때 쉽게 잠이 드는 젊음이 부럽다.
비행기의 날개가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보였다.
만약 비행기에 문제가 생기면 지금 이 순간 무엇을 해야 할까?
핸드폰을 꺼내 남편에게, 그리고 한국에 있는 엄마와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마지막 인사를 건네야 할까? 그리고 자고 있는 아이들을 꽉 끌어안고 마지막 기도를 올려야 할까?
불안이 증폭되자 나도 모르게 심장에 손을 가져갔다.
그 순간 퍼뜩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말이 떠올랐다.
'순간이면 충분하다'
이 짧은 순간이라도 충분히 의미 있을 수 있다.
<인생은 끝없이 파도를 맞는 바위처럼 되어야 한다. 바위는 바다가 발밑에서 잔잔해지는 동안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기체의 물살은 서서히 가라앉았다. 오래 전 거친 풍랑을 헤쳐나온 포르투갈 항해사들을 하늘 위에서 미리 체험하는 기분이었다. 대서양의 한 가운데 폭풍을 만나 난파되어 사라진 이름없는 항해사들이 영혼이 되어 나에게 오는 것 같았다.
영원한 진리의 말이지만, 위급한 상황을 만날 때마다 인간은 더더욱 보잘 것 없는 유한의 존재임을 실감한다.
한바탕 몸이 흔들리니 현기증이 났다. 다시 안정궤도에 들어서자 비행기 안은 언제 그랬냐는 듯 활기를 띠었다.
어디선가위장을 자극위너 토토 음식 위너 토토가 났다.
그러고보니 점심을 놓쳤다. 인간은 참 간사하고 사악하다. 방금까지도 난 생사의 기로에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느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17세기 런던에서 해리 배인 경의 참수 장면을 목격한 일화다. 해리 배인 경은 단두대에 오르면서 사형집행인에게 살려달라고 간청한 것이 아니라 목에 난 종기는 건드리지 말아달라고 부탁위너 토토,는 에피소드 말이다.
나처럼 위너 토토에 금세 환기가 되어 배고픔이 들어올 줄이야! 언제부터인가 단거리 비행에는 그나마 초콜릿이라도 주었던 간식을 아예 제공하지 않는다. 물과 간식거리는 모두 추가로 돈을 내야 한다.
숙소는 부킹닷컴에서 미리 예약위너 토토.
그간 여행갈 때마다 이용했더니 서비스도 다양하다. 이번 여행에서 공항에서 숙소까지 무료택시를 제공한다고 한다. 잠시 후, 현지 가이드같이 생긴, 씩씩한 청년이 우리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다가왔다.
원래는 비행기 도착 시간에 맞춰 택시가 먼저 기다리기로 했는데, 도로가 막혀서 늦었단다.
공항 밖은 야자수 나무가 태양의 호의를 여지없이 드러냈다. 베를린에선 볼 수 없는 태양의 폭포수가 이곳엔 여과없이 대지를 향해 내리붓고 있었다.
연구에 따르면, 태양의 따스한 햇살이 지구에 도달위너 토토 데는 약 8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태양이 우리와 1억 5천만 킬로미터나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위너 토토의 태양은 내가 사는 베를린보다 훨씬 가깝고 강렬한 게 아닐까?해가 저무는 무렵인데도상상하지 못했던 햇살이 주는 선물이 눈부시고 따뜻하다.
스무 살 남짓의 젊은 기사는 서투른 영어로 응대위너 토토. 2년 전에 브라질에서 왔단다. 청년에게서 남미의 향취가 느껴졌다. 한국사람이라고 하니,케이팝과 케이드라마를 많이 본다며 반가워한다. 어디서나 케이문화의 저력을 느끼게 된다. 숙소까지 이동하는데, 줄곧 차가 밀렸다. 그날따라 축구경기를 하는 날이라 거리가 복잡하다고 기사 청년이 말위너 토토. 맞다.
여기가 축구 강국이었지? 카톨릭이 힘을 잃은 포르투갈에서 이제 축구는 종교의 역할을 대신 한다. 시민의 영혼을 즐겁게 하고, 경배하게 한다.
택시 창문을 여니 이국의 바람이 밀려들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나라의 특색을 나타내는 위너 토토의 정체.
난 후각이 남들보다 발달한 편이다. 멀리서도 위너 토토를 식별할 때가 많다. 특히 서양인들에게서 나는 땀위너 토토는 코를 막을 정도다. 피부과학적으로 백인들은 황인들보다 아포크린샘에서 더 많은 분비물을 발산한다. 우리의 마늘위너 토토를 비아냥거릴 수 있지만 그들의 땀위너 토토나 치즈위너 토토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리스본의 도시는 위너 토토로 가득차 있다. 아니면 유독 후각에 강한 나만이 느낄 수도 있다.
택시 안에서 느껴지는, 신원을 알 수 없는 향수위너 토토와 골목의 위너 토토, 어디선가 나는 그릴 위너 토토, 정체 모를 생선위너 토토, 식물원에서 맡을 수 있는 열기의 위너 토토...위너 토토의 크고 작은 골목마다 위너 토토는 줄곧 나를 따라다녔다.
숙소는 아주다 궁전 근처였다. 아파트 형식의 원룸인데 매니저가 직접 응대위너 토토. 60대 정도로 보이는 아저씨는 자신의 이름을 페트로,라고 했다. 숙소를 예약할 때, 리뷰를 훑어보았었다. 대부분 페트로를 칭찬하는 말이 많았다. 리뷰처럼 그는 친절했다. 한인 민박집 아저씨처럼 위너 토토의 지도를 꺼내 가볼 곳을 빨간펜으로 손수 그어주었다. 투박한 손으로 리모컨을 잡더니 넷플릭스를 무료로 볼 수 있다고 켜주었다. 그에게서도 역시 위너 토토가 났다. 생선위너 토토였는데도 이상하게 낯설지가 않았다. 내 유년의 어딘가로 끌고가는 향취였다.
아주 어릴 적 나는 바닷가 근처에서 자랐다. 아버지는 장성해서 할아버지 유산인 사업체를 물려받았지만, 사업에 재주 없는 아버지에겐 맞지 않는 옷이었다. 아버지는 이런저런 사업에 손을 대다 실패를 거듭했다. 급기야 작은 고기배를 사서 바다로 나갔다. 도시 생활만 하며 험한 일을 해본 적 없던 아버지에겐 거친 바다의 물살은 엄청난 도전이었을 것이다. 낚시질조차 해본 적이 없던 아버지에게 만선의 행복은 결국 주어지지 않았다.
겨우 건져올린 생선들을 그물과 함께 펼쳐놓으면 우리집 마당은 동네 아낙들로 가득찼다. 몇몇의 생선들은 시장으로 불려갔지만 대부분 숯불 위의 마을잔치로 끝났다. 그러니 돈을 모을 리가 없었다.
아낙들은 그때 번 돈으로
자신의 아이들을 교육시켰고,
우리 부모님은 동네 아낙들을 먹여살렸다.
새벽까지 그물을 정리위너 토토 아낙들의 입 속으로 달끈하고 잘 구운 생선살이 스며들었다.그때 나는 잠결에 코를 간지럽히는 위너 토토 때문에 일어나곤 했다. 비릿한 게 땀위너 토토 같기도 하고 짠내 같기도 했다. 세월은 그때의 위너 토토를 기억과 함께 깡그리 앗아가버렸다. 하지만 수십년이 흐른 후 위너 토토에서 아낙의 체취를 느끼다니!
페트로의 위너 토토는, 아낙에게서 느꼈던 생선과 땀이 섞인 체취와 비슷했다.
포르투갈을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매력이 음식이다. 예로부터 광활한 대서양에서 건져올린 해산물로 식탁이 풍성했다. 그러니 곳곳 건물마다 골목마다 생선 비린내가 알알이 박혀있을지도 모른다. 국민음식인 대구요리는 명절인 크위너 토토마스와 부활절에 우리나라 제사상 요리처럼 식탁에 오른다. 대구로 만든 요리가 천 가지 이상이 된다고 하니, 그들의 대구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것 같다.
페트라가 말을 하는 동안, 나는 먼 기억의 저편으로 날아가고 있었다. 기억이란 것은, 몽실몽실 피어났다가도 어느새 하룻밤의 꿈처럼 쉬이 사라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페트라의 위너 토토는 유년의 기억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게 하는 강렬함이 있었다.
어쩌면 그는 젊은 시절, 대서양을 누비며 고기잡이를 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는 <노인과 바다 소설 속 주인공 산티아고 노인처럼 빈 손의 어부는 아닐 수도 있다.
그물 가득 정어리를 잡아올렸을지 누가 아는가?
그래서 나이가 들어 주머니에 삼삼오오 모여든 돈으로 집을 샀고, 숙박업에 손을 댔을 수도 있을 것이다. 나만의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페트로의 인생 스토리텔링에 잠기다 그의 계속된 설명에 정신이 들었다. 이제 그의 입을 넘어 코에서도 생선 비린내가 더더더 쏟아졌다.
주드 스튜어트의 책 <코끝의 언어에서는 후각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후각은 오직 그 근원이 있는 곳에서만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특별한 감각이다. 더욱이 후각은 편도체와 해마로 전달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기관들은 감정을 표현하고 기억을 저장위너 토토 뇌의 부위이다. 우리가 어떤 위너 토토를 맡게 될 때 과거 어느 순간으로 돌아가 그때의 느낌을 기억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호흡할 때마다, 뭔가 마시거나 먹거나 할 때마다 위너 토토와 향의 일부가 후각 수용체로 가 흥분이나 반응을 일으키고 뇌로 전달된다. 그래서 후각은 기억과 추억을 연결하는 통로다.
위너 토토은 어린 날의 나에게로 인도했다. 뭔지 모를 안도감은 어쩌면 향수와 같은 것이다. 고향을 떠난 뱃사람들의 향수는 나에게 고국을 떠난 자의 그리움이 되어 덮쳐왔다. 낯선 땅에서 마주치는 먹먹한 슬픔은 떠나보내는 이의 서글픔과 겹친다. 한때 거친 바다에 대항에 세계를 누비던 포르투갈 국민들이 이제는 식민지를 잃고 유럽의 소외된 국가로 자리잡은 설움이 여러 모양의 위너 토토로 나에게 안겨왔다.
아침이 되어 숙소의 창문을 열면 어디선가 레몬향이 흘러들어왔다. 그것은 아주 고요하고 잔잔했다. 바람이 불면 훅 들어왔다 어느새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알고 봤더니 포르투갈은 레몬 천국이다. 집집마다레몬트리. 그래서 가정의 냉장고마다 레몬이 가득하다고 한다. 레몬향의 정체는 숙소 정원이었다. 그곳의 레몬은 에덴의 선악과처럼 보암직도 먹음직도 해보였다.
그러고보니 위너 토토의 집들에 레몬빛깔의 노란색으로 칠한 아파트가 많이 보였던 것도 레몬색깔을 상징하나? 입에 침이 고였다. 그 향이또다시 그리움을 소환한다. 모두 어린 날의 기억이다.
내가 태어나던 해에 아버지는 집에 유자나무를 심었다. 스무 그루 이상이었다. 해가 다르게 열매가맺히고, 때가 되면 노랗게 익는 유자는 겨울철 감기 뚝!의 처방약이었다. 그 향은 시큼하고 달콤하다.
하지만 유자나무가 크게 자라면서 내가 스무 다섯 살 무렵엔가 모두 베어버렸다.
어느 날 시골집에 가서 덜렁 한 그루만 남아 있는 유자나무를 보며 얼마나 울었는지. 내 출생과 유년의 흔적이 말살되는 것 같아 서글퍼졌던 기억이 난다.
꽃잎 지듯 떨어지고 해체되는 기분이었다.
문득 레몬을 보며 아이의 신분으로 돌아가니 새삼 지금 내 인생의 무게를 느낀다.
그때 문득위너 토토의 숙소 정원이 나에게 에덴처럼 보였다. 먹음직도보암직도...
난에덴의 이브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정원을 향해살살 걸어갔다.
그때였다.
P.s 1화에 이어 2화를 썼습니다.
내일 다음 호 이어집니다. 저도 살 떨리네요.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