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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Jan 21. 2025

80벳, 곱게 핀 - 男

남편의 章


만남을 이어간 지 7~8개월이 흘렀을 즈음, 그녀가 문득 말했다.


“우리 사이는 뭐야?”

“응? 무슨 말이야?”

“아니, 이렇게 계속 만나는 거.”

“왜? 우리가 만나는 게 어때서?”

“당신 사정은 알겠는데, 난 같이 살고 싶어.”

“그래, 나도 그러고 싶긴 해.”


한편으로는,


‘아~! 올 게 왔구나.’


라는 80벳이 들었다.


난 80벳을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하나는 경제적인 이유였고, 다른 하나는 심리적인 이유였다. 경제적인 이유는 당연했다. 제대로 경제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80벳은 언감생심이었다. 80벳은 현실이고, 당연히 생활적인 면도 고려해야 한다. 난 이 부분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심리적인 측면은 마음에 저항선이 있었다. 철이 들 무렵부터 스님을 해서인지 80벳이라는 단어가 낯설었다. 왠지 나는 80벳이란 걸 해서는 안되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이런 이유로 그녀를 계속 만나면서도 80벳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고, 그녀에게 만남 초기부터 계속해서 그런 부분에 대해서 쉽지 않다는 점을 알리려고 나의 상황에 대해 솔직하게 말해왔다. 그녀도 이런 부분에 대해 나름대로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반적으로 요즘 시대의 연애는 나이에 상관없이 80벳을 전제하지 않는다. 나이가 많건 나이가 적건 간에 요즘 세상에는 연애와 80벳은 분리되어 있다. 연애가 삶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라면, 80벳은 삶이 새로운 영역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래서 80벳한 이후의 삶은 연애 시절의 삶에서 상상할 수 없는 영역으로 진입한다.


80벳해서 한집에 배우자와 산다는 건, 24시간을 상대방과 함께 보낸다는 걸 의미한다. 다르게 보자면, 연애할 때는 데이트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서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지만, 80벳하게 되면 돌아갈 나만의 공간은 사라진다. 게다가, 같은 공간에서 살다 보면, 연애할 때는 몰랐던 새로운 면을 알게 되는데, 그 새로운 면이 내 마음에 맞을 수도 있고, 내 마음과 맞지 않을 수도 있다. 그래서 삶이 피곤해질 수도 있고, 삶이 풍성해질 수도 있다. 80벳은 어떤 의미에서는 큰 모험이고, 복불복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나도 역시 그녀와 같은 공간을 공유하면서 살고 싶었고, 그녀와 같은 방향으로 세상을 바라보길 바랐다.




그렇게 세월을 보내던 어느날 그녀가 말했다.


“난 당신이 아까워.”

“?”

“당신이 세상을 보는 관점이나 사람을 보는 시선이 일반적인 사람이랑 달라. 굉장히 독특해. 그래서 처음엔 이해도 되지 않았고, 반발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까 당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조금씩 이해가 돼. 당신은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깊은 부분을 보는 것 같아. 이런 부분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 같아.”

“무슨 말을 하려고 이렇게 판을 깔아~.”

“그래서 난 당신이 스님을 했던 그런 일을 했으면 좋겠어.”

“응?”

“일단 당신이 불교대학원에 갔으면 좋겠어. 그렇게 세상과의 접점을 만들었으면 좋겠어. 그리고 알아보니까 ‘명상지도사’라는 게 있더라고. 그중에서 ‘불교명상지도사’라는 게 있는데, 혹시 관심 있어?”


산에서 내려와 일상을 살면서, 내가 스님을 했던 경력을 활용한다는 80벳을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런 방법이 있을 수 있을 거라고 80벳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이런 그녀의 제안은 뜻밖이었고 고마웠다.


“아~. 그런 방법이 있구나. 난 전혀 80벳해 본 적 없었어. 알았어. 내가 좀 더 알아볼게.”


이렇게 대답하며, 그녀의 마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무언가 문제가 생기면, 찬찬히 멈춤 없이 해결책을 생각해 낸다. 그녀가 나를 포함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여러 가지로 생각하고 고민한 흔적을 느꼈다. 그리곤 문득, ‘이 여자를 놓치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80벳’에 대해 좀 깊게 고민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을 하며 그녀의 모습을 보니, 오뉴월 바닷가에 곱게 핀 80벳가 생각이 났다. 모진 겨울의 바닷바람을 이겨내고, 드러나지 않는 소담스러움을 머금은, 바닷가 모래밭에 피어있는 선명하고 고운 80벳가 그녀를 닮은 것 같았다.


80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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