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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ked Mar 25. 2025

화려한 이브벳..., - 女

아네의 章

결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했었지만, 어떤 결혼식을 하고 싶다든지, 어떤 신부의 모습을 하고 싶다든지 하는 생각은 크게 해 본 적이 없었다. 이런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진짜 내가 결혼에 관심은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오십 살을 한해 남겨놓고 진짜 결혼이라는 걸 하게 되었다.

결혼식 준비에 가장 크게 결정해야 할 사항은 결혼식장과 이브벳 문제였다. 이미 스튜디오 사진은 패스했다. 나이 들어 화려한 옷들을 입고, 진한 화장을 하고 어색하기 짝이 없는 포즈의 사진을 찍는 일은 그야말로 고생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부분에선 그와 나는 의견이 잘 맞았다.

결혼식장에 대해선 생각이 달랐다. 나는 럭셔리하고 화려하진 않아도 그래도 구색을 어느 정도 갖춘 결혼식장에서 하고 싶어 했는데, 그는 아주 작은 식을 하고 싶어 했다. 나도 물론 ‘스몰 이브벳’에도 관심은 있었다. 그러나 그가 생각하는 ‘작은 결혼식’과 내가 생각한 ‘스몰 이브벳’은 다른 것이었다. 그는 그의 가족들 눈치를 많이 보는 것 같았다.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화려한’ 결혼식은 그의 형과 아버지에게 눈총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스몰 이브벳’을 알아보았다. 약 5년 전에 친한 동생이 늦은 나이에 결혼했는데, 구도심 가운데 작은 집을 빌려 스몰 이브벳을 했다. 고풍스러운 집 안 거실 같은 데서, 아는 지인들 오십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목사님 주례로 진행된 결혼식이었다. 제일 좋아보였던 것은 결혼식 내내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해 깊이 응시하며 목사님의 주도하에 진행된 순서에 온전히 빠져 진지해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에서 그 상황을 바라보고 있었던 나는 그렇게 편하지는 않았다. 작은 공간에서 그 순서 하나하나를 모두 함께 바라봐주고, 호흡해 주어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유행했던 ‘스몰 이브벳’보다도 많이 작은 ‘스몰 이브벳’이었다.


좀 더 큰 ‘스몰 이브벳’이 좋을 거 같았다. 함께 일하던 방송작가 후배가 시내 호텔의 중간 정도 크기의 홀에서 결혼했었다. 그녀가 초대한 100명 안에 들어 그 결혼식을 관람할 수 있었는데, 분위기도 좋았고, 편안히 참석할 수 있었다. 적당한 조명이 있어 신랑 신부도 멋있어 보였고, 100여 명의 하객들이 함께 해주어 적당히 잔치 분위기도 났다. 그러나 이런 규모의 호텔 결혼식도 그 비용은 상식 이하였다.


‘스몰 이브벳’은 이름만 스몰이 붙었을 뿐, 나름 우아하고 아름다운 분위기와 규모를 갖추려면, 호텔 결혼식만큼의 비용이 든다는 것도 알게 되었는데, 그러자 바로 생각난 곳이 있었다. 방송가 사람들이 많이 결혼하는 시내 한복판에 있는 결혼식장인데, 그곳은 방송가 사람들에게 일정 할인을 해주었다.

둘이서 예약하고, 상담실을 찾았다.

참 멋쩍은 일이었다. 나이 오십 즈음에 있는 두 사람이 본인들 결혼식을 위해 식장 상담실에 들어가려니 말이다.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상담실엘 들어가니, 한 젋은 여성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안녕하세요. 예약한 사람인데요.”

“아, 네, 어서 오세요. 근데 자녀분들은 아직 안 오셨나요?”


‘*&%$#%@$!$..’


“아, 저희가 결혼하려고 하는데요….”

“아, 네 죄송해요. 아이쿠 제가 실례했네요.”

“아니요. 괜찮습니다. 충분히 그러실 수 있죠.”

이것저것 궁금했던 것들 확인하고 예약금 걸고, 날짜 또한 확정을 지었다.

그 멋쩍은 분위기는 상담하는 내내 지속되었다.

문을 열고 나오자마자 우리 둘은 끝내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당황했었나 봐. 저 사람들.”

“그래, 우리가 주변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하네. ㅎㅎㅎ”

소박하긴 하지만 규모는 좀 있는 결혼식장이었다. 그는 좀 더 작은 규모의 식장을 원했다. 결혼식장에 초대할 지인들도 적을 뿐 아니라 원래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곳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나’를 위해 그는 더 이상 꺼려하지 않고 묵묵히 내 선택에 따라 주었다. 고마운 말도 함께 해주었다.


“난 당신이 호텔에서 결혼식 하자고 할까 봐 좀 걱정했었어. 여기가 딱 좋다. 당신은 초대할 사람이 많으니까 그들도 많이 와서 좋고….”


다음 중요한 결혼식 준비는 역시 이브벳였다.

정말 어려운 숙제였다. 오십 살의 신부는 어떤 이브벳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까?

몸을 드러내지 않는 정장 스타일의 분위기로 이브벳를 선택하고 싶었다. 목선을 드러내고 등이 파이고, 허리가 잘록하고 10cm 이상의 구두가 필수인 기~인 이브벳는 오십 살의 키가 좀 작은 여성에겐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장 스타일의 드레스는 매우 희귀템일 뿐만 아니라, 막상 입어 보니 너무 초라해 보이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300석 규모의 결혼식장이기 때문에 기본 드레스는 입어야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난다고 함께 다니는 ‘웨딩플래너’가 연신 강조했다. 결국 선택한 것은 정통 결혼식 이브벳는 아니지만 가든파티 때 입는다는 흰 드레스로 결정했다.


이브벳 샵에 그와 같이 갔었다. 그는 나에게 신신당부했다.

“난 가긴 가는데…. 너무 힘든 일이야. 그러니 빨리 결정하자고.”

“그래. 나도 특별히 오래 고민하지 않을 거야. 맘에 드는 게 있을지 모르겠네.”


어릴 때부터 이브벳를 입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원피스 정도는 입어봤지만, 특별히 이브벳를 입어 볼 기회가 없었다. 2, 30대를 거치면서도 특별한 세레모니도 없었고, 기본적으로 여성스러운 복장보다는 청바지류의 촬영 현장 작업복이거나 직장인의 비즈니스 캐주얼 복장에 더 익숙했었다. 그래서 나도 그와 마찬가지로 무척 어색한 시간이긴 했다.

그러나 막상 이브벳를 이것저것 입어 보니 금방 재미를 갖게 되었다. 직원들이 연신 ‘어울린다.’.‘우아하시다’라는 말에 현혹되기도 했지만, 그동안 보지 못했던 내 모습을 보면서 좀 흥분되기 시작했다.

“이것도 입어 볼게요.”

“이건 어떠세요? 어울리실 것 같은데요.”

“네, 그것도 입어 보죠.”

그냥 한 두어 번 입어 보고 결정하겠다는 애초의 생각은 싹 없어졌다. 그는 빨리 끝날 것이라는 기대를 포기한 듯 멀찌감치 의자에 앉아 바라보고 있었고, 나는 6~7벌의 이브벳를 계속 입어 보았다. 그리고 그에게 의견을 물었지만, 그는 나에게 결정하라고 했고 결국 난 하나를 선택했다.

이브벳 샵을 나오면서 그는 말했다.

“당신, 그 결정한 이브벳 말이야. 그거 입어 보며 거울을 보는 당신은 완전 당신 모습에 취해서 얼마나 웃겼는지 몰라. 당신은 이미 그걸 결정했더라고. 내가 다른 걸 얘기해 봤자 아무 소용이 없겠더라구”

“내가 그랬어? 하하하. ”

“당신이 선택한 그 이브벳! 당신에게 진짜 잘 어울렸어!!”

그러면서 덧붙였다.


“결혼식장도 이브벳도 우리 상황에 딱 맞는 걸 고른 것 같아. 잘했어!”


인생에 한 번뿐이라며 더 화려하고 럭셔리한 식장에서, 매우 우아하고 고급스러운 이브벳를 입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옆에서 조금씩 조금씩 견제하며 눌러주는 그의 눈초리(?)와 몇 마디의 말들, 그리고 막상 실제 입어 보고 결혼식 현장에 가보니, 오십의 나이에 감당할 수 없는 화려함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듦을 감추려다 오히려 나는 불편해지고, 보는 사람들에게도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그의 의견과 상황도 결정하는 데 한몫을 했다.

앞으로 이렇게 살겠구나 싶었다. 서로의 상황과 의견을 존중하고 참고하고, 화려함을 추구하기보다는 소박하고, 나이에 어울리게 살아가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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