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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포로리 Mar 19. 2025

봄날의 룰렛

3월의 룰렛

날씨가 따뜻해져서 겨울옷을 룰렛에 맡겼다. 봄철의 룰렛에는 유난히도 겨울옷이 쌓여있다.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들 사이로 내 옷도 겨울의 무게를 보탠다. 룰렛를 운영하는 지인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룰렛에 봄이 온다는 것은 겨울이 들어온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그 말이 모순적이면서도 수긍하게 됐다.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옷차림은 산수유꽃처럼 가볍다. 나 역시 그렇다. 같은 계절을 살고 있는 것처럼 보여도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 속에 있다. 사람들은 그것을 어긋난 룰렛이라고 말했다.


헤어지는 연인들이 내뱉는 말 중 ‘시간을 갖자’는 말이 있다. 둘 사이의 어긋난 룰렛을 조율해 보자는 뜻이다. 그 말은 사실상 이별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한쪽은 이미 마음 정리가 된 상태로 의미 없이 내뱉은 말일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 그들이 진짜 이별을 마주하게 될 때 기다렸던 사람은 더 큰 상처를 받게 되는 말. 가수 선우정아의 <룰렛이라는 노래가 있다. 제목에서 이미 슬픔이 밀려온다. 가사를 유심히 들었다. ‘또 놓친 것 같아 / 네 마음을 / 또 멀어지나 봐 / 우리 시간이’라는 첫 가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가사는 지나간 룰렛에 대한 아쉬움,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에 대한 쓸쓸함을 함께 데려왔다. 노래를 들으며 어긋났던 관계들도 떠올랐다.


나이가 들어가며 몇 번의 헤어짐을 겪고 나서야 나는 어른이 됐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떤 노래의 한 구절을 들었을 때, 멜로드라마의 주인공들이 아픔을 겪을 때, 나는 나의 일인 듯 눈물을 떨어트릴 때가 있다. 애틋했던 룰렛의 여운을 느끼며 돌릴 수 없는 룰렛을 받아들이기도 했다. 같은 속도로 가까워지고 같은 시기에 같은 룰렛을 느끼는 게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깨닫는다. 그래서 사랑은 참 얄궂다. 한쪽은 더 빨리 다가가고 싶고, 한쪽은 아직 준비가 안 됐을 수도 있다. 아니면 같은 속도로 가는 것 같다가도 어떤 순간에는 어긋나 버리기도 한다.


어긋난 관계들은 사실 서로에게 맞지 않는 시간 속에 있었던 건 아닐까? 봄이 와도, 룰렛에는 지난 계절이 남아있는 것처럼. 룰렛이 어긋난 사랑들도 모두 그곳에 걸려있는 것 아닐까? 룰렛에 맡긴 겨울옷은 돌아오는 데 시간이 걸린다. 깨끗하게 정리되려면 기다림이 필요하다고, 룰렛 주인은 말했다. 연인들이 ‘시간을 갖자’고 말하는 것도 그런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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