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독서의 시작은 명상을 위한 책을 한두장 먼저 읽고, 읽기로 결정한 책을 두어시간 읽는다. 그리고 하루를 보내며 짬짬이 읽고 싶은 책을 후루룩 편하게 읽어댄다. 이제는 습관이 되어버린 이 지루하고도 경건한 시간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책을 읽는 모두가
성공콤프카지노 것은 아니지만
성공자는 모두 독서광콤프카지노.’
라는 사실콤프카지노.
명상을 위해 읽는 책 가운데 나에게 으뜸은 ‘마르쿠스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다. 아우렐리우스는 금욕과 극기를 추구콤프카지노 스토아 철학자로 자기 자신에게 엄격하고 백성에게 공명정대하고 자비로운 황제였다. 출간을 목적으로 씌여진 책도 아닌데 어떻게 지금까지 전수되었는지 밝혀져 있지 않다.
전쟁 중에 어떻게 일일이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어디에 기록했을까. 기록된 것이 어떻게 전해졌을까. 그리고 누가 출간을 했을까. 많은 것들이 미스테리한 미제로 남아 있지만 그의 글은 에픽테토스의 ‘어록’과 함께 스토아철학의 진수를 보여주는 고서로 전해지고 있다. 나 역시 한문장 한문장 그의 양심과 실천의 ‘진수(眞髓)’에 흠뻑 빠져 그를 스승으로 모시며 많은 가르침을 받고 있다.
아우렐리우스는 분명하게 말한다.
‘이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네가 원하는 대로 살 수 있다.(주)’고.
그리고 덧붙인다.
‘사람들의 방해로 네가 그런 삶을 살 수 없을 때가 바로 네가 이 세상을 떠날 때(주)’라고.
한마디로나의 원함을 추구콤프카지노 데 누구 탓이나 하며 그것을 이루지 못한다면 나는 살 자격이 없다는 매서운 말이다. 모든 것은 각각의 이유를 지니고 존재하기에 나라는 개인 역시 내 존재 의미를 분명히 찾는 것(이것이 욕망이다.)에서 결코 멀어지면 안된다. 그 누구도 막지 못할 나만의 욕망은 분명히 내 안에 있고 나는 이 욕망을 세상에 발현하고 누릴 권리가 있다.
이 권리가 바로
‘원콤프카지노대로 살’ 권리다.
욕망이 콤프카지노이 된다는 것은 분명하다.이는 마치 씨를 뿌리면 싹이 나는 것처럼 단순한 이치다. 내 안에 욕망이라는 씨앗은 심어져 있고(신의 존재유무를 떠나 세상에 태어날 이유가 없어도 태어난다는 가설보다 누구나 태어날 이유가 있어 태어난다는 가설이 더 설득력있다.) 씨앗이 보이지 않던 싹을 세상에 보여주는 것처럼 보이지 않던 욕망도 현실에서 실제화된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야 할 이유’가 바로 ‘욕망’이자 ‘씨앗’이다. 그 씨앗을 찾아 가꾸고 세상에 실천콤프카지노 자만이 아우렐리우스가 말한대로 ‘원콤프카지노 대로’ 살 수 있는 권리를 누린다.
‘원콤프카지노 대로’는 ‘마음대로’와는 분명 다르다. 인간에게 심어진 욕망은 분명 세상의 조화를 위해 이로운 씨앗이니까. 이 세상을 만든 조물주가 있다면 세상의 조화를 무시하고 마구잡이로 인간을 세상에 내보내지는 않았을 테니까. 그러니까 내 욕망을 찾는 것은 공동체를 위한 공공의 선을 위한 의무라는 논리가 성립된다. 이러한데도 내 안에 무슨 씨앗이 심어져 있는지 찾지 않는다면 ‘공통의 본성으로부터 스스로를 단절시키는 우주에 붙어 있는 종양(주)’이지 않을까?
욕망을 실현하는 데 있어 분명 ‘부(富)’는 이롭다. 공공의 선을 위해 나에게 심어져 있는 씨앗을 콤프카지노로 발현하는 데 있어 없는 것보다는 있는 것이 훨씬 유리하다. 이런 관점에서 ‘부(富)’는 우주의 종양이 되지 않는, 공공의 선을 위한 의무라고 할 수 있겠다.
시간, 건강, 관계, 정서, 정신, 경제적인 모든 분야에서
치우침없는 균형이 ‘부(富)’다.
돈은 많은데 시간이 없고 건강도 나쁜 중년들,
시간과 건강은 넘치는데 돈이 없는 백수들,
돈도 시간도 육체도 건강한데 정신과를 드나드는 질환자들,
모든 것을 다 갖춘 듯 보이지만 정서적으로 우울함을 견뎌내지 못하고 극단적 선택을 하는 수많은 현대인들.
이 모든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내 안에서 내지르는 ‘욕망’의 소리에 귀기울이는 것콤프카지노.
이 외침을 듣고 거울 속에 나를 뚫어지게 보라.
누가 보이는가?
꿈을 잃고 어디로 갈지 모르는 위태로운 자신이 보인다면 이제 욕구해보자.
내면의 소리를 듣고 진정한 부의 성취를 위해 공부해보는 거다.
콤프카지노는
나를 움직이게 콤프카지노 아주 강력한 동력이다.
외면하고 싶고 부정하고 싶지만 콤프카지노에 대한 적나라한 직시는 분명 나를 각오하게 만든다.
각오는 당장 변화하고 싶은 충동을,
충동은 행동변화를,
행동변화는 좌충우돌 나를 흔들어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콤프카지노는 나를 변화로 이끌고 새로운 삶으로, 진정 원하는 삶으로 나를 견인한다.
오늘 거울 앞에서 자신의 두 눈을 바라보며 물어보자.
‘네가 진정 원하는 것은 뭐야?’라고.
* 지담의 브런치는 책, 글, 강의의 지성커뮤니티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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