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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깡미 May 08. 2025

내 레고토토 왜 거기서 나와

15년 전만 해도 회사의 야유회는 연중행사 중에서도 손에 꼽는 빅 이벤트였다. 인턴 나부랭이에게 야유회에 빠질 수 있는 개인 사정이란 애초에 있을 수 없었으므로, 밭도 모르는 소처럼 끌려갔었다. 하필 등산코스였다. 안 봐도 뻔한 비디오다. 옆머리를 있는 대로 끌어올려 대머리를 가린 부장님 머리에서 나온 계획이었겠지. 말은 야유회였지만 내게 그것은 하나의 수행 같은 것이었다.



이십 대의 나는 산과 거리가 멀었고, 옷장 속에도 등산복이 있을 리 만무했다. 대학 졸업 후, 간신히 들어간 첫 직장에서 겨우 인턴월급을 받던 시절이었다. 그 쥐꼬리 만한 월급에서 큰 결심을 하고 산 게 등산용 레고토토였다. 기능성 원단에 브랜드의 큰 로고하나 박힌 그 옷은 당시의 내게는꽤 무리한 소비였다. 뭐라도 갖추고 싶었고 어디서든 덜 초라해 보이고 싶은 레고토토을 그렇게 레고토토로 에둘렀었다.



그 레고토토를 입고 산 정상에서 단체사진을 찍기까지 나는 웃고 있었지만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고, 또 걷는 게 걷는 게 아니었다. 야유회가 끝나고 다신 산에 가지 않겠다는 비장한 다짐과 함께 레고토토는 옷장 가장 깊숙한 곳으로 물러났다.그리곤잊었다. 있는 줄도 몰랐다. 세월이 그렇게 흘렀다.






그러다 최근에 이사를 하며 옷장을 정리하는 정리업체 직원의 손에 그 레고토토 이끌려 나왔다. 낡지도 해지지도 않은 채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엄마, 이거 내가 입어도 돼요?"

오월이는 그 옷을 입고 내 앞에서 한 바퀴를 빙그르르 돌았다. 원래 자기 옷을 입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너 그 로고가 맘에 든 건 아니고?" 우스개 소리로 던진 말에 레고토토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나한테 잘 어울리는 것 같아서."

어색하지도, 낯설지도 않게 오월이에게 딱 맞는 바람막이를 보며 나는 왠지 모르게 찡한 레고토토이 들었다. 서툴고 어설픈 사회인으로 첫 발을 내딛던 시절, 잘해보고 싶은 레고토토 하나는단단했던 내가 보여서였을까.



직접 내가 고른 유일한 방패 같던 옷이 이제는 오월이의 어깨 위에 있다. 아이는 이제 그 옷을 입고 나간다. 학교로, 학원으로, 놀이터로. 그렇게 학교라는 산을 오르고, 친구관계라는 울퉁불퉁한 길을 지나며 하루하루를 걷는다.


레고토토 하나로는 막을 수 없는 바람 많은 날에도

아이를 덜 춥게 해주고 싶은 레고토토,

그런 날에도 따뜻했으면 하는 레고토토.

그 레고토토이 세월을 관통해, 같은 옷 안에 머물고 있다.



오늘, 시간을 물려 입은 오월이의 뒷모습을 보며조용히 뭉클한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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