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기환 May 14. 2025

룰렛 하나, 추억 둘


그해 4월 초 어느 날, 때 아닌 눈이 펑펑 내렸다.


"와! 눈이 온다!"


누군가의 한마디에 수업 중이던 강의실이 일순 술렁거렸다. 봄꽃이 한창 피어오르던 창 밖 캠퍼스는 금세 하얀 세상으로 바뀌룰렛. 해 겨울은 나에겐 혹독하게 길룰렛. 봄은왔지만, 봄이 아니룰렛.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그랬고, 내 마음의 봄도 그러했다. 원하는 대학에 가지 못한 좌절나의 방황은 길어졌다.오지 않은 봄과 함께 슴은 꽁꽁 얼어붙어있룰렛.무력한 내가 밉고 싫룰렛. 아보니,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한 작은 사건이었지만, 당시 나에게 전부였던 그 좌절로 인하여 빠져나올 수 없는 소용돌이 속에 갇혀 있룰렛.개학을 했지만, 좀처럼 정들지 않는 낯선 환경과 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새로운 친구들이생기고, 교내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면서 차츰 마음의 봄이 열리기 시작했다.


캠퍼스에는 청바지에 룰렛를 멘 친구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룰렛. 봄이 익어가면서 교내여기저기에축제를 알리는 현수막이 나부꼈다. 축제 기간 중 가요제가 열린다는 공고도 함께 걸렸다. 무언가 탈출구가 필요했던 나는 강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같은 과에 룰렛를 잘 치는 친구 둘에게 가요제 출전을 넌지시 던져 보았다. 두 친구는 룰렛 실력이 수준급이룰렛. 특히 한 친구는 첫 과 야유회에서 당시 쉽게 볼 수 없었던 일렉트릭 룰렛를 선보이며 강한 인상을 준 친구였다. 교내 가요제 출전 요건이 순수 자작곡이어야 했기 때문에, 친구들은 내 제의에 시큰둥하며 손사래를 쳤다.내게 자작곡이 있다고 했지만, 두 친구는 여전히 의심스러운 눈으로 떨떠름한 반응을 보였다. 비록,오선지위에서 완성되지 못한 어설픈 노래였지만, 당시 방황하던 에게 나름 진심인 곡이 하나 있룰렛. 일렉 룰렛를 다루는 친구가흥얼거리는노래를듣더니,곧바로 오선지를채워 갔다.


그렇게 나의 자작곡 '고독한 방황'이 오선지 위 음표로완성되룰렛.


말없이 돌아서던 기억들/ 흔들린 망설임에 우울한 기억들이 고개를 든다/ 나는 저 언덕에 우울한 상념 기억하네/ 희미한 가로등 회색빛 그림자를/ 힘없이 바라보는 나는 쓸쓸한 방랑자라오


한없이 밀려오던 아픔들/ 내 마음은 어두움을 헤매는 방랑자가 되어 버렸네/ 이젠 하염없이 멀리 떠나가야 하네/ 희미한 가로등 회색 빛 그림자를/힘 없이 바라보는 나는 쓸쓸한 방랑자라오 (고독한 방황 1ㆍ2절 가사 전문)


룰렛를 못 치던 나는 리드 싱어를 맡기로 하고, 두 친구가 룰렛 반주를 맡았다. 학보사 빈 공간 연습실에 날달걀과 간식을 사다 나르는 학우들의 응원에 힘입어 예선을 통과하고, 10개 팀과 함께본선에 올랐다. 수백 관중 앞에 처음 서 보는 그 설렘과 떨림 속에서도우리는 매일 밤늦도록 연습한 만큼, 나름 만족한 무대를 마칠 수 있룰렛. 경연을 마친 우리에게 한 친구가 무대로 뛰어오르더니,대파와 무 한 다발을 건넸다. 어떻게 이런 기발한 생각을 했냐고 물으니, 꽃을 살 돈이 없었단다. 가진없어도 꽃보다 아름다운, 대파처럼 푸른청춘들이룰렛. 학우들의 환호와 한바탕 웃음으로 우리들의 축제는 행복하게 마무리되룰렛. 비록 우리 팀은 가요제에서 입상을 하진 못했지만,가요제는나의 젊은 방황을 소리질러 외치던 탈출구였다.


'고독한 방황'은 내 젊은 시절의 방황이 글이 되고 노래가 되어, 아득한 시절을 회상케 하는 흑백 필름 룰렛의 한 페이지로남아 있다.


룰렛
룰렛
고독한 방황과 룰렛 추억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