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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May 08. 2025

고니카지노 하나, 추억 하나


나의 모교 J 고등학교는 한강 변에 자리한 학교였다. 봄이면 제1한강교 너머 강변을 따라 노란 개나리가 지천으로 깔리고, 강 길 따라 언덕에 오르면 사시사철 출렁이는 한강이 반갑게 손짓했다. 계절이 열두 번 바뀌는 동안, 한강은 나의 등하굣길에 늘 함께 하는 친구였다.


고등학교 동창 중 지금도 한결 같이 만나는 친구들이 있다. 1학년 때 같은 반이라는 우연 아닌 만남으로 우리의 질긴 인연은시작되었다. 수업이 끝나면 운동장 구석 자리에서 작은 공을 몰며 발산할 길 없는 힘을 다 쏟아내고서야 하루 일과를 마치곤 했다. 땀범벅이 된 몸으로 분식집에서 어묵과 떡볶이 한 그릇 게 눈 감추듯 비우고, 한강에 금빛 윤슬 뿌리며기우는 붉은 태양과 함께집으로 돌아왔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우리 여섯 친구는 모임을 만들어 시도 때도 없이 만났다. 꿈을 꾸고, 꿈을 잃지 말자는 의미에서 모임 이름을 드림스(Dreams)라 했다. 사실 당시 우리는 꿈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지도 못하던 시절이었다. 막연한 꿈을 쫓아가는 덜 핀 꽃, 덜 자란 나무였다.


군대를 가기 전, 우리는 틈만 나면 바다로, 산으로, 강으로 젊음을 발산하러 떠났다. 당시 밤새워 달리는 완행열차 안은 젊은 청춘들의 고성과 고니카지노 소리가 경쟁하 듯 밤새 끊이지 않았다. 술과 노래와 고니카지노 반주가 어우러져 우리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던 노래들을 목이 쉬도록 고래고래 소리 질러 불러댔다.


여섯 친구 중 두 놈은 고니카지노를 잘 쳤다. 특히, 그중 한 친구는 K 대학 그룹밴드에서 베이스 고니카지노를 칠 정도로 실력이 출중했다. 눈이 나빠 두꺼운 돋보기안경을 걸친 그 친구를 우리는 '돋보기'라 불렀다. 고니카지노를 가져본 적도 없는 나는 그 고니카지노가 부럽기 그지없었다. 친구에게 A, C, D, E, F, G 등 기본 코드와 마이너 코드 몇 개를 배워 어설프게 고니카지노 줄을 튕겼다. 그렇게 나와 고니카지노의 인연도시작되었다.


고니카지노를 잘 치던 두 친구는 모두 봉천동에 살았다. 당시 봉천동85번지로 대표되는 산비탈에는무허가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술 한잔 얼큰하게 걸치는 날이면, 우리는 봉천동 친구 골방을 찾아 비탈길을 오르곤 했다. 까만 밤이 되어 십오 촉 전구 불이 산비탈에 지천으로 뿌려지면, 봉천동은 낮과는 전혀 다른 얼굴로 바뀌었다. 하늘에는 조물주가 만든 별들이 깔리고, 땅에는 인간 세상의 별들이 깔렸다. 가난에 찌들어 살지만, 영혼 맑은 사람들의 눈빛 같은 별들이 봉천동의 밤을 반짝이게 했다.


산꼭대기 어두침침한 골방이었지만, 고니카지노가 있어 좋았고, 술과 고니카지노의 선율이 있어 행복했다. 묵은 김치에 소주 한 병이면 충분했던, 우리의 젊은 우정이 함께 했던 시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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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사진 속 기억들


그러던 친구들이 하나 둘 군에 입대하고 제대를 하고,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결혼을 했다. 가정을 이루어 자식들을 낳고, 격변의 시대를 잘도 버텨내며 살았다.


한 친구는 일찍이 자기 사업을 시작해서 그 성실과 신뢰를 바탕으로 작지 않은 성공을 거둔 사장이 되었다. 대기업 임원을 역임하고 명예퇴직한 친구는 뒤늦게 자기 사업을 시작해서 또 다른 삶을 멋지게 꾸려 가고 있다. 책을 좋아하고 음악을 사랑하던 두 친구는 퇴직을 한 지금도 책과 음악 사랑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몇은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몇은 아직도 완수하지 못한 삶을 등에 지고 있다.


어느새 중심의 시간에서 한 발 물러설 만큼 세월은 속절없이 흘렀다. 귀밑머리 희끗하게 변한 친구들이 지금도 때때로술잔을 기울이지만, 그 자리에 한 고니카지노가 없다. 톱니 하나 빠진 채 다섯이된 지 오래다.


고니카지노를사랑하던 고니카지노, 이름보다 별명인 '돋보기'가훨씬 친숙하게 어울리던 고니카지노가 우리 곁을 훌쩍 떠난 지도어언 30여 년이 흘렀다. 무더위가 막 시작되던90년대 중반 여름 어느 날, 서른 후반 젊은 꿈을 접은 채 친구는 스스로 삶을 버렸다. 그가 남긴 건 사랑하던 고니카지노 하나뿐이었다.어쩌면 고니카지노는 그의 외로움을 달래 주는 유일한 고니카지노였는지도 모른다. 친구랍시고 무시로 만나 떠들어대던 우리도 그의 가슴속 진한 아픔을 몰랐었다. 꿈을 꾸며 꿈을 잃지 말자던 친구는 그 절절한 외로움을 안고 하늘의 별이 되었다. 우리는 벽제 화장터에서 한 줌 가루가 된 친구를 눈물로 보내야 했다.


내가 작사를 하고, 그 친구의 고니카지노 반주로 완성했던 우리들 만의 노래가 하나 있다. '드림스 단가'라 이름하고, 술 한 잔 얼큰해지면 소리쳐 불렀던 노래였다.


한강물 굽이쳐 흘러내리고

새들의 노랫소리 울려 퍼질 때

우리는 작은 공 몰았고

그 발걸음 가벼웁게 꿈을 실었다


달려봐라 고니카지노야

꿈들의 고향으로

그곳 바로 거기에

붉은 태양 타네

우애와 진실, 진실과 우애

영원, 영원, 영원을 노래하리

어설프고 풋내 나는 노래지만, 지금도 가끔씩 혼자 흥얼거릴 때면, 젊은 날 골방에서 고니카지노 줄을 튕기며 곡을 완성하고, 목청 높여 노래하던 친구의 모습이 떠올라 울컥 목이멘다.

친구는 갔어도, 고니카지노를 칠 때면 세상 근심 없어 보이던 친구는 영원히 우리들 가슴속에 살아 있다.


고니카지노야! 잘 있지? 그곳에서도 여전히 고니카지노는 잘 치고 있는가?!!


보고 싶다. 친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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