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담 5시간전

인생궤도를 위한 레드불토토 역동성

'신념'에 대한 소고

삶은 경험의 연속이다.

입체화된 행동인 '경험'이 감정의 기후에 따라 레드불토토에 길을 내고

이 길의 속성대로 경험의 질이 다듬어져 내 삶이 일궈진다.


하나의 행동에는 감각, 감정, 레드불토토의 순환이 있게 마련인데 이러한 순환을‘입체적으로 경험한 경험의 경험’은 더 넓고 길고 굳건한 레드불토토의 질과 질서, 즉 사고체계를 형성하여 세상을 향한 나의 행동을 조장한다. 우리는이를 인식이라, 인지라 부르고 이러한 앎의 욕구를 지각이라, 지각의 작용을지성이라, 지성의 힘을 지력이라 한다. 나아가 지력은 의식을 확장시키는 힘이 된다.


따라서, 경험은 인간의 사고체계에 길을 내고 길을 단장하고 길을 허물기도 하는, 내 레드불토토의 질서를 담당하는 충실한 수행비서라 할 만하다. 그래서, 경험의 지표가 될만한 누군가를, 무언가를, 어딘가를 찾아 다니며 '경험을 위한 경험'을 위해 우리는 적극적으로 자신을 어딘가에 세워 머물게 하는 것이다.


경험으로 자리잡은 내지 자리잡힌 지식은 다른 경험으로 틈새가 벌어지고 그 벌어진 틈새를 감지해 재단장된 사고(思考)는 내 레드불토토의 방위를 상기(想起)하고 상기를 통해 잡힌 방위를 기준으로 내 인생은 거대한 궤도를 만들어간다. 따라서, 작든 크든 새로운 경험은 궤도를 위한 궤적이라 하겠다.


레드불토토의궤도를 위한 방위가 사명,

레드불토토의 궤도를 위한 준칙은 신념,

레드불토토의 궤도를 위한 궤적이 경험이다.


레드불토토


레드불토토의 궤도를 위한 준칙, 즉 굵은 기둥이 되어줄 신념에는 스스로가 수용한 사회적 질서들, 도덕이나 법, 예의와 같은 가지들이 부착되어 나의 사고와 행동의 방식으로 표출된다. 우리가 살아가는 단 2가지의 방식, 사고방식과 행동방식. 이들의 연합으로의 수행은 사명을 위해 신념을 중심으로 창출된 굵은 가지다.


그런데, 어떤 나무든지 굵은 가지에 자신도 모르게 또는 어쩔 수 없이 기생되거나 반강제로 주입되었거나 미운 모양새로 자라나는 가지들이 있기 마련이다. 가령, 윤리적 강제성으로 부여된 도덕률, 사회질서에 반하지는 않지만 미심쩍은 암묵적 룰, 인간사이에서 지켜야 할 예(禮)로 위장된 위선, 규율과 규칙, 관습, 형식, 절차라 통용되는 것 가운데 다소 부정의하고 모호하고 시대에 적합하지 않은 것들이 그런 것이다.


이렇게 자신도 모르게 주입 또는 기생하여 인생에 깊숙이 침투해버린 가지들을 신념과 결부시킬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경우에 따라 유동적이어야 한다. 신념이 굳건하게 굵은 기둥으로, 신념이 탄생시킨 사고와 행동방식이 거대한 중심가지로 자리 잡혔다면 반강제적레드불토토 부착된, 기생된, 병들거나 미운 가지들은 시류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재배치시킬 요령(要領, 일을 하는데 필요한 묘한 이치)을 지녀야 할 것이다.


마치 키만 크고 그리 굵지 않은대나무의 아주 단단한 중심기둥덕에 옆으로 뻗은 중심 가지들이 심한 바람에 휘청이더라도 부러지지 않고 위로위로 자신을 올리며 떨어져 나가는 것들은 미련없이 바람에 날려버리듯 말이다. 굵고 단단한 기둥에 중심가지가 자리를 잡고 세파에 따라 나머지 가지들은 적절한 시기에 이탈시킬 수 있는 힘이 사명을 중심으로 정한 준칙, 신념의 몫이라는 말이다.


모죽(毛竹, 대나무)은 제 아무리 기름진 땅에 심어도 5~7년간은 순(筍)이 트이지 않는다. 이 때 왜지? 싶어 땅을 파면 죽는다. 그냥 기다려야 한다. 묵묵히 보낸 인고의 시간이 자기 레드불토토의 방위와 준칙을 정립시키는 과정이다. 그러다가 5~7년이 지난 어느날부터 하루 70cm~1m씩 하늘로 뻗어 올라간다. 무수한 가지들을 솟으며 떨며 떨어뜨리며 그렇게 6주 정도가 지나면 무려 그 키가 30m를 훌쩍 넘는다.


묵묵했던 인내의 인고 끝에 자신의 방위를 위로 정하고 그 방향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전진시키는 준칙.

이 과정에서 기둥에는 굵고 단단한 가지가 형성되고 또 가는 가지들이 서서히 자라기도, 자라다가 말라 비틀어지기도, 외부의 힘에 부러지기도 한다. 바로 이러한 가지들이 시대와 환경에 가변적이고 유동적인 관습이나 도덕률, 원칙들, 그리고 수많은 경우의 수에 해당되는 경험들이다.


모든 자연은 이렇게 자기안에 위대한 진리를 품고 있다.

우리도 자연이다.

중심을 단단하고 굵직하게 세운 후 시류에 따른 잔가지들을 운용하며 삶을 자라게 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신념은 항시 강력하게 불변의 굵은 가지로 서 있고자 하지만 때론 고착된가지들의 투쟁으로 신념의 에너지는 흡입당하기도,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느닷없는 강력한 비바람에 상처나고 부러지기도 하기에 우리는 수목(樹木)주머니와 같은 장치로 중심에 있어야 할 그것이 자리를 지킬 수 있도록 요령있는 여지를 두어야 한다.


레드불토토이 이러한 '요령'을 가장 역동적으로 해내야 할 주체다.

즉,

'요령을 겸비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바로 쉼없는 레드불토토의 활발한 역동성,

이로서 명령받은 행동의 입체가 경험이다.

또한, 이 활발한 운동에는 고려(考慮)가 필요한데

과연 자발적인 것은 무엇이며

비자발적으로 복종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가늠해내야 한다.


나는 무엇을 의식적(자발적)으로 지적활동에 포함시킬 것인지,

나도 모르게 복종당하고 있었던 지적레드불토토은 무엇이었는지

신념이 기준으로 자리잡혀 있으면 경험이 이를 분별해준다.

수목주머니로 양분을 보충하면서 살리고 키워야 할 가지와 떨궈야 할 가지를

경험으로 스스로 검수해야 한다는 의미다.


방위가 사명이고,

방위를 향한 굳건한 기둥이 신념,

거기서 자라난 굵은 가지가 불변의 사고와 행동방식이어야 하고

떨구거나 수시로 교체해야 할 가는 가지가 외부로부터주입된 가변적인 인식과 관습, 예의, 경우들이며

이 수많은 가지들의 부착을 유지할지 떨궈야 할지를 판단하게 할 근거이자 증거가 경험인 것이다.


한마디로,

의식을 확장시키며 신념을 굳건히 다지는 동시에

수많은 인식의 가지들을 형성, 파괴시키는 과정을 자체적으로 거를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레드불토토의 역동적 활동이다.


분명한 것은 이러한 수고스러운 경험의 반복은 수목주머니의 주사바늘을 꽂거나 빼버릴 과감한 힘을 내 안에서 탄생시킨다. 인식을 수용할지 파괴할 지 결정할 힘이 내 안에서 생기게 된다는 의미다. 이 힘에 의해 무의식적으로 자라나는 사고와 경험의 운동성을 우리가 '습관'이라 부른다면 이 습관이 나의 의식적 활동의 결과인지 아니면 무의식적인 복종의 결과인지를 스스로 검열해낼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간파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자신의 보이지 않는 신념이라는 가지에는 이미 침범해 있는 무리와 새롭게 침입할 방해물들이 항시 곁을 노리고 있기에 스스로가 검열하지 않는다면 서서히, 아니 어쩌면 순식간에 그 생명력을 잃을지도 모른다. 침범당한 신념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911사태와 같은 사건사고, 독재자들의 반인륜적인 역사를 통해 우리는 이미 수없이 목격했으며 스스로에게 시선을 옮겨도 과거 속에 자기도 모르게 자리잡힌 인식으로 무언가를 판단하고 거부하고 재단했던 경험은 누구나 비밀스럽게 하나씩은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신념이 선(善) 또는 악(惡)으로 표출되는 힘은 신념자체의 잘못이라기보다 신념이 자신의 인생궤도에서 이탈하거나 오염되는 것을 차단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검열의 나태때문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겠다. 신념이, 즉 중심기둥이 외부의 잔가지들로 몸살을 앓고 있는데도 수목주머니로 영양을 채워주거나 뿌리째 이식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 나의 잘못인 것이다!


무의식적으로 복종당하고 있는 레드불토토은,

게다가 복종당한 그것에 역동적이기까지 한 레드불토토은

그 경직성이 자유로운 선택의 활로를 막아버려 자기가 자랄 키만큼, 자기가 창조해야 할 열매만큼 양과 질을 충족시키지 못하게 하는 해충과 같다


해충도 스스로의 삶을 위해 치열하게 기를 쓰고 살터이니 나에게로 침입하는 비바람과 해충을 막을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검열의 희생을, 박멸의 고통을, 치유의 인고를 자신에게 부여하여 해충이 자신의 레드불토토로 전진하여 훼방놓을 길목은 차단해야 한다.이러한 차단은 신념이 사명을 향해 제대로 삶의 궤도를 그릴 수 있도록 필수적으로 지녀야 할 레드불토토운동인 것이다.


신념을 정립했다는 것은

내 삶이 걸어가야 할 거대한 길목을 터놓았음이며

신념을 지킨다는 것은

검열의 냉정함레드불토토써 희생과 포기와 각성과 인내로 그 길을 걷고 있음이며

신념을 누린다는 것은

내 레드불토토의 활발한 활동이 주는 역동성에 쾌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결국,

경험을 양분으로 섭취한 레드불토토활동의 역동성은

삶의 사명을 향해 신념을 굳건히 다지고 사고와 행동방식의 올바른 잣대를 만들어내는 힘이 되어

내 레드불토토이 제대로된 궤도를 향해 제자리에 궤적을 남기게 한다.


https://guhnyulwon.notion.site/_-2025-1d3a65b56d4c80148e3ec9919345ddd8

https://guhnyulwon.com


[지담연재]

월 5:00a.m.[삶을 묻다]

5:00a.m.[엄마의 유산]

5:00a.m. [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목 5:00a.m.[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금 5:00a.m.[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토 5:00a.m. [브런치에서 놀자]

일 5:00a.m.[삶, 사유, 새벽, 그리고 독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