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카지노에서 만난 오래된 책방
나에겐 삐딱한 습성이 하나 있다.
어느 레스토랑 음식이 맛있다고 줄을 서면 그곳에 가지 않는다. 줄 서는 건 딱 질색이다.
물론딸들의 성화로 유명하다는 ‘에그 타르트 카페’ 앞에 몇 줄 섰다가 들어간 적은 있다. 선구자들이 공력을 들여 좋은 곳을 알아놓고 소개하는데 무시하는 처사라고? 그건 아니다.
난 무심코 걷다가 발견한 보화가 좋다. 내가 좋아야 좋다. 그래야 실망도 덜하니까.
아침에 타이틀카지노 시내를 나오기 위해 버스를 탔다.
목적지는있으나, 엄연히 말하면 없다. 무슨 말이냐면, 일단 버스 정류장 한 곳은 지정해놓고 내려서 생각하기로 했다.
관광객의 흥취에 젖어, 흥얼거리며 줄을 서서 버스에 오르는 중이었다.
그때였다.
60대 정도로 보이는 백인여자가 내팔을 치더니 앞질러 올라탔다. 내 느낌이었는지 모르는데, 그녀는 동양여자인 나의 옆구리를 한 대 치고 싶었는지 모른다. 정착민인 그녀에게, 여행온 사람들은 부러움의 대상일 수도 있다.
이해하고 싶어도 이건 아니지! 난 이래봬도 유럽에 오래 살며 세파에 찌든 이방인이다. 여행지에서는 되도록 분노를 억제하건만 오래 묵힌 용암이 들끓었다. 갑자기 정제되지 못한 독일어 단어가 튀어나왔다.
아뿔싸!
그녀가 내 독일어를 알아들은 모양이다. 이 단어는 그대로 말하면 ‘똥’이란 뜻이다. 좋은 말은 아니니 되도록 남발은 하지 않는다. 욕은 세계 공용어다. 포르투칼인들도 그정도 독일어는 알아들을 수 있을 듯. 아니면 운 나쁘게도 그 아줌마도 나처럼 여행온 베를리너이거나!
버스에 앉아 있는데 그녀가 힐끗힐끗 기분나쁘게 쳐다본다. 난 왼쪽 프로필이 더 자신 있는데 그날따라 그녀가 내 오른쪽 편에 앉아 있다. 튀어나온 내 오른쪽 광대뼈가 광선을 받은 듯 따갑고 시렸다. 그까짓 눈초리로 내 기가 꺾이겠나? 거친 게르만 민족 사이에서 17년을 살아남은 나다.
고개를 정면으로 향하고 눈을 똑바로 떴다. 하지만 잠시 후 나는 에너지가 빨리기 시작했다. 그녀가 청소기로 내 기를 흡입하고 있는 듯하다. 포르투갈에 오래 묵은 수도원 마녀일지 모른다. 그러면 지는 게임이다.
내리려고 하던 정거장 한 코스 전에서 내렸다. 역시 그녀는 독일인일 것이다. 그러지 않고서야 저렇게 강철 같은 눈빛으로 쏘아볼 순 없을 듯.
생각해보니 나에겐 아무 의미없는 행위였다.
에너지 낭비하지 않아야 한다.
살면 얼마나 살끼라고!
나는 이상하게 백인들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이 안 생긴다. 어쩌면 내가 타이틀카지노 인종차별의 일종일 수 있다. 아마도 거친 독일인들에게 치여 있어서 그런가 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부분 미국, 특히 백인들을 향해 고운 시선을 넘어 사대주의가 있는 듯하다.
워낙 못 살던 때에 미국인들이 우리나라를 돕겠다고 달려온 것에 대한 배려일까? 하지만 결국 그들의 솔직한 욕망대로, 우리는 분단국가로 여전히 위험천만 전쟁 중인 휴전상태다.
포르투갈인들이, 아프리카나 아메리카 정복은 선교 목적이었다고 에둘러 말타이틀카지노 것처럼
우리도 그런 허울에
스멀스멀 노예가 되었는지 모른다.
가끔 우리나라 어르신들 중에 미국 성조기를 들고 찬양하는 이들 보면 아프리카 식민지 노예들이 세뇌된 것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을 느낀다.
자립하지 않는 백성은 영원히 독재나 식민지의 늪에서 헤매는 것처럼 우리는 여전히 미국의 지배를 고마워해야 하는 처지에 있다. 해외에 오래 살아보니 그렇게 객관적으로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게 된다.
독일에 살면서, 솔직히 고백한다. 파란 눈에 금발을 한 순수 아리아 독일인들을 볼 때면 이상하리만치 기분 나빠진다. 그것은 외형적 열등감이라고 해도 좋다. 전생이란 게 있다면 난 아무래도 아프리카 노예였을지 모르겠다. 그래서 내 팔에 인주를 박고 다리에 족쇄를 채워 끌고가는 백인 노예상을 아주아주 증오했을 것이다.
그런데 어쩌다가 황인, 그것도 이상한 강대국들에 쌓여 있는 한반도에 태어났을꼬?결국 전생이란 의미 없다. 개연성이란 건 눈을 씻고봐도 없다.
버스에서 내리니 기분이 좋아졌다.
주변에 검은 머리, 검은 눈, 검은 눈썹을 가진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의 어두운 피부는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한다. 브라질 출신일 수도 있고, 혼혈일 수 있다. 물론 그들 사이에 뒤섞인 백인들은 대부분 서유럽의 관광객들일 수 있다.
태양이 내리쬐는 타이틀카지노은 채광 자체가 독일과 다르다.독일의 태양은 그늘지고 축 늘어져 있다. 이곳의 햇빛은 탱탱하고 강렬하다.
약간 그을린 피부는 태양 탓도 있지만 오래 전 역사로 거슬러 갈 수 있다. 항해에 나섰던 남자들은 재난을 당하거나 정복지의 여성과 살림을 차리고 터전을 이뤘다, 그러기에 포르투갈엔 남자가 턱없이 부족했다. 종족보존과 성적 욕망이라는 대명사 앞에서 여성들은 흑인 노예와 결혼하거나 한순간의 불장난을 하기도 했다. 결국 순수 혈통은 찾아보기 힘들다.
젊을 적 힘께나 썼을 법한한인어르신이 마치 무용담처럼 들려주었다.
1963년 처음 파독광부들이 독일에 정착한 곳은 남부 루르 탄광촌이었다. 그들 중 한국에 처자식을 남겨두고 돈 벌러 온 이들도 있었고, 총각인 경우도 있었다. 대부분 2~30대 청춘들이었다. 유부남 중엔 총각 행세하는 이들도 더러 있었다.
욕정의 피가 끓는 그들은 밤이면 갈증으로 목이 탔다. 당시 독일에는 2차대전 전쟁터에서 남편을 잃은 젊은 과부들이 많이 살았다.
독일 과부들의 밤도 괴로웠다. 육신은 수컷을 향해 유혹의 추파를 던졌다.검은피부든 노란 피부든 상관 없었다.어떤 파독광부는종종지하탄광에서 올라오면 근처 타이틀카지노인 과부와한순간 사랑을 나눴다.물론 건실한 파독광부도 많았으니 일반화는 금물!
타이틀카지노에서 채광을 보며 그을린 낯빛이 자연과 운명과 뒤섞인 결과물이라는 것을 느꼈다. 순간 파독광부까지 연상되니 난 여전히 독일을 떠나오지 못하고, 이곳에서 온전히 여행을 즐기지 못한 것 같은 자괴감에 빠진다.
과거의 언저리를 상상하다 현재를 돌아본다. 문득 주변 풍광이 들어왔다.
내 눈앞에 펼쳐진 것은 굳이 찾으려 하지 않았던 타이틀카지노이었다. 나는 이런 기대하지 않았던 도착지를 사랑한다.
'사 다 코스타(livraria sá da costa) 타이틀카지노'이다.이곳에 가면 과거나 역사 속 누군가를 만날 것 같다. 오래된 책은, 글쓴 작가와 그 책을 읽고 죽어간 무수한 영혼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먼지가 낀 책을 펼치면 지금 읽고 있는 독자는 마치 마법처럼 오래된 시간 속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그래서 고타이틀카지노을 사랑하는 이들은 쉬이 그 마법같은 패티쉬를 잊지 못한다. 고서들을 수집하는 사람들도 비싼 대가를 치르고 손에 쥐고는, 책이 내뿜는 영혼의 힘에 끌려 헤어나오지 못한다.
1913년에 개업했다는 이곳은 겉으로는 작아보였는데 어라, 안쪽으로 마치 벙커 안 도로 같은 느낌이 들 정도로 넓고 길다. 마치 미로처럼 연결되어 있는 타이틀카지노에는 오래되고 진귀한 책들이 쌓여 있었다.오래된 엽서와 골동품이 박물관을 연상하게 하고, 2층에는 갤러리가 있다.
오래 전에 주인을 잃었거나 버려졌거나, 새로운 주인을 찾지 못한 책들이 세월의 고통을 이기지 못한 채 너덜너덜한 몸으로 누워있다.괄시받는 책들은 아예 후미진 박스 안에 잠긴 채 마치 사막의 모래궁전처럼 잊혀진 존재가 된다.
책들은 한 인간의 삶보다 더 오랜 시간 굽이굽이 돌아 이곳으로 온 게 분명했다.
프랑스어, 에스파니아어, 이탈리어 등 유럽 나라의 도서가 자신의 언어로 담겨져 있는 매대가 보였다, 도스토예프스키, 솔제니친, 안톤 체홉의 책은 아예 따로 책장이 있었다.
윈스턴 처칠에 관한책 <갇혀진 사자(The caged Lion)는 제목 때문에 호기심이 갔다. 언젠가 그를 찍은'포효타이틀카지노 사자'라는 제목의 사진은 본 적이 있는데
이 책은 의외다.
물론 내용까지 보려면 여행시간을 다 잡아먹을 것이고 책 전체를 이해하기에도 만무하다. 논문 쓸 것도 아닌 이상.
1,2차 세계대전에 관한 책들 중에
일본 그림책이 눈길에 닿았다.
1980년에 쓰여진 그림책인데 혹시나 우리나라 일제강점기의 내용이 있을까 훑어보았다. 하지만 자기네 국가의 전쟁 피해인 원자력 폭탄에 대한 고발책이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해 그들은 ‘테러리스트’로 명명하는 것을 보면, 이 책 또한 자국 위주의 시선인 건 분명하다. 그들도 전쟁 후유증으로 힘들다면 일본에 피해당한 국가들은 몇 배가 된다는 것을 어찌 모르는 것인가? 책을 보다가 화딱지가 나 덮어버렸다.
책방을 나와 거슬러 올라가 유명하다는 ‘Betrand Chiado’ 타이틀카지노도 들렀다. 앞서 얘기했듯 알려진 곳에는 잘 안가고 싶지만 한창 젊은 딸들에게는 남기는 사진이 유력한 이유였다.
포르투갈이 낳은 작가 ‘페르난도 페르소’의 작품도, ‘주제 사라마구’의 소설은 아주 보기 좋은 위치에서 고위층 인사처럼 고개를 빳빳이 든 채 방문객을 맞이한다. 포르투갈 국민들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주었던 ‘주제 사라마구’이니 만큼 얼마나 자랑스럽겠는가?
우리가 한강 작가에게
고마워하는 것처럼 말이다.
역시 나도 그곳에서 한강의 책들을 더듬고 있었다. 포르투갈의 타이틀카지노에 한국책이 서 있는 장면은 아이들에게 애국심을 고취시킨다는 의미가 있다.
과거의 책과 현대의 책들이 조우하는 타이틀카지노을 만나자,타이틀카지노에 온 것이 뿌듯해졌다. 할 일을 다한 것 같다.
“애들아! 이제 타이틀카지노도 둘러봤으니 베를린 가자!”
아이들은 이미 기념품 사는 곳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P.s
한 나라의 도시에 여행 가면 꼭 타이틀카지노을 들르는 것 같아요. 그곳에는 그 도시의 역사와 문화, 인간의 영혼이 숨쉬는 것 같아요. 한 그루의 오래된 나무처럼 숨결을 지니고 있지요.
삐딱하게 욕으로 시작해서 혹시 거북하신 분들
다음 호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