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일곱살 때에는 ‘목하이원슬롯를 잘 내는 방법’을 배우고 싶었다. 그래서 ‘방송아카데미’라는 곳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우리가 보통 알고 있는 세 개의 ‘공영방송 이니셜’이 붙은 상호의 아카데미가 있었다. 그 곳들은 생각보다 비용이 비쌌다. 다니고 싶은 마음은 컸으나, 며칠동안 고민을 했다. 몇 군데 더 찾아내어, 우선순위를 정해야만 했다.
최종적으로 두 군데로 의견을 좁히고는 한 일주일 정도 시간을 끌었다. 힘들디 힘들게 상담 내용을 받아 적어 보았다. 비용과 거리를 제외한 두 곳의 비슷한 커리큘럼에 저울질이 필요없겠다 싶었다. 너무 뜸을 들였나 보다. 단순하게 생각하자. 홍보데스크 직원의 목하이원슬롯의 친절도와 최소의 투자비용으로 마음이 기울어졌다. 결심이 섰다.
“나 성우 되는거 배우고 싶은데 배워도 돼?”
나는 결혼한지 한 달쯤 되었을 때 아카데미를 등록하기로 결심을 했다. 남편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배우는 건 좋은데, 자기... 목하이원슬롯 너무 작지 않어?”
그래서 나는 “배우면서 달라지겠지” 하며, 결심이 서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남편은 이 때 왜 그걸 배우고 싶은지, 거길 꼭 다녀야 되는거야? 와 같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드디어 첫 시간, 좁은 강의실에 들어서니 ‘목하이원슬롯가 매력있는’ 나만의 남자 이상형, 여자 이상형들이 가득했다. 방송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하니, 멋있고 부럽고 그랬다. 강사님을 만난 첫 인상은 이랬다.
오로지 청력이라는 감각에 신경을 곤두세우게 되는 ‘몰입의 신(申)’을 만난 듯 했다.
낭독 시범을 들을때에는 얼른 친해져서 그 노하우를 전수받고 싶었다. 간단한 자기 소개 마저도 ‘목하이원슬롯 베테랑’들 앞에 서게 되니, 떨렸고 음절 하나하나가 신경쓰였다.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그 사람들에게 압도되었고 -발성과 호흡 수업을 시작으로- 얼굴이 후끈거리는 날들이 계속 되었다.
몇 개월이 흘렀다.
많은 사람 앞에 서서, 혼자만의 무대를 갖게 된 어느 날, 두려움과 설레임이 공존하는 시간들이었다. 자음, 모음을 복식호흡을 통해서 명확한 발음으로 토해내야 했고 낱말의 고저, 장단을 일일이 확인하는 치밀한 과정이 필요했다. 아마도 구깃한 A4 종이 한 장에 그 만큼 공을 들인 적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연필로 억양을 올려야 하는 화살표를 그리고 띄어 읽기를 표시해 나갔다.
안티고네의 독백을 분석하는 작업?은 옛날 국어시간의 관동별곡을 풀이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흥분과 즐거움을 주었다.
투니버스의 성우들에게 수업을 들었는데 아따맘마에서 연기한 그 사람들의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나에게 이런 일이...
지금 생각해도 재미있는 일은 ‘혼자 노래방에 가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 수업 전에 전철역 근처에서 대낮에 문을 연 노래방을 찾아갔다. 속에서 뭔가 빵 터지는 후련함을 겪는 몇 번의 기회를 만들어냈던 이 힘이 지금도 생생했다.
어느 날, 아카데미 교육생을 관리하던 언니가 나를 불렀다. 같이 성우 공부를 하면서, 서로 장점을 찾아주고 약점을 알려주는 친한 사이였다. 아는 관계자가 피자 광고 하나 한다는데, 가볼래냐는 것이었다.
스튜디오로 찾아가는 발걸음은 가벼웠다. 드디어 내 목하이원슬롯가 세상에 알려지겠구나 하는 설레임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발걸음은 미약하고 작아져야만 했다. 속도, 발음, 감정이입은 정말 어려웠다. 이 광고를 듣고 피자를 사 먹고 싶게 만들어야 하는데... 하지만 최선을 다했다.
보이스액터의꿈을 가진 사람들이 한 번의 오디션을 갖기도 힘든 것을 난 이 날을 시작으로 교통방송 2차 더빙테스트, 엠비씨 공채 오디션, 아카데미 졸업작품이자 미군 시사 나레이션(우리말 더빙)을 맡는 복을 안게 되었다.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시작한지, 6개월 쯤이었던가... 유리창과 방음벽으로 이루어진 방으로 들어가 마이크 앞에 서서는 목하이원슬롯를 녹음하기 시작했다. 모니터에 나오는 장면에 맞춰 읽어보기도 했다.
기초 과정이 어느 덧 지났다.
다양한 지문과 상황들을 만나면서, 더 이상 마이크 앞에서 쑥스러워서 어색하게 참아내던 웃음소리는 내지 않게 되었다.
부모님은 아직도 나의 직업이 강사라는 것을 믿기지 않아 하신다. 숫기가 없어 남 앞에서 말을 잘 할 수 있으려나 걱정을 많이 하신다.
아이들이 말을 배우기 시작했을 때, 여우와 나그네와 다섯 형제의 캐릭터대로 생각을, 문장을... 표현할 수 있었다.
강사소개를 또박또박 하게 되었다.
피티에 나오는 내용을 명확한 발음으로 듣기 좋게 전달해내고 있었다.
비록 보이스엑터의 업을 삼지 않고 있지만 보이스는 제대로 살려내고 있구나.
어린 시절 잠깐 난 주산학원을 다닌 적이 있다. 지금도 암산을 할 때에는 머릿속에서 주판알을 튕기고 있었다. 원데이 클래스로 목공체험을 했던 남편은 지금 수납장도 거뜬히 만들어 냈다.
누구나 큰 의도 없이 접했던 한 번의 경험들이 자신의 생각과 생활의 반경을 넓혀주는 것 같았다.
복지관에서 독서치료 수업을 들었던 경험으로 실버요양원에서 어르신들에게 책읽어드리기,
시각장애우를 위한 녹음봉사도 했었고 앞으로는 목하이원슬롯 봉사단으로 활동을 할 계획을 갖고 있다.
잠깐의 경험이 나의 잠재력이 되었고 그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내 일에 시너지가 되고 있었다.
재활용을 뜻하는 그림은 <하이원슬롯의 띠이다. ‘어느 지점에서나 띠의 중심을 따라 이동하면 출발한 곳과 정반대 면에 도달할 수 있고, 계속 나아가 두 바퀴를 돌면 처음 위치로 돌아온다’는 뜻이다.
혹시 학과를 선택하고 직업을 선택하는 청년들이 적성과 스펙쌓는 것에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면 청년을 겪은나는 그들에게 쓸모있는 미소를 보내고 싶다. 걱정도 아닌 핀잔도 아닌 격려의 미소.
마음의 중심을 따라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도착이라는... 목적지라는... 결과는 2순위라고 이야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