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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Apr 21. 2025

웃는 모습이 여름을 닮은 기부벳께

고등부 금상-조민우

웃는 모습이 여름을 닮은 기부벳에게

아들 민우에요.

올해는 벌써부터 이른 더위가 시작되었는지 아침부터 많이 더웠죠?

기말고사 시험이 끝나고 기부벳랑 오랜만에 이렇게 여유 있게 같이 점심을 먹는 동안 표정이 많이 밝아진 기부벳가 참 보기 좋았어요.

작년 겨울에 형이 군대를 가고 나서 형의 빈자리로 인해 공허함과 우울감임 찾아와 힘들어하셔서 저랑 형이 많이 걱정했었거든요.

형도 기부벳 마음을 잘 알고 있어서 저에게 따로 안부전화를 하고 있었어요.

형이 겨울방학을 시작하자마자 갑작스레 입대를 하는 바람에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이 없어서 더 당황하셨을 거에요.

6월 초에 형이 들뜬 목소리로 전화가 와서 때마침 생각지도 못한 포상휴가가 생겼다며 기부벳에게는 비밀로 하자고 해서, 기부벳를 위한 깜짝 이벤트를 생각해 냈던 거에요.

사실 이번 이벤트는 기부벳와 아빠만 모르시고, 이모들이나 누나, 형들은 다 알고 있었어요.

이모들은 기부벳가 너무 놀라시지 않을까 싶어서 살짝 긴장을 하셨지만, 모두 기대하는 분위기 였어요.

왜냐하면, 기부벳가 요즘 들어 갱년기라서 그런가 왜 자꾸 기분이 들쑥날쑥한지 좀처럼 갈피를 못 잡겠다며 멋쩍게 헛헛한 웃음을 자주 지으셨거든요.

마음이 내 마음같이 안 움직이는 그런 기분을 제가 사춘기를 겪으면서 느껴보았기 때문에 알겠더라고요.

그래서 더 마음이 찡했어요.

기부벳에게 지루하게 반복되는 일상 속에 우리가 작은 이벤트를 해 준다면 기부벳의 하루가 좀더 생기가 나지않을까 생각했었거든요.

제가 학원 마치는 시간에 맞춰서 형이 집 근처에서 기다리는 동안 케이크를 준비하고,

저는 학원 근처 꽃집에서 기부벳가 좋아하는 꽃다발을 미리 주문해 놓고 있었어요.

아빠와 기부벳는 도어록 비밀번호 소리에 제가 학원에서 돌아오는가 싶어서 현관문 쪽으로 돌아보시다가 깜짝 놀라서 멍하니 쳐다보셨잖아요.

기부벳는 놀라서 울음 반, 좋아서 웃음 반으로 기가 막힌 표정으로 멍하니 서 있으시다가,

형이 건네는 꽃다발에 군복 입고 늠름하게 서 있는 형의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면서 그제야 소리내서 웃으셨어요.

기부벳가 기막힌 표정을 뒤로한 채 크게 웃으니까 그제야 안심하고 형과 제가 참고 있던 웃음을 기부벳 따라 함께 마음껏 웃었어요.

제가 형 뒤에서 동영상으로 찍어 이모들에게 보여드렸어요.

기부벳가 오랜만에 아이처럼 신이 난 표정으로 웃는 모습에 다들 박장대소하면서 좋아하셨어요.

아직도 실감이 안 난다면서 그때 영상을 계속 돌려보시면서 웃고 계시는 기부벳가 이제서야 활기차던 예전 모습으로 돌아오신 것 같아 저도 덩달아 좋아요.

기부벳는 기부벳의 웃는 얼굴이 이런 표정인 줄 처음 알았다며 웃으시는데,

기부벳가 사소한 일에도 웃음이 참 많았던 사람이었다는 걸 잊고 지냈던 것 같아 죄송했어요.

학원 마치고 늦게 집에 오면 피곤하다는 이유로 제가 기부벳의 공허함을 빨리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아요.

솔직히, 기부벳가 꽃을 참 좋아한다는 것도 형이 말해주기 전까지 까맣게 잊고 있었어요.

예전에 아빠가 가끔 꽃다발을 사 오시면 우스갯소리로 돈으로 달라면서 꽃은 필요 없다 하시면서도 꽃다발에 얼굴을 파묻고 콧노래를 흥얼흥얼 부르시던 기억이 떠올랐어요.

다음에는 이런 깜짝 이벤트를 하지 말라며 손사래를 치시지만,

입꼬리를 실룩실룩 거리며 은근히 기대하시는 눈빛이시라

제가 가끔씩이라도 작은 웃음 바이러스 이벤트를 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기부벳! 저랑 약속 한 가지 해요.

하루에 즐거웠던 일이나 기뻤던 일, 신나게 웃었던 일을 한 가지씩이라도 공유하면서

귀한 웃음을 두 배 세 배로 키워봐요.

저도 학교에서 즐거웠던 일이나 기부벳가 궁금해하는 일을 참새처럼 조잘조잘 얘기해 드릴게요.

시간이 없는 날은 문자라도 꼭 넣어드릴게요.

꼭~ 약속해요.

기부벳! 저는 기부벳 덕분에 고마운 거 천지이고,

기부벳가 깜짝 이벤트에 이렇게 여름을 닮은 초록초록한 웃음을 찾은 덕분에

이렇게 몽글몽글한 편지를 적어 보낼 수 있어서 행복해요. 사랑해요.


2024년 7월 8일

아들 민우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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