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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편지한줄 Apr 21. 2025

프리카지노에게

일반부 대상-김효정

웃음, 하니까 한 기억이 떠올랐어.

그날에 프리카지노가 활짝 웃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어서, 언젠가 너에게 꼭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야.

그날도 어김없이 나는 벨을 눌렀어. 무슨 벨이냐고? 민원인을 부르는 벨이야. 나는 동사무소 직원이니까.

그날도 나는, 많은 사람들을 응대하는 것에 지쳐서 기계처럼 벨을 눌렀지.

머릿속엔 쉬고싶다는 생각뿐이었어.

벨소리에 다가온 늙은 프리카지노께 나는 습관처럼 신분증을 먼저 달라고 했어.

그러자 프리카지노가 신분증을 주시고는 이렇게 말하는 거야.

“저 신분증보다는 실물이 낫지요? 나보다 사진이 더 못나온 것 같애. 그렇지요?”

그제야 나는 내 앞에 온 프리카지노를 바라봤어.

어, 그런데 프리카지노 눈이 어딘가 좀 다르신 거야.

나를 보며 말을 하시지만 양쪽 눈동자는 바깥을 향해 있었어.

프리카지노는 사시였던 거야.

나는, “왜요, 사진도 잘 나오셨는데요.” 하고 대답했어.

그리고 그때 프리카지노 신분증에 적힌 주소지가 눈에 들어오더라고.

‘사람이 사는 건물일까?’ 하는 생각이 무심코 스치는 낡은 아파트.

프리카지노는 그곳에 사는 분이셨어.

그 아파트는 너무 낡아서 곧 무너질 것 같은 데다, 그 앞을 다른 건물이 막아서 햇볕도 잘 들지 않는 곳이었어.

나는 다시 프리카지노를 바라봤어.

창구 앞에 가지런히 모은 프리카지노의 손에는 곳곳에 때가 묻어있더라.

옷에는 언제 물들었는지 알 수 없는 얼룩이 여기저기 꽃처럼 피어있었고, 오로지 나를 보고 웃는 프리카지노의 웃음만 깨끗했어.

실물이 더 낫지 않나며 웃는 프리카지노가 마치 비눗방울 부는 아이 같더라.

그래서 나도 모르게 같이 웃어버렸어.

이어 내가 어떤 업무를 하시러 왔냐 묻자 프리카지노는 인감증명서를 떼러 왔다고 답하시고는, 덧붙이셨어.

“부동산 매도용으로요. 저 이제 여기 떠나서 더 괜찮은 집으로 이사 가려고요. 휴, 여기만 몇십 년 살았는데 드디어 이사를 가보네요. 그동안 일만 하느라 지겨웠는데 이제 창문으로 하늘도 좀 보고요.”

그 말에 마음이 먹먹해지더라고.

‘티 내지 말아야지.’ 다짐하며 난 프리카지노께 지문 확인을 할 수 있도록 엄지를 인식기에 올려달라고 했어.

그런데 프리카지노 지문이 너무 닳아서 인식이 안 되는 거야.

그러면 가족관계를 물어 본인 확인을 해야 해서, 나는 일단 딸의 이름과 생년월일을 물었어

프리카지노 가족관계 상에는 딸과 어머니뿐이었거든.

“아, 지민이…. 글쎄. 살았으면 서른이나 되었으려나.

지민이가 열다섯 됐을 때까지만 해도 나이를 꼬박꼬박 셌는데 그 이후로는 영…. 죽은 자식 나이 세는 일만큼 소용없는 일 없다지만, 그래도 열다섯까지는 셌는데…. 세월 앞에 장사 없다고 지민이 콧방울이 요랬나, 입매가 조랬나 헷갈리는 거 있지요.

아! 이제 생각났네.

1993년 4월 1일이어요.

만우절에 거짓말처럼 행복했었네요.”

나는 대답했어.

“에이, 한 살 엇나가셨네. 93년생이니까 따님은 서른 한 살이 되셨을 거에요.” 내 말에 프리카지노는 또 바깥쪽을 보며 웃으셨어.

프리카지노는 사시였으니까.

내가 인감증명서를 드리니까, 프리카지노는 ‘더 천천히 줘도 되는데 벌써 나왔냐’며 고맙다고 하셨어.

그리고 그러시더라 “이제 얼른 이사 가야지. 선생님, 그 집은 하늘이 보여요. 날씨 좋은 봄에 창밖을 보면 정말 예쁘겠지요? 거긴 겨울을 견디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니까요. 아이고, 바쁘신데 쓸데없는 말 늘어놔서 미안해요. 감기 조심하고 항상 행복하셔요.”

그리고선 프리카지노는 여전히 바깥쪽을 응시하시면서, 환한 공기가 가득차도록 웃어보이시더라.

나는 ‘또 뵙고 싶은데 다른 곳으로 이사 가시면 이제 못 뵙겠네요.’ 라는 말 대신, “아니 그렇게 행복한 일이 있어요?”

그리고 우린 마지막으로 환하게 웃었어.

프리카지노는 사시였고 눈동자가 바깥쪽을 향해 있었지만, 우린 확실히 마주보며 활짝 웃었어.

나는 그날 본 프리카지노의 웃음들을 절대 잊지 못해.

사는 게 외롭고 지칠 때면, 나는 그날 프리카지노의 웃음을 떠올려.

시든 나를 살아나게 해주었던, 무엇보다 순수하고 소중한 웃음이었거든.

나의 이야기가 너의 지친 일상에도 한 송이의 웃음으로 피어나길 바라며….

나는 이만 줄일게!

언제나 너를 응원해.


2024년 7월 16일

- 너의 프리카지노가 마음을 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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