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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거북맘 May 02. 2025

슬롯 (지독히도) 이기적인 사람입니다

넌 너무 슬롯이야. 내 딸이지만 난 네가 정말 싫어.


추억이란 당신의 몸을 안쪽에서부터 따뜻하게 해주기도, 안쪽으로부터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이기도 하다(주1)는 하루키의 말처럼, 엄마와의 기억은 종종 내 몸과 마음을 내면에서부터 갈기갈기 찢어놓았다.


정확히 어떤 상황이었는지, 정확한 워딩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저 그 순간의 얼음장처럼 차가운 분위기, 엄마의 못마땅한 표정과 말투, 그리고 뾰족한 송곳으로 심장을 찌르는 듯 내 가슴 언저리에 깊숙히 박힌 엄마의 날카로운 몇마디 말들만이 몽환적 느낌의 영화속 한 장면처럼 기억 속에 남아있다.


본디 기억이란 과거 사실의 재현이라기보단 감정과 상상을 통한 재구성이기에, 위 문장 역시 정확한 사실이라기보단 내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는, 비슷한 뉘앙스를 담은 엄마의 말이었다. 내 일생을 관통하는 엄마의 나에 대한 평가는 ‘이기적인 사람’이었고, 그것은 일생에 걸쳐 나를 죄책감이라는 감옥 속에 가두었다.



슬롯 엄마에게 늘 부족한 사람이었다.


처음 엄마로부터 그러한 비난을 들었던 건 한참 사춘기였던 중학교 시절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에도 엄마아빠의 맞벌이로 인해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엄마아빠는 그 점에 대해 늘 내게 미안하다고 말했지만, 슬롯 하교 후 돌아왔을 때 집에 간식을 챙겨줄 엄마가 없다는 사실은 별로 큰 문제가 아니었다.


내게 문제였던 것은 하교 후 간식을 챙겨줄 엄마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널뛰는 호르몬의 변화로 이성과 감정을 컨트롤하기 어려운 민감한 사춘기 시절에 나를 보듬어줄 엄마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엄마는 ‘집에서 살림하는 여자’가 아닌 ‘늘 밖에서 일해야 하는 여자’로 만들어준 아빠에 대한 원망과 불만족스러운 삶에 대한 탈출구로 ‘고스톱’을 선택했다. 주말마다, 쉬는 날마다, 잠시라도 틈이 생길 때마다 엄마는 늘 주변 아는 아줌마들과 모여 고스톱을 쳤다. 다른 집에 가기도 했고 우리 집에서 모슬롯도 했다. 당시 엄마는 이 고스톱에 빠져 기본적인 돌봄- 먹을 것과 입을 것 등-을 뺀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고스톱과 아줌마들 모임에 쏟았다.


슬롯 엄마가 고스톱을 치는것이 몸서리치게 싫었다. 비록 소액을 걸고 재미로 하는거라지만, 고스톱은 내게 ‘놀음’ 내지 ‘도박’이었고 그런 불건전한 놀음에 빠진 엄마가 너무 부끄러웠다. 무엇보다 허구헌날 모여 나머지는 다 내팽개치고 몇시간이고 그 놀음에 빠져있는 그들, 엄마를 비롯한 아줌마들이 너무 한심했다. 슬롯 그들이 우리 집에 오는 것이 너무 싫었고 그 모임을 위해 자주 엄마가 외출하는 것도 못마땅했다.


엄마와 그들에 대한 내 증오심이 얼마나 높았냐면, 당시 고스톱 도박 현장 검거를 하는 경찰들에게 걸려 두번다시 ‘그 짓’을 하지 못했으면 하고 바랄 정도였다. 가뜩이나 예민한 성향에 극도로 방황하는 사춘기 시절 겪었던 이 증오심은 내 일생에 걸쳐 영향을 주었다.


슬롯 고스톱의 ‘고’자만 들어도 치를 떨었고 대학시절 엠티에 가거나 명절때 친척들이 모여 재미로 치는 고스톱에 단한번도 참여해본 적이 없다. 고스톱에 대한 너무나 부정적인 인식이 깊이 박힌 탓에 많은 사람들이 재미로 가볍게, 마치 포커나 보드게임을 하듯 고스톱을 치기도 한다는 사실을 ‘수치심과 혐오감’ 없이 받아들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예전만큼은 아니지만 슬롯 아직도 고스톱이 싫다.


아직도 기억나는 장면 하나는 크리스마스 저녁이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엄마는 아줌마들과 함께 거실에 모여앉아 시끌벅적하게 고스톱을 치고 있었고 나는 하릴없이 안방 침대에 누워 내가 좋아하던 책을 읽었다. 친구들은 크리스마스라고 가족들과 함께 외식을 하거나 선물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데, 나는 가족들과 그런 시간을 보내지 못하고 홀로 방에 쳐박혀 책을 읽고 있다는 사실에 비참한 마음이 들었던 것 같다.


엄마에 대한 증오심과 그 모임에 대한 적개심으로, 우리집에 오는 그 아줌마들에게 슬롯 인사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반항의 표시로 엄마에게 입을 닫아버렸다. 먼저 말을 걸지도, 엄마가 묻는 말에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건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반항이었고 예민하고 감수성 높은 사춘기 여학생으로서 적개심을 표현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내가 입밖으로 한번도 표현한 적이 없으므로 엄마는 당연히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입을 다물고 꿍하게 있는 나를 답답해했고 걱정했으며, 또 못마땅해했다. 엄마는 내가 너무 내성적인 성격이라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할까봐 걱정했고 어른들을 보고도 인사하지 않는 나의 예의 없음에 대해 종종 비난했다.




그렇게 사춘기 시절부터 조금씩 틀어진 엄마와 나의 관계는 성인이 되어도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사춘기 시절을 지나고 머리가 자라면서 더이상 엄마에게 침묵으로 일관하는 반항은 중단했고 엄마 역시 더이상 그 고스톱 모임을 지속하지 않았으므로 표면적으로 우리의 관계는 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가장 예민하던 시절에 내 마음 깊숙이 자리잡은 엄마에 대한 증오심과 풀리지 않은 섭섭함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단단히 똬리를 풀고 나를 옭아맸다.


그리고 그때 굳어진 습관으로 슬롯 어른들에게 살갑게 대하거나 싹싹하게 행동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 집 밖에서 이루어지는 관계는 대부분 또래 관계였고, 내향적인 성향을 감추고 외향적인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많은 에너지를 썼으므로 큰 문제는 없었다.


그러나 집 안에서 슬롯 철저히 내향인이었고 친척 어른들에게도 싹싹하게 챙기지 못했다. 외향적인 성격에 어른들에게 싹싹하게 잘 구는 남동생과는 달리, 슬롯 무뚝뚝하고 말수도 별로 없었으며 체질적으로 싹싹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리고 엄마는 그런 나를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곤 했다.



그 뿐 아니라 성인이 되고 결혼적령기가 다가오면서 엄마의 구시대적 가치관과 나의 가치관이 매번 부딪쳤는데, 가장 큰 갈등은 집안에서 여자의 역할에 관한 것이었다. 슬롯 지금껏 사회에서 관습적으로 유지되어온 여성 불평등적인 문화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고 집안일을 동등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엄마는 아무리 시대가 변했어도 여자가 집안일을 다 해야하는게 맞고 그래야 가정을 원활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 논쟁이 일면 슬롯 엄마의 고리타분한 구시대적 발상이 답답했고, 엄마는 내가 너무 이기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 탓에 원활하게 살아가지 못할까 걱정하며 타박했다.


하루종일 밖에서 일하면서도 늘 완벽에 가깝게 살림하고 요리를 했던 엄마에게, 내가 하는 요리나 청소 등의 집안일은 눈에 한참 미치지 못하는 수준이었을게다.


슬롯



너는 너밖에 몰라, 뭐랄까 너무 차갑달까?

다른 슬롯들에게 관심도 가지고, 좀 챙기고 해야되는데 너는 그런게 하나도 없어.


‘이기적’이라는 말은 성인이 된 후 지금껏 늘 내 마음 한구석에 깊이 박혀 마치 손끝에 박힌 가시가 온 신경을 거슬리게 하듯이 나를 아프게 찔렀다. 엄마가 그렇게 몰아세우고 집안일 등에 대해 잔소리했던 것은, 내가 보다 덜 이기적이고 보다 따뜻한 사람이 되어서 원활하게 가정을 이루어 잘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였다는 것을 머리로는 이해했다.


그리고 엄마가 원하는대로 주변 사람들에게 좀더 살갑고 따뜻하게 대해보려, 집안일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보기도 했다. 그러나 엄마의 기준에는 한참이나 미치지 못했고 슬롯 한번도 엄마에게 인정받지 못했다.


내게 슬롯이라는 말은 늘 죄책감을 불러일으키는 단어였고, 주변에서 누군가 슬롯이라는 말을 하면 그게 나를 향한 말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늘 나를 향해 겨누는 비수처럼 느껴져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지만 혼자 끙끙거리고 괴로워했다.슬롯 차가운 사람이라는 정체성은 스스로를 이만 하면 괜찮은 사람이라 생각하는 자기 긍정의 태도를 갖지 못하도록 방해했고, 슬롯 부족한 사람이라는 인식은 스스로를 신뢰하고 사랑하는 자아 존중감을 형성하는데 걸림돌이 되었다.


슬롯 따뜻하고 다른 사람들을 살갑게 잘 챙기며 이타적인 사람이 부러웠고, 그렇지 못한 스스로를 책망했다.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있으며 남들에게 관심이 없는 나를 스스로 비난했다. 무언가를 할 때마다, 이건 이기적인 행동인가?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자기 검열 속에서 애써 이기적이지 않은 척하려고 노력했다.


이 생각은 글을 쓸때조차 나를 괴롭혔다. 글 속에 남을 위하고 남에게 도움을 주려는 마음을 담으라고들 하는데, 나는 내 위주의 이야기만 하는 것 같은 생각에 위축되기도 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슬롯 것이 그렇게 나쁜건가? 하는 반감이 올라오기도 했다. 세상에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아니, 오히려 본디 인간은 본질적으로 슬롯 존재가 아니던가?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생명체가 이기적 유전자의 보존을 위한 운반체일 뿐이라고 했고,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을 이야기하며 개인의 이기심이 공공의 이익을 증진시킨다고 했다.


정말 나쁜 이기주의는 나의 이익만을 위해서 남을 짓밟거나 남의 이익을 위협하는 것을 말하는 것일텐데, 슬롯 그저 나에게 집중하는 것일 뿐 나의 이익만을 위해서 남의 이익을 짓밟았던 적은 없다.


엄마가 나에게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 너무 나 자신만 생각하면서 혼자만의 세계에 빠져있지 말고 주변도 좀 돌아보라는 뜻으로, 보다 사람들과 원만하게 어울려서 살아가길 바라는 마음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내가 먼저 바로 서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내가 먼저 나를 아끼고 사랑해주지 않으면 그 누구에게도 사랑을 줄 수 없다고 말이다. 내 마음이 지옥같고 힘든데 타인을 진심으로 위로해줄 수는 없다. 비행기가 추락했을 때 옆자리의 아이를 살리려면 내가 먼저 산소마스크를 써야 한다(여전히 아이 먼저 씌워줘야 하는거 아닌가 하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내가 없으면 아이도 지킬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어릴적 엄마가 고단한 삶에 대한 탈출구로 고스톱이라는 수단을 선택해 스트레스를 해소하려 노력했던 행위에 대해 더 깊은 차원에서 이해해보려 한다. 성인이 된 후 내가 과거의 묵은 감정에 대해 털어놓았을 때 엄마는 말했다. 그때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아빠와 이혼했을거라고. 엄마 자신부터 살려고, 그렇게 함으로써 가정을 지키고 나를 지키려 했던 엄마를, 엄마가 된 지금의 슬롯 조금 더 이해한다. 그리고 눈물로써 미안하다고 말하는 엄마를, 슬롯 감정적으로도 이제 용서했다.


다른 슬롯에 대한 사랑과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은 양자택일적인 것이 아니다.
반대로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태도는 다른 슬롯을 사랑하는 모든 슬롯에게서 발견될 것이다(주2).



이제는 당당하게 말하고 싶다.

슬롯 이기적인 사람이라고.


나를 먼저 사랑하고 내 마음을 돌보아, 내가 더 큰 사람이 되어 내 아이와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나누고 좋은 영향을 끼치고 싶은,

슬롯 지독히도 이기적인 사람이다.



주1: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

주2: 에리히 프롬, 사랑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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