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내가 케케묵은 업카지노와의 풀리지 못한 감정의 실타래, 업카지노에게 받았던 상처와 부정적인 감정에 대해 파헤친건 내 딸에게 좋은 업카지노가 되고싶은 간절함 때문이었다.
그러지 말아야지 수백번 다짐하면서도 막상 아이의 (내 눈에) 부족한 모습을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분노라는 감정이 튀어나온다는 것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그건 우울증약을 먹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었다. 내 깊은 무의식 속에 쳐박힌 그 감정의 근원을 찾아서 해결하고 청소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여러가지 일상 생활 기술, 하다못해 스스로 밥을 떠서 먹는 것까지 오랜 시간 많은 노력을 쏟아부어 가르쳐야 했던 그 지난한 과정 속에서 나는 자주 인내심이 바닥났다. 기껏 힘들게 가르쳐놓아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잊어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에 혼자 할 수 있는 일마저도 자꾸만 나에게 의존하려고 하는 아이의 모습에 나는 종종 감정이 폭발하곤 했다.
아무리 이성적으로 감정을 컨트롤하려고 노력해도 그 순간에 솟구치는 감정은 이미 나를 제압한 상태였다. 그리고 그러한 감정 폭발에 자주 노출된 아이는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예민하고 소극적인 성향의 아이는 어떤 일을 할 때마다 틀릴까봐, 혹은 잘 못할까봐 내 눈치를 보았다. 그렇게 눈치 보는 아이의 모습에서 나는 아무리 해도 인정받지 못한 채 업카지노의 눈치를 보는 나의 내면 아이를 마주했다. 그리고 그렇게 눈치 보는 아이를 만든 장본인이 바로 나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나와 똑같은 모습을 한 내 딸에게 화가 났다. 그건 바로 나 자신에게 내는 화였다.
작년 겨울 한국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업카지노는 내가 집에 갈 때마다 게장을 담궈놓으신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양념게장을 좋아했다. 짭조름한 밥도둑 간장게장도 맛있지만, 내 픽은 언제나 매콤달콤 빨간 양념게장이었다. 업카지노는 그런 날 보고 '게장 킬러'라고 하셨다. 토실토실 말캉한 살이 오르고 고소한 알이 가득 배는 겨울 게철이 오면 언제나 업카지노는 양념게장을 담가주셨다. 나는 그 어떤 식당에서 먹는 게장보다 업카지노가 만들어주는 게장이 가장 맛있었다.
이번에도 역시 업카지노는 내가 한국에 도착하는 날에 맞추어 이미 게장을 한가득 담가놓으셨다. 미국에서 먹지 못했던 그리운 업카지노의 손맛,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업카지노의 양념게장과 업카지노표 구수한 된장찌개 한 그릇이면 몇 끼도 거뜬히 먹을 수 있다. 그 게장은 우리집 식구 중에서 오직 나만 먹는다.
업카지노의 게장은 곧 나에 대한 사랑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게장에 담긴 업카지노의 사랑 한편에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우리의 감정적 실타래가 얼기설기 꼬여 내 마음을 어지럽혔다.
며칠 전부터 업카지노가 갑자기 냉랭해졌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무 일이 없었는데, 갑자기 아침에 일어나니 업카지노의 온도가 차갑게 식어있었다.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이미 말투에 가시가 쭉쭉 박혀있는 게, 이미 오랜 세월 경험해온 업카지노의 관계를 통해 업카지노가 뭔가 화가 났다는 걸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그 순간부터 나는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업카지노의 냉랭한 태도와 말투, 화난 듯한 표정을 살피며 업카지노의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뭘 잘 못했는지, 업카지노는 왜 또 나에게 화가 났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공기마저 싸늘하게 식어버린 집안의 분위기가 견디기 힘들어 한 2-3일을 괴로워했다.
나는 업카지노에게 인정받으려 애쓰며 눈치만 살피던, 업카지노의 그 차가운 말투가 싫었던 어린 소녀로 다시 돌아갔다. 한동안 잊고 있던, '업카지노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는 마음이 저 속에서부터 스멀스멀 꼬리를 줄줄 달고 올라오던 며칠을 혼자 끙끙 앓다가 결국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그 싸늘했던 기류가 터져버린건 내가 미국에 가져가려고 잔뜩 인터넷으로 주문한 물건들이 거실 한 귀퉁이에 쌓여있는걸 보고 업카지노가 한껏 성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을 때였다. 세상 깔끔한 성격의 업카지노가 가장 싫어하는, 내 정리 못하는 습관이 눈에 거슬린 거다.
"저건 계속 저기에 쌓아놓을 거야?"
그 말을 하는 업카지노의 표정과 말투가 너무 성나있어서, 절로 묻게 되었다.
"업카지노 나한테 뭐 화났어?"
업카지노는 그럼 화가 안나겠냐고 반문하면서 며칠 전 있었던 일을 꺼냈다.
나는 원래 추위를 잘 타서 겨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리 껴입어도 뼛속까지 스며드는 찬 공기에 입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추위에 약하다. 미국은 한겨울이어도 우리나라보다 훨씬 따뜻해서 정말 살만했는데, 다시 만나는 한국의 겨울은 너무 추웠다. 집에 난방을 틀었다 해도 나는 여전히 너무 추웠다.
그래서 춥다고, 난방 온도를 올리는 문제로 몇 번 업카지노와 옥신각신했다. 내가 춥다고 하면 업카지노는 뭐가 춥냐고, 아니 내가 춥다는데 업카지노는 평소 온도에 적응을 했으니까 안 추운 거겠지. 그러다가 며칠 전 업카지노가 난방 가스비도 만만치 않게 나온다고, 누구네 어느 집은 난방비가 200만원이 나왔더라는 말씀을 하셨다.
내가 그 말을 듣고 생활비로 100만원을 송금했던 게 화근이었다.
사실 한국에 오기 전부터 한 달 정도 친정에 머무르며 생활비 조로 업카지노에게 돈을 드리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초반에 너무 정신없이 바빴고 시차 적응으로 피곤하기도 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다. 애초에 처음부터 딱 보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업카지노가 난방비 얘기를 꺼낸 직후에 내가 돈을 보낸 게 업카지노 입장에서는 서운했나 보다. 내가 업카지노의 난방비 운운하는 소리를 듣기 싫어서 성의 없이 띡- 하고 계좌이체하고 끝낸 거라고 생각하신 모양이다. 이게 업카지노가 앞뒤 없이 냉랭해진 발단이었다. 나는 그저 그 말을 듣고 '생각난 김에 보내야겠다'고 생각한 건데, 업카지노 입장에서는 다르게 받아들인 거다.
그러면서 또 하는 말씀이, 내가 다른 사람을 만날 약속이 있어서 밖에 나갈 일이 있을 때는 미리미리 말을 해줘야지, 닥쳐서 말하면 업카지노도 생활 패턴이 있는데 그걸 다 깨고 스텔라를 보기 위해 집에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평생 일만 하다가 이제야 좀 여러 문화생활하면서 좀 즐기고 쉬고 싶은데, 내가 약속이 있다고 닥쳐서 말하면 그 스케줄들을 미리 조정할 시간이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빠지게 된다는 거다. 즉, 내가 내 생각만 하고 업카지노나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귀에 인이 박히도록 들었던 그 말, 내가 이기적이라는 그 말이다.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 못하고 짐들을 쌓아놓는 것, 그리고 업카지노를 배려하지 않은 채 내 맘대로 약속을 잡아놓고 애 봐달라고 통보하듯 말한 것. 평생에 걸쳐 업카지노가 나를 비난했던 두 가지였다.
"너는 오로지 너랑 니 딸만 생각하는 거야. 업카지노 아빠도 이제 늙었고 여기저기 아픈데 괜찮은 척하며 말 안 하는 것뿐이야. 너도 니 생각만 하지 말고 주변을 좀 돌아보면서 배려를 좀 해. 나도 네 딸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져. 근데 어쩌겠어, 그게 네 운명이고 스텔라의 운명인걸."
업카지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들으며 나는 뭐라고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잠자코 있었다.
약속이 있다는 걸 이삼일 전에 미리 말씀드렸는데, 그걸로도 불충분했었나? 한 일주일 전에는 미리 말씀드렸어야 했던 건가? 혹시 업카지노는 그냥 나와 스텔라가 한국에 와서 뒤치닥거리하느라 귀찮은 건 아닐까?
한동안 생각을 정리한 후 나는 업카지노에게 말했다.
"일단 생활비 송금은 업카지노가 가스비 얘기를 꺼내지 않았어도 애초에 보낼 생각이었는데, 타이밍이 좀 좋지 않았던 건 인정해요. 하지만 내가 업카지노의 말을 고깝게 들어서 성의 없게 찍 하고 보낸 건 아니니까 그 부분은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자꾸 화를 내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내 안의 인정받고 싶지만 자신이 없어 자꾸 눈치보는 어린 아이를 발견한 후 스스로 정리했던 생각을 업카지노에게 털어놓았다.
"스텔라가 내 눈치보는거 나도 알고 있어요. 그게 내가 그동안 아이에게 엄하게 훈련 조교처럼 지도해서 그렇게 된 거라고 생각하고, 내 잘못임을 인정해요. 그런데 스텔라가 내 눈치를 보듯이, 나도 업카지노의 눈치를 봐요. 업카지노가 조금만 표정이 달라져도 내가 뭘 잘못했나 마음이 불편해져요. 나는 자라면서 업카지노에게 인정받지 못하고 늘 부족한 사람이었어요. 업카지노의 기준은 늘 저 높은 곳에 있었고,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업카지노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해 업카지노 마음에 들지 않는 딸이었죠. 그렇게 큰 결과 지금 내가 어떤 줄 아세요? 나는 늘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자신감이 없어요. 내가 도대체 뭘 어떻게 해야 업카지노 마음에 드는 딸이 될 수 있나요? 대체 어떻게 해야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이 되는거에요? 나는 어떻게 해도 업카지노 마음에 드는 딸은 되지 못할거에요.
내가 받아본 적이 없는 그 무조건적인 사랑을 나도 그동안 스텔라에게 주지 못했어요. 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스텔라를 어떻게든 끌어올리려고 엄하게 윽박질렀어요. 내가 업카지노에게 받은 대로 내 딸에게 줄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모녀관계는 대물림되는거에요. 이대로 크면 스텔라도 나처럼 늘 스스로를 부족하다고 생각하며 자신감 없는 사람이 되겠죠. 나는 그 고리를 끊을거에요. 나는 스텔라에게 훈련 조교 같은 업카지노가 되지 않을 거에요. 나는 스텔라가 힘들 때 언제든 기대 쉴 수 있는 업카지노가 되고 싶어요."
나는 업카지노에게 울부짖었다.
"나도 그런 사랑받아보고 싶어요. 내가 청소 좀 못해도, 요리 좀 못해도, 그냥 내 모습 그대로 인정받고 싶어요. 설사 업카지노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너는 그 자체로 소중한 사람이라는 말을 듣고 싶다구요. 그냥 업카지노가 나한테 좀 친절하게 대해줬으면 좋겠어요!"
업카지노는 한동안 아무 말도 없었다.
미국에서 독박 육아가 너무 힘들어 한국에 오면 업카지노에게 조금 기대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런데 그 기대를 갖기엔 업카지노도 체력적으로 역부족이었던 것 같다. 감기에 걸린지 꽤 됐는데 약을 먹어도 잘 안 떨어져 기침을 계속하셨는데, 그 안 좋은 컨디션으로 스텔라와 조카 둘을 케어하려니 힘드셨던 모양이다. 아마 내가 업카지노에게 기대고 싶었던 것처럼, 업카지노도 내게 기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업카지노 말을 듣고 나니, 내가 약속을 나가려면 업카지노가 스텔라를 봐주셔야 하므로 업카지노의 스케줄을 물어 함께 조정했어야 했음을 깨달았다. 내가 업카지노의 스케줄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당연히 업카지노는 내 일정에 맞추어줄 거라 생각하고 내 마음대로 약속을 잡은 거다. 업카지노 말대로, 나는 이기적이었다.
업카지노가 나보고 이기적이라고 비난했던 건, 정말로 내가 밉고 싫어서가 아니라 내가 보다 좋은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에서 하셨던 말이라는 것을 안다. 단지 업카지노의 표현 방식이 거칠었을 뿐. 그냥 그렇게 조금은 거친 표현방식을 가진 업카지노를, 나부터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사랑하기로 했다.
업카지노도 세련되고 다정한 표현방식을 업카지노의 업카지노로부터 배우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업카지노 역시 업카지노의 업카지노로부터 있는 그대로 수용 받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업카지노는 그저 업카지노의 현실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자식을 잘 키워보고자 거친 말과 다정하지 못한 표현 방식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거라고 업카지노를 이해해본다.
다만 나는 내 아이에게 똑같은 상처와 부정적인 무의식을 물려주지 않기 위해 그 고리를 끊고 변화하기로 했다.
스텔라의 지금 모습이 내 눈에 부족해보이고 못미더울지라도, 그저 아이를 믿고 기다려주는 것.
그리고 설사 부족한 모습일지라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사랑해주는 그 무조건적 사랑이 필요하다.
내가 스텔라와의 건강하고 행복한 관계를 굳건하게 쌓아 올리기 위해서는, 나와 내 업카지노와의 관계 먼저 들여다보고 다듬어야 한다. 업카지노의 거친 표현과 내게는 멀고도 높은 그 기준 뒤에 말없이 반짝이고 있는 업카지노의 사랑을 들여다본다. 그 사랑은 매콤달콤 맛있는 양념게장을 통해 업카지노 대신 내게 말을 건넨다.
그리고 묵은 감정의 실타래를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과정에서 업카지노와 나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연결해주던 애증이 조금씩 해소되어 언젠간 '사랑'만이 가득찰 날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