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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슈퍼거북맘 May 16. 2025

벳16과 자격지심에 대하여

벳16은 자신이 남보다 못하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오는 느낌이다. 이러한 감정은 콤플렉스 측면에서는 벳16 콤플렉스(inferiority complex)또는 자격지심으로 확장되어 불릴 수 있다(주).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영화 <친구에 나오는 이 유명한 대사는 한 문장 안에 많은 함축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말은 단순히 벳16 직업이 무엇인지 묻는 것이 아니라 너희 집안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 파악하겠다는 의도가 담긴 질문이며 그에 따라 너에 대한 평가와 대우가 달라질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말이기도 하다.


지금은 별로 그렇지 않은 것 같지만 내가 어릴 때만 해도 학교벳16 새학기가 시작되면 가장 먼저 ‘가정환경 조사서’라 불리우는 호구 조사를 실시했다. 부모의 학력과 직업, 심지어 연소득을 적는 칸도 있었다.


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면 어른들은 그 애의 부모가 어떤 일을 하는지 궁금해하고, 결혼을 염두에 둔 이성친구가 생기면 가장 먼저 묻는 질문은 ‘벳16가 무슨 일을 하시는지’이다.


즉, ‘벳16 무슨 일 하시니?’라는 질문은 벳16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우리 사회에서 무시할 수 없는 파워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하나의 절대적 상징이다.


사람들의 인식이 과거에 비해 많이 바뀌어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이 실례라고 여겨지는 분위기가 확산된 탓에 적어도 대놓고 물어보진 않지만 아마 속으로는 여전히 궁금해할지도 모른다. 특히나 결혼과 같이 집안끼리의 결합이라는 중대한 사안 앞벳16는.


아니,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나는 벳16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가 나 자신에 대한 평가와 ‘급’을 결정하는 사회적 분위기의 피해자였고 희생양이었지만, 동시에 나도 모르게 세뇌된 그 가치관에 의해 조종당하는 꼭두각시이기도 했다.


그래서 드라마 <나의 아저씨의 지안(아이유 역)의 당찬 대답이 내심 부러웠다.


동훈: 벳16는 뭐하시고?

지안: 아저씨 벳16는 뭐하세요? 난 아저씨 벳16 뭐하시는지 하나도 안궁금한데 왜 우리 벳16가 궁금할까.

동훈: 그냥 물어봤어.

지안: 그런걸 왜 그냥 물어봐요?

동훈: 어른들은 애들 보면 그냥 물어봐 그런거

지안: 잘 사는 집구석인지 못 사는 집구석인지 벳16 직업으로 간 보려고? 실례에요 그런 질문.


나는 지안처럼 당차게 대답하지 못했다. 오히려 ‘벳16 뭐하시냐’는 질문에 당당하게 ‘우리 벳16는 의사에요/변호사에요/대기업 임원이에요 등등’이라고 누가 봐도 있어보이는 대답을 할 수 없는 내 처지에 스스로 작아졌다.




초등학교 4학년때였던가, 학교에 내는 가정환경 조사서의 아버지 직업란에 나는 ‘소금 장사’라고 적었다. 어린 마음에도 그 칸에 왠지 있어보이는 직업을 적어야 할것 같은 느낌, 그렇지 않으면 왠지 부끄러운 일인 것만 같은 느낌이 마음 한켠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었던 순간을 기억한다. 나는 그 느낌을 애써 무시하고 땅 속으로 덮어버렸다. 아빠가 소금 장사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야! 라고 스스로에게 되뇌었던 것 같다.


하지만 정작 부모님은 나의 그런 행동에 대해 조금 놀라워하셨다. 그냥 ‘장사’ 정도로만 적으면 되지 굳이 ‘소금 장사’라고 적나라하게 적었냐면서 그걸 보고 선생님이 뭐라고 생각하실까 조금 걱정된다는 투로 말씀하셨다. 엄마아빠 스스로도 이미 벳16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런 사회에서 나고 자라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부모님의 ‘있어보이지 않는’ 직업이 왠지 부끄러운 일인 것만 같은 느낌은 나의 애쓴 무시에 의해 땅 속에 묻혀있었지만 그 느낌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벳16’이라는 나무로 자라났다. 그 나무는 ‘자격지심’이라는 가지를 뻗어냈고 ‘낮은 자존감’이라는 열매를 맺었다.



이 벳16은 내 삶을 관통해 커다란 영향을 미친 키워드였다.

학창시절에는 유복한 가정 환경(부모님의 있어보이는 직업과 좋은 동네에 사는 것으로 대변되는 경제적 풍요)벳16 부족함 없이 공부하는 주변 친구들과의 비교로 위축되었다.

그래도 그때는 똑같은 학생이라 큰 차이는 느끼지 못했다.


그 차이가 피부에 와닿을 정도로 실감되기 시작한건 성인이 된 후 대학을 다니고 결혼적령기가 될 무렵부터였다.


(다음 편에 이어서... 양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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