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짱구카지노 나는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안녕,짱구카지노아침이야.오늘기분어때?
새벽 공기에 언 손을 비비며 들어온 나를 직원이 활짝 웃으며 맞았다. 한동안 진심으로 나를 반기는 줄 알았지만 이제는 안다. 철저히 자본주의에 입각한, 다분히 짱구카지노다운 표정이라는 것을. 그사이 나도 익숙해져서 궁금하지도 않은 상대의 안부를 되묻는다. 좋아. 너는 어떤데?
브루클린에서 단골집이라고 할 만한 곳은 호잇 역 근처에 잇는 블랙 시드 베이글 하나뿐이었다. 일찍 잠에서 깬 날이면 모자 뒤집어쓰고 브루클린 하이츠를 산책한 뒤 돌아오는 길에 있는 베이글집에 들르는 것이 한동안 내 습관이었다. 짱구카지노는 플레인 크림치즈 바른 시나몬 레이즌 베이글. 샌드위치까지 종류별로 먹어 봤지만 결국 내 취향은 제일 간단한 것이더라. 시나몬 레이즌 베이글 그리고.. 까지만 말해도 그는 내가 뭘 말할지 않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얼굴만 나를 향한 채 몸은 이미 빵 쌓여 있는 선반으로 반쯤 돌린 상태로. 단골이 되어 가장 짱구카지노 것은 이런 것이다. ‘늘 먹던 걸로.’까진 아니더라도 그와 나 사이에 말하지 않아도 아는 것이 생긴다. 일종의 유대감이랄까. 잠시나마 내가 어떤 이에게 기억된다는 것이 묘하게 흥분되기도 한다.
리-
잠시 후 그가 포장된 베이글과 휴지 몇 장을 종이 가방에 넣으면서 내 짱구카지노을 불렀다. 이곳에서 내 짱구카지노은 이 씨 아저씨다. 평생을 김 씨로 살아온 나를 이 씨로 불러주는 곳은 이 행성에선 이곳이 유일하다. 처음 짱구카지노을 물었을 때 문득 호기심이 발동해 리,라고 내뱉어 버렸고 그대로 내 짱구카지노이 됐다. 그간의 답은 당연히 킴이었다. 다른 대답을 한 적도, 해 볼 생각도 없었다. 말 한마디로 간단히 개명에 성공하고 나니 그간 왜 솔직하게 말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개명의 여파가 의외의 결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베이글 집에서만큼은 김 씨 아저씨처럼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게 된 것이다. 그간 묻는 안부에나 겨우 답하던 김 씨와는 달리 브루클린 이 씨 아저씨는 직원과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기 일쑤였다. 요즘 날씨에 대한 불평을 미주알고주알 털어놓는가 하면 아몬드 버터를 주문하려고 하는데 어떤 베이글과 잘 어울릴지 묻기도 했다. 김 씨였으면 그냥 종류별로 베이글을 사 갔을 텐데 말이다. 사이렌 오더에 쓰이는 닉네임마저 정직하게 본명으로 썼다가 그마저도 지워버린 내겐 새로운 경험이었을 수밖에.
그것 말고도 나를 부르는 그들의 호칭들은 다양했다. 흥미로웠던 건 그것에 어느 정도 규칙이 있어서 나중엔 예측이 가능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에 화답하는 내 말투와 행동도 달랐다. 식당을 예로 들면 이렇다. 짱구카지노 첫날 호텔 근처에 있는 7번가 버거(7th street burger)에서 나는 미국인 형제 몇 명이 생겼다. 손님보다 힙합 비트에 푹 빠져 있던 풍채 짱구카지노 사내가 시종일관 나를 브로,라고 불렀고 잠시 후 매장 안에 들이닥친 몇 명의 무리까지 대뜸 나를 형제 취급했다. 거기선 나도 왠지 모르게 자세가 구부정해지고 목소리도 커진다. 씹던 빵과 고기가 튀더라도 그들과 말을 섞고 손바닥이나 주먹을 맞대야 할 때도 있다. 내가 입은 코트나 목에 건 카메라를 칭찬하는 친구라도 나타나면 얘기가 더 길어진다. 주로 캐주얼한 레스토랑이나 펍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났다.
반면 프렌치 레스토랑이나 스테이크 하우스 같은, 소위 돈 좀 드는 곳에서는 잘 차려입은 직원이 내 앞까지 찾아와 정중한 말투로 썰, 그러니까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주문을 받을 때, 음식을 갖다 줄 때는 물론이고 식사 중에도 ‘식사는 마음에 드십니까 선생님?’이라며 살뜰히 챙기는데 그땐 나도 무게를 잡는 건지 아니면 주눅이 든 건지 작은 목소리로 조곤조곤말하게 된다. 그가 버거에 베이컨이나 달걀을 추가하는 것을 추천한다고 말하면 대체로 그렇게 하겠다고 한다. 음식에 대한 평은 셋 중 하나로 정해져 있다. 멋지다, 놀랍다, 완벽하다. 왠지 열 살쯤 더 먹은 기분이긴 하지만 선생님 소리 듣는 게 나쁠 리는 없다. 내가 수강생들에게 선생님이란 호칭을 쓰는 이유도 그것이니까.
첼시에 있는 고담 피자에 갔을 때는 말 끝마다 내 친구라고 하는 사내 때문에 웃음 참느라 고생했다. 나를 보자마자 안녕 내 친구, 주문을 받고 나선 고마워 내 친구, 음식을 건네면서 또 한 번 맛있게 먹어 내 친구, 가게를 나서는 내게 마지막으로 잘 가 내 친구. 그의 다정함에 나도 피자 맛있어 내 친구, 또 올게 친구야,라고 화답해 줬어야 했는데 생각만 해도 웃음이 새어 나와서 그러지 못한 게 내내 아쉽다. 거기 며칠 다녔으면 대문자 I인 내가 E까진 아니더라도 e 정도는 될 수 있었을 텐데.
그 많은 호칭중에 내 진짜 짱구카지노은 없었다. 비슷한 거라고 해봐야 킴, 한 글자였으니. 대부분 그들이 서로를 부르는 친근하거나 관용적인 호칭들이었고 그게 아니라면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대로 불릴 수 있었다. 이 씨 아저씨처럼. 서울에선 늘 나를 따라다니고 때때로 옭아맸던 짱구카지노 세 글자가 떠나는 순간 너무도 간단히 사라진 것이다. ‘이게 없어도 되는 거였잖아?’ 그간의 짱구카지노을 일상으로부터의 도망이라고, 남들이 뭐라건 도망친 곳이 일단은 낙원이라고 말해 온 이유가 여기에도 있었나 보다. 내가 원하는 짱구카지노에 맞춰, 사람들이 부르는 명칭에 따라 달라지는 스스로를 발견하는 재미 같은 것 말이다. 그러고 보니 실제로 짱구카지노지에서의 모습은 일상을 살 때와 꽤 많이 달랐다. 아침마다 건강식을 해 먹질 않나, 사부작사부작 부지런 떠는 건 또 어떻고. 재주가 없어 엄두 낸 적 없지만 배우들이 때마다 다른 사람으로 사는 것을 동경했던 예전의 나를 이제 위로해도 되겠다. 낯선 도시에서 다른 짱구카지노으로 사는 것도 매한가지라고.
지난겨울 비엔나에서 있었던 일이다. 민박집에서 만난 두 명과 일행이 되어 하루를 보냈다. 카페 자허에서 그 유명한 자허 토르테에 비엔나커피를 마신 것을 시작으로 알베르티나 미술관, 시청 앞 크리스마스 마켓까지. 세 명 모두 비엔나가 처음이라 추위에도 불평 한 마디 없었던 게 다행이다. 아홉 시가 넘어서야 겨우 하나 잡은 맥줏집 테이블에 둘러앉아 저녁을 먹었다. 한 명은 그날 밤 친구가 있는 라트비아로 떠나야 했고 나도 다음날 숙소를 다른 곳으로 옮길 예정이라 작별 인사를 겸한 시간이었다. 술의 힘이었을까. 잔이 하나, 둘 비고 몸에 열이 오르면서 대화의 주제가 비엔나에서 각자의 얘기들로 바뀌었다. 종일 짱구카지노도 나이도 몰랐던 사람들이 헤어질 때가 되어서야 스스로를 소개하는 것이 다시 생각해도 재미있다. 머플러에 가려 종일 얼굴 한 번 제대로 못 본 친구가 수줍은 말투로 얼마 전 시험에 합격한 예비 경찰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했을 때 두 남자는 깜짝 놀랐다. 다른 친구는 떠밀리듯 퇴사한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가벼운 욕설을 섞어 가며 유쾌하게 이야기했다. 나 역시 분위기에 취했는지 좀처럼 남들에게 하지 않는 것들을 털어놓았다. 오랫동안 떠나지 못한 짱구카지노가의 사정 그리고 불안정한 현재의 여정 같은 것들. 다행히 지금은 그들의 짱구카지노도 나이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저 비엔나에서 만난 유쾌하거나 수줍게 웃던 청춘으로 남았을 뿐. 혹 그들도 나를 그저 놀러 온 속 편한 중년으로 기억할까. 부디 그러기를 바란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그날 이후로 짱구카지노지에서 만난 이들과 벗어 둔 일상에 관해 묻는 것을 더욱 조심한다. 짱구카지노이나 나이,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고민을 갖고 있는지도. 내가 짱구카지노을 벗고 나서 느낀 자유와 다른 짱구카지노으로 불리며 발견하는 크고 작은 변화들을 그들도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나름의 배려로.
짱구카지노은 언젠가 돌아가기에 성립되고 나는 다시 그간의 짱구카지노을 두르고 살아갈 것이다. 지금까지 해 왔고 또 하고 있는 일로 구분되고 규정되겠지. 낙원에 누워 떠올리는 일상이란 팍팍하기 그지없다. 돌아가서도 내가 원하는 짱구카지노으로 불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그게 어렵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일 말고 앞으로 하고 싶은 일로 불릴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안 되면 나부터라도 한 명 한 명 그렇게 불러 줘야지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