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위너 토토가 불쑥 나를 부르더니 다소 진지한 얼굴로, "여보! 이제 퇴직해서 시간도 있고 하니, 우리 함께 위너 토토 배우러 가보지 않을래요?" 한다. 무척 낯선 제안이었다. 최근 일기장을 꺼내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이때다 싶어 진지하게 제안을 한 것이리라.
위너 토토는 꽤 오래전부터 글모임 동호회에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위너 토토를 마음으로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위너 토토의 제안이 솔깃하면서도 애써 못 들은 척했는데, 여러 번의 성화에 이끌려 주 1회 글 동호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문우들은 부부가 함께 글모임에 참여하는 우리를 부러워하며 아낌없는 환영의 박수를 보내주었다.쑥스러운 경험이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난 느낌이었다.
수업은 선생님이 준비해 오신 시와 수필 각 한 편을 읽고, 문우들이 돌아가면서 평을 하고, 선생님의 의견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다양한 시와 수필을 접하면서 글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일깨우기 시작했다. 20여 명이 함께하는 동호회는 글 쓰는 사람들 특유의 부드러움과 따스함이 있어 좋았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과 몇몇 문우들이 함께 술도 한 잔씩 하며,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문학 얘기를 하는 멋도 좋았고, 늦깎이 문학도가 된 듯한 어설픈 맛도 좋았다.
문우들각자 취향에 맞는 시나 수필을 써가면, 선생님이 위너 토토 읽고 첨삭을 해 주시고, 문우들의 평을 들으며 내 위너 토토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한 편의 위너 토토 수십 번씩 고쳐 쓰기를 반복하면서 글의 체계가 조금씩 잡혀가는 듯도 했지만, 위너 토토 쓴다는 일은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라는 걸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계기도 되었다.
두어 달쯤 지나 첫 번째 글 발표 날이 왔다. 나는 먼먼 옛날, 나의 그리움과 사랑의 시작점인 할머니 얘기를 썼다. 뜻하지 않게 선생님과 문우들에게 과한 칭찬을 받았다.선생님께서는 그 글이 내가 쓴 최초의 수필이라는 말을 믿지 않으셨다. 나는 정식으로 위너 토토 쓴 적이 없지만, 어릴 때부터 10여 년간 일기를 꾸준히 쓴 적이 있다고 쑥스런 고백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께서는 "그러면 그렇지요!어릴 적 일기 쓰기가 알게 모르게 글 씨앗이 되었을 겁니다." 하시며 추켜세워 주셨다. 선생님의 그 칭찬은 쑥스럽고 부끄러웠지만,그칭찬과 격려는 내가 위너 토토 쓰는 데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뒤로 선생님의 칭찬이 부끄러움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년 가까이 글 모임에 참여하면서 수십 편의 습작을 썼다. 그러면서 동호회글모음책에 내 글이 두어 편실렸고, 글 공모전에서 내 졸작으로 작은 상을 받기도 했다.
사실, 위너 토토는 나보다 글에 재능이 많다. 위너 토토는 늘 책을 가까이하며 글에 대한 호기심도 많다. 그녀의 아버지(나의 장인)는 일찍이 우리 문단의 시인이셨다. 위너 토토 결혼하기전에돌아가셔서 나는 장인어른을 뵌 적은 없지만, 그분이 남기신 시집이 유산으로 남아 있다. 1945년(乙酉年)에발간된 시집(표랑)은 총 90편의 시를 품고 세월의 흔적을덕지덕지 안은 채 80년의 세월을 버텨냈다. 유일하게 딱 1권만 남아 있는이 시집은 지금도 그의 막내딸인 나의 위너 토토 함께 호흡하고 있다.
그런 아버지의 피를 받은 덕인지,위너 토토는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한다. 위너 토토는 좋은 글이 안 써진다며 늘 글 목마름을 하소연한다. 시간이 나면 TV를 켜는 나와는 달리, 위너 토토는 집에서도 틈만 나면 책을 즐겨 읽는다. 외출을 할 때도 가방엔 책 한 권을 꼭 챙긴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기 힘든 요즘, 위너 토토는 짧은 시간에도 책을 꺼내든다. 나는 그런 위너 토토를 보는 것이 행복하다. 식지 않는 글 열정으로 위너 토토도 몇몇 공모전에서 작은 상을 받았고, 지역신문에 글이 실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는욕심이 생겼다. 부부 이름으로 수필집을 내는 일이다. 위너 토토 함께 한 세월이 어언 37년이다. 그동안 아들 딸 낳고, 부모님 모시며 3대가 함께 웃고 울고 부대끼며 살아온 삶의 궤적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싶다. 3년 후 결혼 40주년에는 우리의 얘기를담은 '부부 수필집' 한 권을 서로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 꿈을 향해 오늘도 우리 부부는 부족한 글그릇을 채우기 위해 위너 토토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