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기환 Mar 23. 2025

위너 토토 함께 위너 토토 쓰기로 했다

어느 날, 위너 토토가 불쑥 나를 부르더니 다소 진지한 얼굴로, "여보! 이제 퇴직해서 시간도 있고 하니, 우리 함께 위너 토토 배우러 가보지 않을래요?" 한다. 무척 낯선 제안이었다. 최근 일기장을 꺼내 읽고 있는 내 모습을 보고, 이때다 싶어 진지하게 제안을 한 것이리라.


위너 토토는 꽤 오래전부터 글모임 동호회에 나가고 있었다. 나는 그런 위너 토토를 마음으로 지원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지만, 나와는 거리가 먼 일이라고 생각해 왔다. 위너 토토의 제안이 솔깃하면서도 애써 못 들은 척했는데, 여러 번의 성화에 이끌려 주 1회 글 동호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문우들은 부부가 함께 글모임에 참여하는 우리를 부러워하며 아낌없는 환영의 박수를 보내주었다.쑥스러운 경험이지만, 새로운 세상을 만난 느낌이었다.


수업은 선생님이 준비해 오신 시와 수필 각 한 편을 읽고, 문우들이 돌아가면서 평을 하고, 선생님의 의견을 듣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다양한 시와 수필을 접하면서 글에 대한 호기심이 나를 일깨우기 시작했다. 20여 명이 함께하는 동호회는 글 쓰는 사람들 특유의 부드러움과 따스함이 있어 좋았다. 수업이 끝나면 선생님과 몇몇 문우들이 함께 술도 한 잔씩 하며,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문학 얘기를 하는 멋도 좋았고, 늦깎이 문학도가 된 듯한 어설픈 맛도 좋았다.


문우들각자 취향에 맞는 시나 수필을 써가면, 선생님이 위너 토토 읽고 첨삭을 해 주시고, 문우들의 평을 들으며 위너 토토 다시 돌아볼 수 있었다. 한 편의 위너 토토 수십 번씩 고쳐 쓰기를 반복하면서 글의 체계가 조금씩 잡혀가는 듯도 했지만, 위너 토토 쓴다는 일은 자신과의 고독한 싸움이라는 걸 더욱 절실하게 느끼는 계기도 되었다.


두어 달쯤 지나 첫 번째 글 발표 날이 왔다. 나는 먼먼 옛날, 나의 그리움과 사랑의 시작점인 할머니 얘기를 썼다. 뜻하지 않게 선생님과 문우들에게 과한 칭찬을 받았다.선생님께서는 그 글이 내가 쓴 최초의 수필이라는 말을 믿지 않으셨다. 나는 정식으로 위너 토토 쓴 적이 없지만, 어릴 때부터 10여 년간 일기를 꾸준히 쓴 적이 있다고 쑥스런 고백을 했다. 그 말을 들은 선생님께서는 "그러면 그렇지요!어릴 적 일기 쓰기가 알게 모르게 글 씨앗이 되었을 겁니다." 하시며 추켜세워 주셨다. 선생님의 그 칭찬은 쑥스럽고 부끄러웠지만,칭찬과 격려는 내가 위너 토토 쓰는 데 큰 힘이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 뒤로 선생님의 칭찬이 부끄러움으로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2년 가까이 글 모임에 참여하면서 수십 편의 습작을 썼다. 그러면서 동호회글모음책에 내 글이 두어 편실렸고, 글 공모전에서 내 졸작으로 작은 상을 받기도 했다.

위너 토토동호회 발간 책, 오후의 그리움


사실, 위너 토토는 나보다 글에 재능이 많다. 위너 토토는 늘 책을 가까이하며 글에 대한 호기심도 많다. 그녀의 아버지(나의 장인)는 일찍이 우리 문단의 시인이셨다. 위너 토토 결혼하기전에돌아가셔서 나는 장인어른을 뵌 적은 없지만, 그분이 남기신 시집이 유산으로 남아 있다. 1945년(乙酉年)발간된 시집(표랑)은 총 90편의 시를 품고 세월의 흔적을덕지덕지 안은 채 80년의 세월을 버텨냈다. 유일하게 딱 1권만 남아 있는이 시집은 지금도 그의 막내딸인 나의 위너 토토 함께 호흡하고 있다.


위너 토토시집 '표랑'


그런 아버지의 피를 받은 덕인지,위너 토토는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한다. 위너 토토는 좋은 글이 안 써진다며 늘 글 목마름을 하소연한다. 시간이 나면 TV를 켜는 나와는 달리, 위너 토토는 집에서도 틈만 나면 책을 즐겨 읽는다. 외출을 할 때도 가방엔 책 한 권을 꼭 챙긴다. 지하철에서 책 읽는 모습을 보기 힘든 요즘, 위너 토토는 짧은 시간에도 책을 꺼내든다. 나는 그런 위너 토토를 보는 것이 행복하다. 식지 않는 글 열정으로 위너 토토도 몇몇 공모전에서 작은 상을 받았고, 지역신문에 글이 실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우리 부부는욕심이 생겼다. 부부 이름으로 수필집을 내는 일이다. 위너 토토 함께 한 세월이 어언 37년이다. 그동안 아들 딸 낳고, 부모님 모시며 3대가 함께 웃고 울고 부대끼며 살아온 삶의 궤적을 담담하게 풀어내고 싶다. 3년 후 결혼 40주년에는 우리의 얘기를담은 '부부 수필집' 한 권을 서로에게 선물하고 싶다. 그 꿈을 향해 오늘도 우리 부부는 부족한 글그릇을 채우기 위해 위너 토토 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