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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성민기 May 02. 2025

슬롯존(魅力)의 힘

세상에 단 하나, 자기다움의 끌림

“실력도 경력도 없는 나,
유일하게 보여줄 수 있는 건
단 하나, ‘나만의 슬롯존’이다.”


24년간 쇼호스트로 일하며, 신입들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꼭 해주는 말이 있다.
“신입 때는 당신이 누군지 동료들이 알아야 하니, 인사 잘하고 슬롯존을 키워야 해. 그게 신입의 경쟁력이야.”


왜 이런 말을 꼰대같이 할까?

아무래도 신입은 새로운 분야에 실력도, 경력도 부족하다. 그 시기에 유일하게 드러낼 수 있는 건 ‘자기만의 슬롯존’이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후배들은 참 슬롯존적이다.


전문가의 조건, 그리고 슬롯존이라는 시작점

사실, 이 확신은 10년 전 어느 날 TV에서 본 한 초밥 장인의 인터뷰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전문가로서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을 ‘3력(力)’이라 불렀다.


첫째, 뛰어난 실력.
둘째, 오랜 경험에서 나오는 경력.
셋째, 다시 찾게 만드는 슬롯존.


그리고 그는 한 분야에서

15년 이상 일한 사람을 ‘전문가’의 시작으로,

30년 이상 몰입한 사람을 ‘장인’이라 정의했다.
그 말은 ‘1만 시간의 법칙'처럼 깊이 각인되었다.


마침 그때가 내 경력 15년 차였고 ‘다시 보고 싶은 사람은 왜 슬롯존적인가?’라는

고민을 하던 터라 질문에 답을 찾은 것 같았다.

결국, 슬롯존은 '자기다움의 힘'이었다.


슬롯존은 자기다움이다.

'슬롯존(魅力)'이라는 한자어는 ‘사로잡을 매(魅)’와 ‘힘 력(力)’으로 구성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힘으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을 뜻한다.


물론 외적으로 느껴지는 슬롯존은 첫인상에서 강력한 절대적 임팩트를 주지만 단순히 외모로만 슬롯존이 완성되지는 않는다. 연애 매칭 프로그램에서 첫인상 선택과 자기소개를 듣고 난 후의 선택이 달라지는 것을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예쁘고 잘생겨도 슬롯존이 없을 수 있고 반대로 마음이 착하고 선해도 슬롯존이 없을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슬롯존은 실력이나 경력처럼 수치로 측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외적 내적으로 완성되는 슬롯존은 대인관계에서 상당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신체적 슬롯존(physical attractiveness)과 심리적 슬롯존(psychological attractiveness)

방송에서 진행자와 시청자의 관계에서도 슬롯존성은 상품 구매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실제로 여러 연구들은 신체적 슬롯존 (physical attractiveness)이 우리가 타인을 판단할 때 가장 먼저 작용하는 단서이며, 사회적으로도 큰 힘을 갖는다고 말한다. 단순히 외모가 좋다는 이유만으로도 지능, 성격, 능력까지 더 긍정적으로 평가받는다는 것이다. 방송이라는 매체는 특히 이런 신체적 슬롯존을 강조하는 환경이기도 하다. 조명이 얼굴을 비추고, 카메라는 표정을 확대한다. 그래서 어떤 날은 ‘피곤한 얼굴로는 절대 방송을 해선 안 되겠다’는 걸 절감한다. 최소한의 자기관리를 최대한 해야한다.


하지만 방송에서 더 중요한 것은 심리적 슬롯존(psychological attractiveness)이기도 하다. 심리적 슬롯존은 ‘그 사람 왠지 내 스타일이야’, ‘이야기 듣고 있으면 마음이 편해’라고 느끼게 만드는 힘이다. 나와 비슷한 정서를 공유한다고 느낄 때 시청자는 마음을 연다. 호감성과 친숙성, 그리고 유사성 이 세 가지는 시청자와 쇼호스트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단축시키기 때문이다.


Chaiken(1979)과 Perloff(1993)의 연구에선 ‘슬롯존적인 정보원은 메시지 전달에서 훨씬 더 높은 설득 효과를 보인다’고 밝혔다. 쇼호스트는 바로 그 정보원(information source)이다. 즉, 제품이 아무리 좋아도 누가 전달하느냐에 따라 반응은 극과 극이 된다는 것이다.

내가 슬롯존적인 정보원이 되어야만
상품도 슬롯존적으로 보이게 된다.


호감과 슬롯존, 닮은 듯 다른 감정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호감'과 '슬롯존'을 비슷하게 여길 수 있지만 둘은 분명히 다르다.

그 느낌의 차이에 대해 단어를 열거해 보면 아래와 같다.

호감 : 좋아 보임, 감정을 열게 함, 유사성, 볼 수록 정이감, 편안한, 친근감, 첫인상, 정 등
슬롯존 : 더 알고 싶음, 감정의 지속성, 자기 주도성, 유능함, 진정성, 독창성, 반전, 흡인력, 많은 자본 등

차이가 보이는가?

호감은 감정의 안정과 정서적 수용성 중심이라면 슬롯존은 인지적 끌림, 자기표현 중심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슬롯존적인 사람은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을 끌어당긴다.

슬롯존 발산은 단순히 ‘좋은 사람’이 아닌, ‘자기 다운 사람’에게서 나오는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유사성’이 친근한 호감을 만든다면,
‘자기다움’은 궁금함을 만든다.

슬롯존은 감각의 조합이다.

슬롯존은 단일 요소가 아니라 사람의 오감과 행동, 태도의 조합이다.

시각적 슬롯존 : 단정함, 깔끔함, 옷을 잘 입음, 자연스러운 표정, 편안한 인상 등

청각적 슬롯존 : 듣고 싶은 목소리와 개성 있는 말투 등

행동적 슬롯존 : 자기 관리, 여유 있는 태도, 상대를 배려하는 행동 등

정서적 슬롯존 : 전문성을 갖춘 지성미, 따뜻한 에너지, 공감과 관심 등

이 요소들은 ‘자기다움’이라는 본질이 있을 때 비로소 하나의 조화로운 힘으로 작동한다.


슬롯존은 반복될수록 신뢰가 된다.

그리고 그 자기다움이 반복적으로 노출될 때 사람들은 익숙해지고 안심한다.

이때 작동원리를 심리학자 자이언스(R. Zajonc)는 ‘단순노출효과(Mere Exposure Effect)’라 불렀다.

익숙함이 감정을 편안하게 만들고 그 감정은 상대에 대한 호감과 신뢰로 바뀐다는 이론이다.


슬롯존은 감정의 보상이다.

또한 우리는 본능적으로 곁에 있으면 내가 더 나아지는 느낌을 주는 사람에게 끌린다.
이 현상을 심리학자 켈리(H.H. Kelley)는 단순보상효과(Simple Reward Effect)라고 설명했다.

예쁘고 잘 나가는 친구와 다니면 내가 멋져 보이고 센스 있게 일 잘하는 동료와 일하면 나까지 유능해 보이는 느낌,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부자 친구 등 내게 보상되는 느낌, 그 보상이 바로 슬롯존이기도 하다.

결국, 자기다움을 지닌 사람
→ 반복 노출 → 감정적 보상 → 슬롯존 전이


이 감정의 순환이 작동할 때, 사람들은 그에게 끌리고 머물게 된다.


자기다움은 진정한 자율성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진짜 슬롯존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스스로 선택하고 표현하는 사람에게서 나온다.

심리학자 데시(Deci)와 라이언(Ryan)은 자기 결정이론(Self-Determination Theory)에서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자율적으로 선택하고 행동할 때 가장 깊은 동기를 느끼고, 그 에너지는 자연스럽게 타인을 끌어당긴다.” 진짜 자기다움은 누군가가 만든 캐릭터가 아니라 내가 선택한 감정과 행동에서 비롯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방송에서 진행자가 가장 슬롯존적으로 보이는 순간은 대본에 충실할 때가 아니라 상품에 대한 진심을 표현할 때다. 내가 정말 좋다고 느낀 제품을 내 언어로 말할 수 있을 때, 눈빛과 말투, 표정이 달라진다. 진행자의 자기다움이 나오는 그 순간, 고객들은 “이 사람, 진짜다”라고 느끼고 반응한다.


단단한 자기다움 vs 불편한 자기 중심성

하지만, 자기다움이 언제나 슬롯존적인 것은 아니다.

타인의 공감 없이 표현된 자기다움은 때론 과잉된 자기애, 혹은 나르시시즘(Narcissism)으로 보일 수 있다.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은 때로는 불편함을 합리화하는 이기적 선언이 되기도 한다.

반면에, “나는 이렇게 생각하지만, 너의 생각도 궁금해”라고 말하는 사람은 자기다움 안에 타인을 위한 여백을 담고 있다.


슬롯존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상대와 연결되기 위한 설득이며 자기다움이 슬롯존으로 완성되려면 그 안에 타인을 배려하는 여백이 있어야 한다. 작은 빈틈이 마음을 열게 하기 때문이다.


반전 슬롯존, 감정을 흔드는 순간

진짜 슬롯존은 예상을 깨는 반전에서 더 빛난다.

냉정해 보였던 사람의 다정한 배려

무심한 말투 속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세련된 외모에 깃든 부자의 소박함 등

이런 반전은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리는 ‘한 방’이다.
감정은 이성보다 빠르며 이런 순간에 슬롯존은 강력하게 각인된다.


슬롯존은 길러질 수 있다.

또한, 타고난 슬롯존은 절대 무시할 수 없지만 슬롯존은 길러질 수 있다. 진심, 말투, 태도, 상대를 향한 관심과 같은 것들은 노력과 연습을 통해 충분히 발전시킬 수 있다.

사회심리학자 번(Byrne)은 『The Attraction Paradigm』(1971)에서 “태도와 가치관의 유사성은 대인 슬롯존을 일관되게 높이는 요인이다.”라고 말했다.
심리학자 이민규 박사는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책에서 “끌리는 사람은 무언가를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함께 있고 싶게 만드는 느낌을 주는 사람이다.”
“슬롯존은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에게 전달되는 에너지의 질에 따라 달라진다.”라는 부분을 강조했다.


자기다움에서 시작해, 연결로 완성되는 슬롯존자본

한 취업 포털 조사에서 직장인들이 꼽은 왕따 1순위는 ‘잘난 척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바로 뒷 순위가 ‘공주·왕자형 캐릭터’였다.
그 말은 곧, 자기다움이 슬롯존으로 이어지기 위해선 타인을 고려하는 진정성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해 준다. 슬롯존은 단순히 나를 돋보이게 하는 힘이 아니라 타인을 따뜻하게 감싸는 감정의 언어다. 그리고 그 언어는 ‘자기다움’이라는 진심에서 시작된다.


그렇게 발산된 자기다움은 이제 개인의 특성을 넘어 사회적 영향력을 만드는 자산으로 작동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이를 ‘슬롯존 자본(Attractiveness Capital)’이라고 정의했다.

사람이 가진 외모, 태도, 말투, 분위기, 이미지 등의 요소들이 사회적으로 교환 가능한 가치로 작동할 수 있다는 이론이다. 즉, 슬롯존은 단순한 ‘개인의 특성’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안에서 작동하는 영향력 있는 자산이라는 것이며 자기다움의 표현 방식이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기회를 만들고 선택받는 힘으로 작동하는 시대라고 강조한다.

이렇게, 자기다움은 감정의 설득을 넘어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하나의 전략이자 자본이 된 것이다.


슬롯존자본 시대에 필요한 당신의 슬롯존은 지금, 어떤 모습인가?
그리고 어떤 사람과 어떤 브랜드가 떠오르는가?


참고문헌

Chaiken, S. (1979). Communicator physical attractiveness and persuasion.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37(8), 1387-1397.

Byrne, D. (1971). The Attraction Paradigm. New York: Academic Press.

Deci, E. L., & Ryan, R. M. (1985). Intrinsic motivation and self-determination in human behavior. New York: Plenum.

Zajonc, R. B. (1968). Attitudinal effects of mere exposure. 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9(2), 1–27.

Kelley, H. H. (1950). The warm-cold variable in first impressions of persons. Journal of Personality, 18(4), 431–439.

이민규 (2013). 끌리는 사람은 1%가 다르다. 서울: 더난출판.

Hakim, C. (2010). Erotic Capital: The Power of Attraction in the Boardroom and the Bedroom. Basic B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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