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 대필의뢰자는 죽음동행자 대표다
본격적으로 남의 인생을 쓰게 된 것은
독일에 온 후입니다.
독일에 온 지 1년이 지났을 때입니다.
봉사단체를 운영중인, 나이든 한인여성분 K씨를 인터뷰한 적이 있습니다.
그녀는 한국전쟁 당시 사생아로 태어나
스무 살의 나이에 독일에 왔습파라존 코리아 카지노.
독일 간호학교 졸업 후 간호사로 일했고, 자신의 연금을 몽땅 털어 단체를 설립했습니다. 저는 그분을 만나면서 난생 처음으로, 죽어가는 이들을 돌보는 봉사를 시작했고,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다시금 목격했습니다. 저의 제안으로 동포신문에 그분 이름으로 연재칼럼을 써드렸습니다.
참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호에 쓴, 첫 번째 대필의뢰자가 호스피스 환우였는데 두 번째 대필은 환우들을 돕는 봉사단체의 대표였습니다.
그것도 독일에서 말입니다.
K씨는 너무 오랜시간 고국을 떠나있던 상태라 한글 표현이 쉽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독일어가 편하다고 했습니다. 독일잡지에 매끄러운 독일어로 기고를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분에게서는 배울 점이 많았습니다. 존경할 만한 그의 인생사를 젊은 세대들에게 전하고 싶어 인생에세이 대필을 시작했습니다. K씨 또한 일생에 단 한 번이라도 책을 쓰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분과 저의 대필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지나왔던 인생의 시간들을 알알이 구슬처럼 꿰어보는 일이 저에겐 감동이었습니다. 세상의 평판이나 다른 사람의 시선이 아닌, 인간 그 자체를 알려고 하니 깊숙이 감정이입이 되더군요.
15년이 지난 지금, 그분은 노구의 몸이 되었습니다.지금도전 가끔 그분을 찾아뵙고 삶의 이야기를 나누기도 합니다.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책에서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고 글쓰는 동기의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책을 쓴다는 것은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고 있는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조지 오웰의 말에 반감을 표하고 싶습니다. 책을 쓴다는 것은 고귀한 일이며, 특히 남의 글을 쓰는 행위는 다른 사람의 영혼과 맞닥뜨린 일이기에 존귀하다고 말입니다. 그러기에 끔찍하거나 힘겹다기보다는 기쁨과 환희가 솟는 일입니다.
과거를 더듬으면 가슴 쓰리는 일이 많았을 겁니다. 그에게도 인생의 봄이 있었고, 겨울이 오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때마다 타고난 낙천적인 성격으로 살아내고 견뎠습니다. 그의 이야기들을 담아내면서 참 많이도 웃고 울었습니다. 그의 인생이 서글퍼서였고, 이국땅에서 쓸쓸이 죽어가는 이름모를 이방인들의 설움이 느껴졌지요.
하지만 반대로 이방인으로 살아가는 저에게 희망의 언덕같기도 했습니다.
그분과 마주한 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중간중간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의 이야기를 들을 수 없었거나 바쁜 일정으로 미루기도 했습니다.
당시 한국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해서인지 몇 군데 유수 출판사에서 콜이 왔습니다. 해당 출판사에서 한 번 더 윤문작업이 진행되었고, 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사실 저의 개인 책보다 먼저 대필작품이 나온 셈입니다. 저는 진심으로 기뻤습니다. 제 아이를 낳은 것처럼 날아갈 듯 했지요. 그분의 즐거움은 더했을 겁니다. 한국에서 출판기념회를 열었고, 꽤 많은 책들을 독일에 와서 필요한 분들에게 판매하거나 나눠주었고, 수익금은 단체에서 사용했습니다.
지금까지 대필하면서 가장 뿌듯했던 작품이었습니다.
대필로서 첫 출간작이라 가장 순수했고, 가장 절실했고, 가장 간절했던 작품이었으니까. 게다가 좋은 일에 쓰여졌으니 마음이 따뜻해진 것도 사실입니다.
당시 저희 가족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하던 때였습니다. 남편일이 끝나 고국으로 갈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이었던 큰딸이 학교에서 친구들을 사귀어 남고 싶어했습니다. 결국 오랜 고민 끝에 독일 정착을 결정했습니다. 부랴부랴 한국에 대한 미련을 당분간내려놓기로했습니다. 남편도 직장 대신 사업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모든 게 안정이 안 된 시기였습니다. 그러한 어수선한 가운데 대필작업은 나의 정신적인 지주역할을 했습니다.
그저 저의 부족한재능을 다 드린다 해도 아깝지 않았으니까요. 대필작가협회에서 보면 어리석다고 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대가로 더 많은 배움의 시간을 얻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알아가는 시간이었고, 무엇보다 인생의 존경할만한 분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대필이라는 직업이 글을 이용해 돈을 벌 수도 있지만 쉽게 진입하지 못하는 이유는 타인과의 인간관계도 있을 것입니다. 누군가를 계속 상대하고 멘털까지도 다스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에겐 남의 글을 써주는 행위가 참 좋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의 인생을 오롯이 알아가고 배우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작업을 통해 대필과 책 출간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내가 쓸 수 있는 분야의 스펙트럼이 넓어진다 해도 주저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비록 가족 전체를 먹여살릴 만큼의 사례비는 아니지만, 이후 대필작업은 글쓰기의 경륜과 내 책 작업의 모티브가 되었습니다.
저는 글을 쓸 때 가장 행복합니다.
어린 시절에도 글을 곧잘 썼는데 당시만 해도 미래에 내가 글 짓는 일을 하고 살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쩌다보니 인생의 길을 돌아돌아 글쓰는 일이 업이 되는 삶으로 살고 있습니다. 물론 무명작가라 규칙적인 일은 다른 직업이 대체하고 글쓰는 일은 그야말로 부업입니다. 하지만 글을 쓸 때는 삶의 시름이 사라집니다.
무엇보다 글을 쓸 때 독특하고 창의적인 단어를 찾아냈을 때 그 어느 때보다 쾌감을 느낍니다. 아직도 갈 길은 멀지만, 남의 글을 써줄 때 그 사람의 인생과 걸맞는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작성할 때, 비로소 무언가 완성되었다는 희열을 느끼게 되지요.
지하철이나 버스에서는 창밖을 바라보다,생각나는 상념을 핸드폰 노트에 적습니다. 그러다 저녁 무렵 그것과 걸맞는 테마에 맞춰 글 한 편을 지으면 하루 일과를 마무리한 듯한 자부심이 가득합니다.
대필작가는 자신의 글을 쓰는 작가보다 훨씬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 자신의 글은 똑같은 벽돌을 쌓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의 인생을 위한 글은 다양한 색깔의 벽돌을 쌓아올리는 일과 같습니다.
그러기에 여러 색깔의 완성본을 만들어냅니다. 더불어 내 삶도 다채로워집니다. 분명 대필작가는 상당히 오픈된 사람일 거라 자부합니다.
나의 두 번째 대필의뢰자는 분명 저에게 귀인이었습니다.
대필일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이분의 책이 큰 동기가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의 고귀한 인생을 거저 취득하는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나이가 들면 제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손을 통해 책으로 출간하고 싶습파라존 코리아 카지노.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떤 철학과 가치로 담아낼까 궁금합니다. 나라는 존재가 대필작가의 필력에 의해 어떻게 요리되어 나올지 상상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제가유명한 사람이 된다면 가능해질까요?
기대해 보렵니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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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재는 매주 한 편씩 올립니다. 대필의 시간을 다시 떠올리면서 한 땀 한 땀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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