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급 2, 1과 읽기 지문에 이런 문장이 있다. 『저는 어떤 계기로 멀리 한국에 이주하게 되었을까요?』 나는 계기의 의미를 어떤 일이나 변화가 일어나게 된 이유라고 설명해 줬다. 비슈누 님이 물었다. 그냥 이유랑 어떻게 달라요? 생각해 보니 내 설명만으로는 그들에게 딱 가닿을 것 같지 않았다. 달이 뜨는 이유라고는 해도 달이 뜨는 계기라고는 하지 않으며, 기온이 떨어지는 이유라고는 해도 기온이 떨어지는 계기라고는 하지 않으니까.
나는 계기에는 사람의 동기 내지는 결정적인 느낌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설명을 덧붙였다. 이민을 결심한 계기, 창업 계기, 이번 일을 계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이런 예를 들어가며.
수업은 한국어를 이해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처럼 계기라는 단어가 기회의 뜻을 갖기도 한다는 설명은 할까 하다 말았다. 그 읽기 지문에서만도 내가 설명한 여러 표현 외에 질문할 게 있으면 하라는 말에 마음을 먹다, 겁이 나다도 모른다고 했으며 맨 마지막 문장이 이렇게 끝났기 때문이다. 『…새로운 기회도 잡게 될 것입니다.』
이 기회랑 계기는 어떻게 달라요?라는 질문이라도 나오면 어쩌나. 계기와 기회가 같다면 같은 뜻이라고 하면 편하다. 하지만 계기에는 뭔가 사람 냄새가 나는 것 같고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온다, 절호의 기회는 괜찮지만, 그 기회 자리에 계기를 쓰면 어색한 것처럼 둘의 쓰임이 같다고는 볼 수 없으니 말이다.
나는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수업 시간이 부족하다는, 너무 많이 알려주면 학생들이 버거워한다는 핑계도 추가. 실제로 수업 말미에 한 학생이 어리광 부리듯 이랬다. 오늘 배운 게 머리에 꽉 차서 더는 안 들어올 것 같아요. 옆에서 또 다른 학생이 말을 더했다. 하루에 하나만 배우고 싶어요. 나는 교재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우리 100시간 동안 이거 다 공부해야 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