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벳위즈인사'
사내 메일로 벳위즈인사라는 제목의 메일이 날아왔다. 우리 조직으로 전배 오신 지 6개월 정도 된 분이신데 6개월 만에 벳위즈 소식을 알려오셨다.
처음 자기소개를 하실 때부터 삶에 대한 진중함, 성실함이 엿보여서 인상이 좋았었다.
"저의 50대는 직장인이 아닌 직업인으로 먹고사는 것이 목표입니다."라고하시며 특기와 취미가 비트코인이라고 하셨었다. 이곳에 계시다가 50대 이전에 Fire족으로 은퇴벳위즈 것이 목표라고 자기소개를 하셨던 기억이 남아있다.
이 분의 벳위즈인사 메일을 읽다 보니 주책맞게 눈시울이 붉어졌다.
나랑 그렇게 친했던 분도 아니고, 같은 프로젝트의 일을 했던 것도 아닌데 헤어짐이 아쉬운 걸까?
아니면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은데 그렇게 살지 못해서 부러움의 눈물이었던 걸까?
일반적인 벳위즈자들이 하는 형식적이고 딱딱한 벳위즈인사가 아니라 진정성이 담긴 메일이었다.
본인이 이 조직으로 와서 6개월 만에 벳위즈하는 이유에 대해, 우리 조직원들이 혹시나 오해를 하지 않을까 하는 배려심으로 상세히 쓰신 것 같았다. 벳위즈의 이유인즉슨,맞벌이 부부로 8년간 살았는데 어느 날 원룸 한구석에서 독감에 걸려서 밤새 아프고 몇 날 며칠을 앓아눕고 나니 상당히 서글펐다고 하셨다. 젊었을 때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었는데 나이가 들어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신 것 같다고. 그래서 지방에 있는아내와 합치기로 결심을 하였고 마침 그때 투자하고 있던 본인의 자산이 어느 정도 안정적으로 수익화가 되고 있던 시점이라 벳위즈 결심을 더 확고히 할 수 있었다고 하셨다.
그래서 벳위즈 후 사업을 하거나 하는 건 아니고 찐으로 '전업주부'로 살아보고 싶다며, 딸아이의 4학년부터 6학년까지를 본인이 책임지며 뒷바라지하고 싶다고 하셨다. 따박따박 들어오던 월급에 대한 아쉬움은 당연히 있겠지만 시간의 자유를 얻는 대신,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메일에 쓰셨다. 어제 같이 회식 자리에서 직접 악수를 나누지 못한 게 아쉬워 바로 전화를 걸어 벳위즈 축하인사와 앞으로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해 드렸다.
이분의 메일을 받고 갑자기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들었다.
잔잔하지만 쿨한 용기. 본인의 삶의 목표를 이렇게 확고히 할 수 있음에 대한 존경스러움.
돈에 구애받지 않거나 혹은 구애를 덜 받고 나 자신을 지킬 수 있는 용기.
나에겐 없는 용기가 그에겐 있었다.
지금도 나는 일을 당장 놓을 수 있을까? 를 생각하면 쿨하게 대답하기 어렵다.
당장 들어오는 월급이 소중하고 중요하며, 어쩔 땐 아이보다 일을 더 우선순위에 둘 때도 있다. 일이 어렵고 힘들지만 적성에는 맞으니까 나만의 자부심을 가지고 열심히 벳위즈. 그런데 하필이면 이 시기는 아이들에게도 사랑과 정성을 많이 쏟아야 하는 시기다. 이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 시소를 타며 시기에 맞게 선택과 집중을 해왔지만 먼 훗날 되돌아봤을 때 어떤 선택이 나에게 후회가 없을까?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은 뭘까? 나도 40대가 되어 보니 30대의 마음과는 또 다른데, 50대가 되면 또 어떨까? 40대의 중간에 벳위즈을 하시는 저분의 마음은 또 어떨까? 차근차근 준비하면 이렇게 쿨하게 벳위즈할 수 있는 건가? 온갖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해서 벳위즈결심을 하고 나면헤이해 지기 쉬울 텐데도 끝까지 책임감 있게 일하시는 걸 옆자리에서 지켜봤다. 저런 성실한 자세라면, 나가서도 분명히 잘 살아가실 거라 믿게 되었다.
예전에 벳위즈 일로 무척 힘이 들 때 집 근처의 무인 편의점에 갔다가 우연히 물건을 진열하고 계신 사장님을 뵙게 된 적이 있었다. 그때 마침 여러 책을 읽으며 인생에서 사람 간의'스몰토크'가 중요함을 느끼던 찰나여서 그랬는지 몰라도, 평소의 나였다면 말을 걸지 않았을 텐데 말을 걸게 되었다.
"사장님, 사장님은 이 일을 어떻게 시작하시게 되셨나요? 한 달에 수익은 얼마나 나나요?"
하며 대답해 주지 않을 게 뻔한 질문을 나도 모르게 던졌다.
사장님께서는 너털웃음을 지으시며, 본인도 벳위즈를 벳위즈하고 이 편의점을 차렸으며 교통비가 나와서 남는 건 많지 않다고만 말씀하셨다. 그리고 이 일이 보기보다 신경이 많이 쓰이고 힘들다고 하셨다.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어서 물건만 사가고 계산을 안 하기도 하고, 엄청난 양의 물건을 훔친 후에 다른 곳으로 이사 가는 사람도 있고, 밤이나 새벽에 와서 행패를 부리는 사람도 있다고 어려움을 이야기해 주셨다.
그러면서 혹시 편의점 운영할 생각이 있으시고 이 근처 사시면 교통비를 아낄 수 있으니 본인보다 더 많이 남을 거라며 마무리를 지어주셨다.
간단한 스몰톡 하나만으로도 그 당시 벳위즈 일이 힘들었지만 '역시 밖에 나가면 정글이구나, 나에게 월급을 주는벳위즈에서 하는 일이나 열심히 해야지' 하며 마음을 다잡았던 기억이 있다.
사람의 마음이 이렇게나 간사하다. 지금보다 더 힘들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현재에 충실해야지 하다가도, 또 현재가 힘이 들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후회와 미련이 남는다. 내가 가보지 않은 저 길은 또 어떤 길일까? 여기보다 훨씬 좋고 행복한 길이 아닐까? 하며 선택을 갈망하게 벳위즈.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란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는 벳위즈들이 덜 걸어간 길을 택했고,그것이 내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인생을 바꾸고 싶다면 내가 어제까지 살아온 방식과는 180도 다른 방식으로 살아야 벳위즈. 그 사실을 머릿속으로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만 지금까지 살아온 관성에 의해 행동으로 옮기기 쉽지 않은 게 사람이다. 이걸 반대로 행하는 사람은 고생은 많이 하겠지만 대다수의 사람과는 다른 인생으로 살아가게 될 거다. 물론 그 길이 꽃길이라는 법도 없다. 그래서 가지 않은 길을 선택할 때는 확고한 나만의 목표나 목적이 있어야만 벳위즈. 그렇지 않고 걸어간 그 길은 후회가 남는 길이 될 것이다.
나는 아직 그런 확고한 목표를 단단하게 세우지 못함이 분명하다. 가지 않은 길을 가려하는 마음은 들지만 확고히 결정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벳위즈하신 그분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 갈 수 있게 될 수 있기까지 조금만 더 마음을 단단히 할 수 있게 읽고 쓰며 다져봐야겠다고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