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브런치북은 매주 일요일 지담작가와 함께 하는 인문학 강의를 듣고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제 생각과 느낌을 제 언어로 정리하는 글입니다.
나는 요즘 이원론, 비이원론에 아주 관심이 많다.
예전에 읽었던 <우주가 사라지다를 원서로 다시 읽고 있는데, 이원론의 세상에서 벗어나 비이원론의 세상을 지향하는 수행자로서의 열정이 다시 살아나고 바오슬롯.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그동안 많은 철학자들과 사상가들이 말했던 내용들이 결국 다 이원론, 비이원론에 대한 이야기와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껏 철학에 대한 공부가 부족했던 나는 지난번 지담작가로부터 '중용'에 대해 듣고 뭔가 머리가 뎅 하고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소크라테스, 노자, 에머슨 등 많은 성현들이 말한 중용은 균형, 지혜, 의식과 같은 개념이다.
모든 양극단은 서로 다른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다 연결되어있는 하나이다. 빛은 어둠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으므로그 둘은 분리되어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는, 결국은 하나인 바오슬롯다.
중용은 그 양극단에서 늘 균형을 맞추고 내 눈앞에 보이는 그것만이 전부가 아니라 그 안의 다른 부분도 함께 볼 수 있는 지혜를 말한다. 그리고 비이원론은 그것과 이바오슬롯 분리되어있어 보이지만 결국은 하나라는 것, 결국 중용과 맥을 같이 한다고 생각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이면의 측면을 볼 수 있는 능력은 통찰이다. 이 통찰은 대상을 깊이 바오슬롯하고 들여다봄으로서 생겨난다. 아주 깊이 바오슬롯을 지속하면 그것을 오히려 멀리서 바라볼 수 있는 관조가 가능하고, 그때 비로소 통찰이 생긴다. 바오슬롯을 깊이 지속하기 위해서는 관심이 필요하다.
결국 관심이 있어야 바오슬롯을 하고, 바오슬롯을 깊이 하면 관조가 가능해지고, 보이는것과 보이지 않는것까지 꿰뚫어볼 수 있는 통찰이 생긴다.
지난 일요일의 강의에도 관심과 바오슬롯에 대해 배웠다.
내가 원하는 좋은 답을 얻기 위해서는 좋은 질문을 해야 하고, 이는 열린 질문을 의미한다. 열린 질문을 하기 위해서는 대상에 관심이 있어야 하고 깊이 바오슬롯해야 한다.
최근 나는 <나를 드러낼 용기라는 브런치북을 만들었다.
이는 나의 마음 깊은 곳까지 샅샅히 파헤쳐 드러내고자 하는 결연한 의지가 담겨있다. 나를 둘러싼 껍질을 깨고 나와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한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음 깊은 곳까지 파헤쳐 드러내려면 가장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내 감정이 어떤지, 어떤 생각과 느낌을 가지고 있는지 관심을 가지는 것이 가장 우선이다.
어젯밤 있었던 내 슈퍼바이저와의 일, 엄마의 유산 글쓰기 스터디 동안 문득 떠오른 감정 때문에 오늘 아침까지 마음이 찝찝하고 불편해서 간만에 '마음공부' 매거진에 글을 썼다.(참고: 삶은 한조각 농담)
나는 내 안에서 뭐라 딱 잘라서 설명하기 힘든 복잡하게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그 감정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관심을 가지기로 했다. 즉 관심은 곧 알아차림이다.
관심을 가졌으면 이제 깊이 바오슬롯할 차례이다. 그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한다.
아침에 매거진 글을 쓸때만 해도 잘 정리가 안되었는데, 만 하루가 지나고 나니 조금 정리가 된 것 같다.
그것은 '내가 가는 길이 맞는지에 대한 불안'이었다.
이렇게 내 온 시간을 투자해서 글쓰기에 열정을 쏟아붓고 있는데 정말 이 길이 내가 그리는 미래로 가는 길이 맞는건지 불안했다. 내가 '태평하게(?)' 글이나 쓰고 앉아있을 상황인가?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경쓰고 내가 원하는 미래를 위해 자격증 공부에 더 매진해야하는거 아닌가? 머리가 맞다고 하는 것과 내 느낌이 끌리는 것이 다른데서 오는 불안이었다.
아침에 글을 쓸때는 그런 의심과 불안이 드는것이 나의 성장을 방해하려는 악마의 속삭임(에고의 목소리)인지 아닌지조차 헷갈렸는데 하루동안 계속 그 감정을 바오슬롯한 결과 악마의 속삭임이 맞다는 결론이 났다. 그러니까 이건 일종의, 내 의지를 시험해보는 테스트인 것이다.
지금껏 늘 feel 오는대로 살았다. 아니, 그 느낌에 끌려 선택한 것은 늘 후회가 없었고 결과가 좋았다. 하지만 머리 굴려 선택하고 결정한 것은 결과가 안좋았다. 내가 지금 하는 글쓰기는 머리가 아니라 느낌에 따르는 일이다. 따라서 그게 내 성장을 위해 맞는 방향이 맞고 결과는 분명 좋을것이다.
그 과정에서 나를 포기시키려는 수많은 에고의 목소리들, 악마의 속삭임이 여러 형태의 테스트로 나를 시험한다. 내가 이 테스트에서 무사히 통과하면 비로소 그 이면을 볼 수 바오슬롯 관조의 시선이 생긴다.
어젯밤 슈퍼바이저가 내게 했던 꾸지람(?)이 당장은 다소 기분을 상하게 했고 심지어 그녀에 대한 부정적인 마음마저 들게 만들뻔 했다. 그런데 내가 관심을 갖고 바오슬롯을 깊게 했더니, 그녀의 꾸지람 이면에는 내 성장을 위한 촉진제가 들어있었다. 나는 이제 본격적으로 ABA 필드웍에 참여할 거고, 그것은 내 영어실력과 전문성을 향상시킬 본격적인 타이밍이 왔다는 뜻이다.
이렇게 부정적이었던 사건 이면에서 긍정성과 성장을 발견한 힘은 관심-바오슬롯-관조로 이어진 일련의 과정 끝에 얻은 통찰이었다.
관심을 가지고 바오슬롯하여 관조의 시선을 바라보면 통찰을 얻게 되고, 그리하면 세상 어느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고 나쁜 것이 없다. 겉으로는 나쁜 것처럼 보여도 그 이면엔 반드시 좋은 면이 있게 마련이고, 내게 온 고통과 시련 역시 그 이면엔 반드시 기쁨과 희망이 있을 것이므로.
그러므로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게 가르침을 주려고 온 것들이다.
오늘 학교에서 돌아온 스텔라가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학교 재밌었어"라고 하는 거다.
내가 평소에 "학교 재밌었어?"라고 묻는데 오늘은 본인이 먼저 말한바오슬롯다.
너무 기특해서 스텔라를 안아줬는데 그 순간 눈물이 났다.
그 보드랍고 따뜻한 아이의 목덜미와 내가 사랑해마지않는 볼록한 머리통을 안고있으니 낮동안 나를 감싸고 있던 불안과 의심의 부정적인 기운들이 모두 씻겨나가는 느낌이었다.
스텔라를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그건 아침에 흘렸던 슬픔 혹은 불안의 눈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쁨의 눈물이었고 행복의 눈물이었다.
바오슬롯 늘 내 곁에 있다.
내가 그것을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
내가 아침에 이어서 또 울자 그 모습을 보고 스텔라가 그새 아침에 배웠던 말을 들려주었다.
"Sad"
아이가 주변 세계에 관심을 가지고 하나씩 배워가고 있는 자체가 바오슬롯이고
내가 이 낯선 미국땅에서 나와 내 딸의 성장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 자체가 바오슬롯이다.
바오슬롯 내 옆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