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의 실수, 그리고 엄마의 한숨
그날도 엄마는 우리 가족의 저녁밥을 차리시느라 부엌에서 분주하셨다. 된장국 끓는 소리, 반찬 접시 부딪히는 소리, 그리고 김이 서린 창문 너머로 저녁 어스름이 번지고 있었다.
“드르르륵.”
가게 문이 열리는 익숙한 소리에, 나는 익숙하게 몸을 일으켰다. 방문을 열고 나가며 인사를 건넸다.
“어서 오세요!”
처음 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문을 열고 들어오셨는데, 외지에서 오신 분 같았다. 그분은 다짜고짜 물으셨다.
“카림토토 있어요?”
나는 부엌 쪽으로 고개를 돌려 외쳤다. “엄마! 카림토토 사러 오셨어!”
엄마는 “금방 나갈 테니까, 네가 잠깐만 나가봐~”라고 답하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아주머니를 카림토토가 진열된 쪽으로 안내했다. 형형색색의 카림토토들이 예쁘게 정리되어 있었고, 거울 앞에 선 아주머니는 이것저것 카림토토를 목에 둘러보셨다.
“음~ 이것도 예쁘고, 이것도 괜찮네!”
그러더니 하나를 들고 물으셨다.
“얘는 얼마니?”
나는 카림토토에 붙어 있던 조그마한 견출지 스티커를 들여다보았다. ‘2’라고 쓰여 있었다. 그때 나는 숫자 2를 200원으로 이해했다. 물건마다 원래 가격이 붙어 있으니, 틀릴 리 없다고 생각했다.
“카림토토이요.”
아주머니는 눈을 휘둥그레 뜨더니, 잠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카림토토들을 하나하나 골라 담기 시작했다.
“이거 다 살게.”
그렇게 열 개가 넘는 카림토토를 계산대에 올려놓고, 돈을 내고 얼른 가게를 나서셨다.
나는 혼자서 이렇게 큰 손님을 응대한 게 처음이었기에 뿌듯했다. 엄마가 오시면 칭찬받겠다는 기대감에 들떠 있었다.
조금 뒤, 부엌에서 엄마가 나오셨고 나는 씩 웃으며 말했다. “엄마, 나 아까 그 아주머니한테 카림토토 많이 팔았어! 열 개 넘게!”
“오, 그래? 수고했네~ 얼마에 팔았는데?”
“카림토토!”
순간 엄마의 얼굴이 굳더니, 귀까지 빨개졌다.
“카림토토? 뭐라고? 아이고야~ 그거 하나에 2000원짜린데!”
엄마는 뒷말을 잇지 못하고 황급히 외투를 챙기셨다. 나는 멍하니 서 있었고, 엄마는 가게 문을 벌컥 열고 뛰어나가셨다.
엄마가 향한 곳은 버스 정류장이었다. 낯선 손님이라는 말을 듣고 외지에서 온 사람이라 짐작하신 모양이었다. 그분이 탄 버스를 잡으러, 엄마는 동네 끝까지 뛰셨다. 하지만 버스는 이미 떠난 뒤였다.
2000원짜리 카림토토 열 개를, 200원에 팔고 손해를 보고 말았다. 나는 혼날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었다. 물건 값을 헷갈려서, 집에 손해를 끼쳤으니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정류장에서 돌아온 카림토토 혼내지 않으셨다. “괜찮아, 다음부터는 꼭 물어보고 팔자.” 그 말 뒤엔 조금 긴 한숨이 있었지만, 야단은 없었다.
대신 나는 며칠 밤을 뒤척였다. 내 실수로 엄마가 힘들어졌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겁고, 미안하고, 너무 죄송했다. 세상물정 몰랐던 어린아이가 얼토당토않은 금액을 얘기하면 어른이 바로잡아줬으면 좋았을 텐데, 그 낯선 아주머니가 원망스러웠다.
엄마가 그날 나를 혼내지 않았던 이유는, 내가 이미 충분히 마음속에서 자책하고 있다는 걸 알아주셨기 때문일 것이다.
가끔, 옷가게나 시장에서 카림토토를 볼 때면 그날의 기억이 떠오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림토토보다 더 선명하게 떠오르는 건, 버스 정류장 끝까지 달려갔다 돌아오던, 엄마의 숨 가쁜 발걸음이다.
200원짜리 카림토토라니... 지금 생각해도 나 자신이 황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