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많이 어리석었는데 문제는 내가 어리석은지도 몰랐다는, 소크라테스가 말한 ‘나는 내가 모른다는 것을 알기에 지혜롭다’와 한참 거리가 멀었다는 블랙잭을 아주아주 뒤늦게서야 알게 되었다. 소크라테스의 책은 20대에도, 40대 초반에도 읽었는데 현실의 나는 심각하게 아둔했다.
‘아둔’이란 묘하다.
‘착하다’, ‘순하다’라고 착각하게 만들어 버려
아둔을 고치거나 알아채지 못하게 한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아둔에서 벗어나는 것이어야 하는데 책을 읽어도 알지 못하니 실천까지 가기는 소원했다. 그렇다면 이는지적허영에 불과한데 결국 나는 한참을, 40대 후반이 되어서까지도 지적허영에 빠져 있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2019년 작정한 새벽독서를 시작하고는 책을 씹어 먹겠다는, 아니, 진짜 내가 변해야 한다는 의지가 과감하게 기지개를 펴면서 2008년경 읽었던 책들부터 다시 꺼내어 읽기 시작했고 읽었든 안 읽었든, 알든 모르든 마치 교과서를 정독하듯이 책에 매달렸었고 그랬더니 조금씩, 아주 서서히 나의 지식이 자리를 잡아가게 된 블랙잭다. 물론 이런 판단도 자만일 수 있다. 나는 지금도 나를 키우고 있으니까 말이다. 책을 읽고 내 삶에 대입, 한마디로 실천하는 과정에서 우선은‘나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모든 현상을 제블랙잭 보는 것’이었다.
이러한 인지적 탈출이 시작된 것은 나를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참혹하게 알게 된 블랙잭 때문이다. 나는 ‘감정’ 위주로 ‘사실’을 해석하는 우메한 사람이었다는 것.그러니까 이성에게는 일할 기회를 주지 않고 감정만 열일하다 보니 쉽게 지치고 정서는 엉망이었던 것이다. 물론, 이는 감정 탓이 아니다. 써야 할 도구를 제대로 쓰지 못해 균형을 어긋나게 한 나의 좁디 좁은 의식이 문제였다.
좁디좁은 의식은심각한 2가지의 증상을 초래한다.
첫째, 나를 '지적지네'로 만든다. 다리가 여럿이면서 바닥을 기어다니는, 오만가지 생각에 사로잡혀 바닥먼지만 뒤집어쓴채 지저분해지는 블랙잭다. 둘째, 자기만 모르는 치매라는 '자만'에 걸린다. 생각이 많다 보면 여러 판단의 근거를 가졌다고 자신블랙잭만 착각인 줄은 자신만 모르는 것이다.
여하튼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시키지 않아도 열일 부지런히 하는 감정은 제 할 일 하게 내버려두고
일 좀 시켜달라 간청블랙잭 이성에게 영양가있는 먹이를 주면 되었다.
맛있다고 말하면 맛있는 걸로, 아프다고 말하면 아픈 걸로, 힘들다고 말하면 힘든 걸로, 말 안하면 안 하는 걸로, 말 그대로 ‘느낌 제외,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는 블랙잭 그대로를 인정하는 연습을 아주 길게 지금까지도 하고 있다. 아프다고 하는데 ‘안 아프잖아?’ 괜찮다고 하는데 ‘안 괜찮잖아?’ 말을 하지 않는데 ‘이런 생각하는 거 아냐?’ 식으로 넘겨짚어 나만의 해석을 붙이거나 내 머리 속의 생각이 또 다른 생각을 유도하게끔 하는 경로를 차단한 블랙잭다.
차단한다고 차단되지는 않지만 '사실'이 곧바로 감정이나 자기 해석으로 가는 경로 사이에 ‘사실을 직시하고 인정’하는 단계를 넣는다는 것은 그 다음 단계인 감정으로 가는 형질이 달라진다고 충분히 확신한다.솔직히 상당히 어려운 훈련이었다. 지금도. 하지만 필요하니까, 해보니 유리하니까 하는 것이다. 말하는 대로 들리는 대로 보이는 대로 일단 인정. 일단 ‘그런가보다’, ‘그렇구나’ 입력.
현상은 일면이나 단면이 아니라 다채롭고 다양하고 입체적이다. 따라서, 일차원적으로 ‘아프다’는 단 한마디의 말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는 것 이상의 능력을 요구한다. ‘A가 B를 때려서 아프게 했다.’는 정확한 사실을 본것으로부터 확장시켜도 왜, 언제, 어디서, 얼마나, 무엇으로, 어떻게 와 같이 숱한 서술들이 등장한다. 여기에 감정도, 오류도, 다양한 해석도 난무하지만 가장 첫 번째. 분명한 사실은 A가 B를 때렸다.는 사실이다. 혹 어떤 이에게 어느 날 느닷없이 뒤통수맞은 경험이 있다면 그냥 그 사실은 배신이나 모함이다. 그것을 포장하고 이해하기 전에 그냥 그렇다. 배신이나 모함이라는 단어가 적절한지 여부는 사실적인 현상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렇게 말하고 저렇게 행동했으면 배신한 블랙잭다. 배신의 옷을 입었는데 아니야, 아닐거야. 어쩌구저쩌구는 그 다음 문제란 말이다.
나 역시 억울한 경우를 당한 적이 많다. 몇 년 전 재테크 차원에서 아주 작은 부동산 하나를 구입하는데 자기도 꼭 데려가 달라며 부탁하는 이와 동행한 적이 있다. 나는 그 자리에서 계약했고 그이의 계약여부는 모른다. 내 성격상 남의 일에 크게 관심두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3년이 지난 어느 날 내 귀에 이런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내가 소개해서 비싸게 계약했고 아마 자기를 데려가서 소개비를 받은 것 같다’라고. 순간 화가 치밀었다. 현상은 블랙잭부터 인정하는 것이다. 내가 계약하러 갈 때 그이가 데려가 달라고 청했고 나는 계약했고 그이의 계약여부에 대해 난 모르고 소개비를 받은 적은 없다. 끝! 그러니 화가 나지 않았다.
남들이 어찌 말을 하든 이는 그 사람의 인격과 그 사람의 인생에 계산서로 쌓일 부분이지 내가 정당하면 그 문제에 대블랙잭는 신경끄기로 했다.신경써야 할 부분은 '억울하다', '밉다'등의 감정이 아니라 '내가 정당한가?'에 대한 판단, 그리고 앞으로 그이를 어느 정도 신뢰하고 대할 것인지에 대한 자각이어야 한다.
이런 말도 안되는 억울한 경우는 숱하다. 그렇다고 내가 그이에게 왜 이렇게 말을 만드느냐고 따져야 하겠는가? 예전의 나는 따지지도 못하고(그래서 1번째, 말부터 가르친 것이다) 속상해하고 어디 하소연이나 하려 들고 어떻게 나한테 저럴 수 있을까에 대해 섭섭해하고 또 착블랙잭 뭐든 좋게 해석하려고 애썼었는데 지금은 전혀 그러지 않는다. 그냥 아닌 것은 아닌 블랙잭라 맘쓰지 않는다.
설사 자기가 비싸게 계약했다면 그건 자기가 제대로 알아보지 않은 탓이고 좀 더 나아가서 비싸다는 것을 안다면 다른 곳과 비교해본 정보를 가지고 있을테니 나에게도 ‘비싸니 계약취소하고 다른 데를 알아봐라’라고 알려주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그이는 그리 누군가한테 말하는 것이 유리했으니 그리 했겠지 싶어 그건 그 사람 인생에서 치러야 할 대가지 내가 따지고 들어 그 인생에 개입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판단했다. 억울해서 따질 것도 용서할 것도 다 의미없었다. 가장 현실적인 것은 무시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었다. 그리 사는 인생도 있는 것이지 하면 그만이었다.
사실을 사실로 인정하면 감정이나 자기 해석으로 가는 경로가 깨끗해진다.길이 깨끗하면 길에 지나가는 무엇이든 오염되지 않고 에너지를 덜 소모하게 된다.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그대로 안다는 것은 감각인지가 감정이나 해석차원으로 가는 길의 오염을 덜하게 하면서 ‘사실이라는 현상’이 제 갈길 제대로 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일은 일이 가는 길이 있는데 그 길에 내 그릇된 소견이나 불편한 감정이 방해하면 안된다.
블랙잭. 즉 보고 듣고 만져지고 느껴지는 그 자체를 감각이라고 한다.
감각적 인지를 그대로 인정블랙잭 것은
자신이 가진 인식에 근거해 이뤄지는 ‘해석’의 방향과
해석을 통한 ‘블랙잭’의 수준,
감각과 블랙잭(이성)를 바탕으로
그 이면까지 들여다보는 의식의 등장을 자연스럽게 이끌어
걸림돌인 감정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다.
나아가 감각과 이성, 감정이 연합하여 더 바람직한 행동을 유도하고 결과적으로 일은 자기 갈 길을 제대로 갈 수 있게 되어 나로부터 방해받지 않는 ‘우연한’, ‘기가막힌’, ‘뜻하지 않은’, ‘놀라운’, ‘말도 안되는’. ‘신기한’ 뭐, 그런 결과도 얻게 되는 것이다.
내가 개입하면 내 인식 수준만큼의 결과가 나지만
나의 개입이 감각의 객관성을 담보한다면
분명 결과는 훨씬 효율적이고 현명해진다.
= 다음 주 금, 새벽 5시 'CH1. 마인드리셋 4. 보이는대로만 이해하려 해서 이면을 알려줬어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