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지담작가님의 코칭을 받아 지난 글(참고)을 좀 더 깊이 있게 다듬고 수정한 글입니다.
일련의 글쓰기 습작과정이라고 생각하고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텔라,
세상에서 가장 사랑룰렛 나의 딸.
오늘은 룰렛가 네게 용서를 구하고 싶어.
네가 이 세상에 온 것이 처음이듯, 룰렛도 룰렛가 처음이라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단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너에게 했던 실수들도 참 많아. 그중 가장 큰 실수는 너를 룰렛의 틀 속에 가두고 룰렛의 기준으로 너를 평가하려 했다는 거야.
룰렛는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얼굴이 화끈거리고 너에게 이루 말할 수 없이 미안해져.
네가 아침에 일어나 화장실 갈 때, 혹은 계단을 통해 1층으로 내려올 때마다 룰렛에게 업어달라고 했던 적이 있었어.
아직 어린아이인 네가,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싶을 수도 있지. 그런데 엄마는 그 순간 네가 엄마에게 의존한다고 생각해서 덜컥 겁이 났어. 네가 평생 엄마에게 의존룰렛 사람이 될까 봐.
그래서 그저 룰렛의 사랑을 받고 싶었을 뿐인 너에게 모질게 화를 내고 혼자 하라고 등을 떠밀었지. 버티는 너와 밀어내는 룰렛와의 사이에서 벌어지는 아슬아슬한 줄다리기 때문에 즐겁게 사랑 나누기도 모자란 아침 시간에 늘 짜증과 분노가 온 집안을 감싸서 많이 힘들었어.
그냥 좀 업어주면 될 것을, 왜 그렇게 엄마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던 건지 그때는 몰랐어. 그런데 시간이 지나 이제는 엄마가 업어준다고 해도 싫다는 너를 보며 뒤늦게 깨닫게 되었어. 그건 엄마가 너를 엄마의 기준 속에, ‘발달장애’라는 틀 안에 가둬놓았기 때문이란 걸.
또래보다 발달이 느렸던 네가 어디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하고 온갖 병원과 센터들을 돌아다니면서, 엄마는 이미 엄마의 기준으로 너에게 문제가 있다고 결론지어버린 거야. 그래서 네가 자폐스펙트럼장애냐 아니냐를 두고 의사 선생님들 간에 의견이 갈렸을 때도, 엄마는 맞다는 쪽으로 분류해 놓고 그 안에 너를 가둬버렸어.
이 넓은 세상을 살아갈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너를, 룰렛가 만들어놓은 그 틀 안에 가둬버린 거지.
룰렛의 실수를, 룰렛의 무지를 용서하렴.
스텔라, 엄마는 이제 너를 좁은 틀 안에 가둬놓지 않으려고 해. 네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을 마음껏 펼치고 너 자신을 넓은 세상에 드러낼 수 있도록 풀어줄 거야.
그러기 위해서 네 가지의 측면에서 이 세상에 존재룰렛 ‘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해.
아까 엄마가 가진 기준으로 너를 평가하고 틀에 가두어놓았다고 했어. 그렇다면 이 기준에 대해 한번 생각해 볼까? 그 기준은 누가 만드는 것일까?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기준, 그런 것이 정말 있다면 그건 누가 만든 거지?
혹시 룰렛는 아무 생각 없이 사회가 만들어놓은 기준을 내 것으로 받아들였던 건 아닐까?
우리 사회에 존재룰렛 수많은 ‘라벨링(labeling)’에 대해서 생각해 보자.
사람들은 라벨 붙이기를 참 좋아해.
남자와 여자, 보수와 진보, 부자와 서민 등의 기본적인 사회적 라벨링뿐 아니라 남들과 조금만 달라도 ADHD니 우울증이니 경계선지능이니 룰렛 등의 라벨을 붙이고 분류하지.
그뿐인 줄 아니? 요즘엔 캥거루족(주1), 니트족(주2), 프리터족(주3) 등 경제적, 생활방식에 따라서 새로운 사회적 라벨링도 많이 생겨나고 있어. 또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아싸(아웃사이더)와 인싸(인사이더)와 같이 사회적 관계에 따른 라벨링도 존재하지.
또는 사람의 성격을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구분 짓는 라벨링도 있어. 엄마는 어릴 적 ‘내성적’이라고 나를 라벨링 룰렛 주변 어른들의 말 때문에 ‘나는 내성적인 아이야’라고 스스로를 규정지었어. 그리고 그 라벨에 맞추어 정말 내성적인 아이가 되었고 ‘내성적인 것은 안 좋은 것’이라는 잘못된 신념을 가진채 오랫동안 살았어.
하지만 분명 한 개인의 성격에는 내향성만 있는 것도 아니고 외향성만 있는 것도 아니거든. 때에 따라서는 내향성이, 어떨 때는 외향성이 더 드러날 수 있는 건데 한순간에 ‘내성적인 아이’로 라벨링 당한 경험이 룰렛의 사고방식과 행동양식을 제한해 버린 거야.
이렇게 라벨을 붙이는 행위는 우리가 세상과 사람들을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정리룰렛 데 도움을 줄 수도 있지만 반대로 그 라벨로 인해서 개인의 잠재력에 대해 한계를 긋거나 편견이 강화될 수도 있어.
우리는 우리가 사용룰렛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 사고할 수 없다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처럼, 언어는 그 자체로 큰 힘이 있어서 우리의 사고와 세계관을 형성룰렛데 큰 영향을 끼칠 수 있거든. 여러 가지 개인적, 사회적 이유들로 인해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들에게 캥거루족이니 니트족이니 룰렛 라벨을 붙이게 되면 그들은 오히려 그것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자기 계발을 하려는 의지를 잃어버리게 될 수도 있다는 말이야.
사회학자 하워드 베커는 이렇게 사회가 개인이나 집단에게 ‘문제적’이라는 라벨(낙인)을 붙이면 그 라벨이 실제로 그들의 정체성과 행동을 형성할 수 있다는 라벨링 이론을 주장했어(주4). 예를 들면, 어쩌다가 한 번의 잘못으로 ‘비행 청소년’이라는 라벨을 받은 아이는 그 라벨을 자신의 정체성으로 받아들이고 점점 더 범죄 행동을 지속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거야.
이렇게 우리 사회는 너무나 쉽게 수많은 라벨링을 쏟아내고, 이는 알게 모르게 우리의 사고와 행동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거지.
하지만 어떤 것에 대한 ‘기준’은 언제나 절대적인 것이 아니야. 사회와 문화에 따라 달라지고, 또 역사적으로 늘 변화해 왔지. 과거에는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사람을 ‘비정상’ 혹은 문제 있는 사람이라 여기는 시선이 강했지만, 지금은 그러한 사회적 인식이 많이 약해졌어. 결혼을 하든 안 하든, 또는 아이를 낳든 안 낳든 그건 개인의 자유라고 생각룰렛 사람이 많아진 거야.
또 전통적으로 결혼은 남녀 간에 이루어지는 제도로 생각했지만 근래 들어 어떤 나라들은 동성끼리의 결혼을 합법이라고 정해놓기도 했거든. 자녀의 나이가 차서 성인이 되면 독립해서 스스로 돈을 버는 게 자연스러운 섭리라고 여겨졌지만, 최근엔 여러 가지 사회적 경제적 문제들로 인해 계속해서 부모님의 경제적 지원을 받으며 살아가는 청년들도 많아졌지.
이렇게 사회는 변화하고 그에 따라 사람들의 인식도, 기준도 변하기 마련이야.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기준도 마찬가지지. 눈에 보이는 신체적 장애는 그 정도가 덜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장애에 대한 기준은 시대에 따라, 상황에 따라 변할 수 있어. 자폐스펙트럼장애나 지적장애, 또 공황장애와 ADHD 같은 정신과적 장애는 미국 정신의학회가 발행하는 매뉴얼(주5)에 따라 보통 진단이 내려지는데, 그 매뉴얼이 시대에 따라 변화하고 있거든.
예를 들면 ADHD를 진단하기 위해서 DSM-IV에서는 증상이 7세 이전에 나와야 한다는 기준이 있었는데, 그다음 버전인 DSM-5에서는 이 기준이 완화되어서 12세 이전에 증상이 나타나면 진단이 가능하도록 변경되었어(주6).
이에 따르면 1994년도에는 ADHD가 아닌 사람이 2013년도에는 ADHD가 되는 거야.
결국 장애와 비장애를 가르는 기준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말이야. 누군가 다른 사람들이 역사적, 사회적 상황에 따라 임의로 정해놓은 것이 기준이라면, 우리가 그러한 기준에 따라 자신의 ‘한계’를 결정지어버릴 이유가 전혀 없다는 거야. 그 역시 각자에게 붙은 수많은 라벨링 중 하나일 뿐이니까.
룰렛는 이제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해.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이 기준들이 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거든. 그리고 그러한 무지가 너의 무한한 가능성을 막고 있었다는 것도.
중요한 것은 외부의 기준 말고 네 안에 기준이 있느냐 룰렛 거야.
사회가, 다른 누군가가 정해놓은 기준 말고 네가 정의한 너만의 기준이 네 안에 있느냐.
남들이 너를 보는 시선 말고, 네가 너를 어떻게 바라보느냐.
오직 그것만이 너를 평가하고, 네 한계를 결정지을 수 있는 거야.
엄마가 너를 ‘장애’라는 틀에 가두어놓았던 이유는 네가 또래보다 느려서, ‘기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장애란 어떤 사물의 진행을 가로막아 거치적거리게 하거나 충분한 기능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 또는 그러한 일을 말해. 또는 신체기관이 본래의 제 기능을 하지 못하거나 정신 능력에 결함이 있는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야(주7).
즉, 어떤 일을 충분히 할 만큼 기능이 부족하거나 가로막고 있는 것을 말하는 거지.
그럼 이 기능이 부족하다는 것, 어떤 일의 진행을 가로막고 있는 것은 비단 특정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일까? 아니야, 우리는 모두 완벽하지 않기 때문에 저마다의 강점과 약점을 가지고 있고, 누구나 잘 못하는 것, 기능이 부족한 부분을 가지고 있어.
엄마는 그림을 그리는 기능이 부족해서 어릴 때 속상했던 적이 많아. 정말 열심히 그림을 그렸는데 미술 선생님이 점수를 낮게 주셔서 그만 울어버렸던 적도 있단다. 또 사람들을 만나서 교류하고 어울리기보다는 혼자 있는 쪽이 더 편한 걸 보면 엄마는 사회성 기능도 조금 부족한 것 같아.
누군가는 운동을 하는 기능이 부족하고 또 누군가는 글을 읽고 쓰는 기능이 부족해. 어떤 사람은 주변을 깨끗하고 정리하고 청소하는 기능이 부족하지. 또 어떤 사람은 친구를 사귀거나 숫자를 암기하는 일, 아니면 깊이 있게 사고하는 일 등에 기능이 부족하기도 해.
이렇게 누구나 기능이 부족한 부분이 있지만, 중요한 것은 부족한 기능에 집중하기보다는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집중하는 거야.
심리학자 클리프턴은 강점기반 개발연구(Gallup Strengths-based Development)에서 개인의 약점을 보완룰렛 것보다 강점을 개발룰렛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증명했어(주8). 인간의 최대 잠재력은 약점을 고치는 것이 아니라 강점을 키우는데서 나온다는 거지(주 9).
부족한 기능이 있다는 것은 분명 어딘가엔 발달된 기능, 그리고 그것을 키울 수 있는 능력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뜻이거든. 역사상 위대한 사람들은 모두 부족한 기능, 즉 결핍을 기회로 삼아 더 큰 능력을 펼쳐낸 사람들이란다.
가장 대표적인 예로 베토벤이 있지. 그는 20대 중반 무렵부터 청력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고 30대 후반 무렵부터는 아예 귀가 들리지 않았어. 하지만 귀가 들리지 않는다는 결핍에도 불구하고 그는 몇백 년이 지나도 걸작으로 평가받는 여러 음악들을 만들어낸 위대한 음악가가 되었단다.
헬렌켈러는 또 어떻고? 그녀는 베토벤보다 사정이 더 심했지. 아주 어린 시절부터 귀가 들리지 않을 뿐 아니라 보이지도, 말도 할 수 없는 큰 결핍을 가지고 있었거든. 하지만 그녀는 촉각을 통해 의사소통을 배우고 세계 최초의 시청각 장애인 대학 졸업생이 되었지. 그리고 작가로서 장애인의 교육과 복지를 위해 헌신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큰 영감을 주었어.
이러한 위대한 일은 우리가 모두 아는 역사상 위인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야. 우리 주변에는 자신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더 큰 강점에 집중해 기적 같은 성과를 이루어낸 분들이 많단다.
뇌성마비를 극복하고 미국 대학의 최고 교수가 된 사람의 얘기를 들려줄까? 그녀는 어릴 때 뇌성마비로 인해 언어장애, 지체장애를 갖고 살아가게 되었어. 하지만 그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엄청난 의지와 노력으로 불가능할 것 같았던 많은 일들을 이루어냈단다.
걷는 것조차 자연스럽지 않은 지체장애를 가지고 악바리 근성으로 체력장에서 만점을 받았던 에피소드, 언어장애 때문에 그 누구도 가능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AAC(주10)를 활용해 교수가 된 일화를 통해 그녀는 ‘장애란 스스로 심리적 한계를 긋고 자신과의 싸움을 쉽게 포기해 버리는 행위 그 자체(주11)’라고 말해.
두 팔이 없는 화가도 있지. 팔이 없는데 어떻게 그림을 그리냐고? 팔이 없으면 두 발로, 입으로, 아니면 의수를 착용해(주12) 그림을 그릴 수 있어. 팔이 없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생각은 그야말로 편견에 불과한 거지.
선천적인 다리의 장애 때문에 의자에 앉아서 지휘를 하는, 누구보다 훌륭한 지휘자(주12)도 있단다. 그는 지휘는 서서해야 한다는 세상의 편견을 깨부수고, 곡에 대한 탁월한 이해와 해석을 바탕으로 아름다운 음악을 들려주는 지휘자가 되었어.
이밖에도 자신의 결핍에도 불구하고 다른 한편에 존재하는 자신의 강점에 집중해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성취해 내는 사람들의 사례는 많아. 중요한 것은, ‘기능의 부족’이 아니라 자신이 가진 다른 강점을 찾아 개발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정신의 힘’인 거야.
만일 내가 ‘장애인이 어떻게 감히’라는 시선에 굴복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말도 제대로 못 하는 뇌성마비 장애인이 어떻게 교수를 할 수 있느냐는 세상의 시선에 백기를 들었다면 아마도 오늘날의 나, 정유선으로 사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세상이 장애인에게 쌓은 편견의 벽에 갇혀 소중한 기회들을 잃은 채 살았을 것이다(주13).
귀가 안들리면 음악을 작곡할 수 없을 거라는 편견, 팔이 없으면 그림을 그릴 수 없다는 편견, 지휘는 서서해야 한다는 편견, 뇌성마비 장애인은 교수를 할 수 없을 거라는 편견을 깨고 자신의 결핍 대신 강점을 개발하는 힘은 바로 정신, 즉 마음의 힘에서 나오는 거야.
엄마는 세상의 편견, 어쩌면 엄마 스스로가 만들었던 편견을 이제 깨고 나오려고 해. 발달이 또래보다 느리다는 이유로 ‘발달장애’라는 틀 속에 너를 가두고 네 찬란한 가능성을 보지 않으려 했던 지난 날들, 남들은 다 하는데 너는 왜 못하냐고 답답해하며 다그쳤던 미숙한 태도, 부족한 기능은 곧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능력의 부재라고 연결 지었던 성급한 판단에서 이제는 벗어나려고 해.
우리 모두 부족한 부분이 있듯이 너에게도 부족한 부분이 분명 있을 테지만, 한 부분이 부족하다면 어느 한 부분에서는 분명 넘치는 곳이 있게 마련이니까. 룰렛는 그 넘치는 곳이 어딘지 찾아 네가 그 강점을 개발하고 너의 잠재력을 세상에 드러낼 수 있도록 너와 함께 앞으로 나아갈 거야.
베토벤이, 헬렌켈러가 그러했듯, 또한 우리와 동시대를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했듯 너의 결핍은 너를 더 위대한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기회가 될 수 있어. 그건 네가 다른 사람들과 똑같지 않다는 증거이고, 그래서 오히려 너만의 위대하고 특별한 서사를 만들어갈 수 있다는 힌트거든.
기능은 부족할 수도 있고 넘칠 수도 있는 거야. 또 아무리 부족하다고 해도, 반복된 연습을 통해 갈고닦으면 분명 기능은 올라가게 되어있어. 따라서 중요한 것은 기능이 아니라 그 기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하는 정신, 주어진 상황에서 위대한 잠재력을 찾아 관점을 바꾸어내는 마음의 힘에 있다는 걸 기억해.
룰렛가 살아온 세상은 무조건 공부를 잘하고 좋은 대학을 나와 좋은 직장에 들어가거나, 자격증을 따서 전문직이 되는 것이 인생의 성공적인 경로라고 여겨지는 세상이었어. 그래서 너도나도 그 길을 가기 위해 어린 시절부터 열심히 달려왔지.
성적으로 일등부터 순위가 매겨지고 대학 간판과 직장의 명함으로 내 가치가 매겨지는 시대였기 때문에, 기성세대들이 정해놓은 그 경로를 따라 남들보다 빨리 가기 위해 경쟁룰렛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 그러한 가치관과 교육을 주입받고 자란 지금의 우리 어른들 역시 자녀를 똑같은 방식으로 키우려고 룰렛 경향이 강한 것 같아.
물론 엄마 역시 그랬고 말이야. 엄마가 너를 장애의 틀에 가둬놓고 네 가능성과 잠재력을 폄하했던 것 역시 엄마가 기존에 갖고 있던 사고의 틀에 갇혀 있었기 때문인 거지.
그런데 세상은 믿기지 않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어. 이미 AI가 인간의 지식을 대체하고 능가한 지 오래고, 머지않아 현재 존재룰렛 직업의 47%가 AI 및 자동화로 인해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연구 결과도 있어(주14). 서울대 연구팀의 보고서에 예측한 미래 사회의 계급을 보면 그동안 우리가 추구해 왔던 좋은 회사의 직장인, 전문직, 자영업자들이 사회의 가장 낮은 프레카리아트 계급으로 전체 인구의 99.99%를 차지한다고 되어있어(주15).
즉 우리가 지금 열심히 달려가는 경로가, 미래 사회에서는 더 이상 성공적인 인생과 행복을 보장해주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말이야.
뿐만 아니라, 근래 들어서 급증하고 있는 청소년 범죄율을 보면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 룰렛 방향이, 지금껏 고수했던 경로 말고 어디로 향해야 룰렛지에 대해 한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아.
소년범죄의 피의자 연령이 점점 낮아지고 있어서 촉법소년에 대한 논의가 확대되고 있고, 또 살인, 강도, 성범죄와 같은 강력 범죄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고 해. 게다가 요즘에는 휴대폰 및 미디어의 영향으로 사이버범죄나 도박, 마약에 관련한 범죄도 많아졌어.
아무런 이유 없이 사람을 폭행하고 심지어 살인까지 저지르고도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 청소년의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 전체가 가진 윤리 의식에 심각한 결핍이 있다는 증거 아닐까? 어쩌면 ‘기능의 결핍’보다 이러한 윤리나 도덕의식의 부족, 즉 ‘정신의 결핍’이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청소년의 심각한 범죄율이 늘어나는 배경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정환경의 불안정과 사회적 학업적 스트레스, 그리고 인터넷과 미디어의 영향이 크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어. 세상이 무섭게 변화하고 있는데, 그 과도기를 거치는 청소년들이 제대로 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어른들의 방치 혹은 압력으로 인해 정신의 결핍을 갖게 된 건 아닐까 걱정스럽기도 해.
그래서 엄마는 내가 먼저 올바른 정신을 가진 어른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했어. 너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어린이들이 앞으로 살아가야 할 미래에 어떤 준비가 필요하고 어떤 올바른 의식을 가지고 있어야 룰렛지 공부하고 함께 만들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해.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껏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낡은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더 이상 공부를 잘한다고, 지식이 많다고 성공하는 세상이 아니라는 건 명확한 사실이니, AI가 따라 할 수 없는 인간만이 가진 고유한 특성이 무엇일까 고민해봐야 해.
그건 아마도 타인과 감정과 경험을 이해하고 공유하는 공감능력, 남과 차별화된 나만의 아이디어를 구현해 내는 창의성, 이성적 논리적 사고를 초월한 직관력,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윤리 의식 같은 것들이 있을 거야.
기존의 틀에 너를 가둔 채 왜 남들과 똑같지 않느냐고 조급해했던 룰렛는, 오랜 시간 룰렛를 가두고 있던 틀을 깨고 나오려고 해. 룰렛가 먼저 이 틀을 깨고 나가면 너 역시 저 넓고 무한한 가능성의 세상으로 풀려나게 될 거야.
엄마는 너의 현재 부족한 기능을 토대로 네 미래까지 미루어 예측해 버리는 우를 범했어. 지금 느리니까 미래에도 느리고, 따라서 사는데 어려움을 겪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측이지. 하지만 세상이 정말 이렇게 예측한 대로 정확하게 흘러갈까?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우리가 사는 현실이 선형적인 인과관계에 의해서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비선형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사건, 즉 블랙 스완의 영향 아래에 있다고 했어(주16). 세상에 흰 백조만 존재한다고 생각해 왔는데 어느 날 갑자기 까만 백조, 즉 블랙 스완이 나타난 거야. 사람들은 처음에 블랙 스완을 두고 괴물이라며 받아들이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결국 익숙해졌고 블랙 스완은 새로운 기준이 되어버렸지.
이처럼 사회의 커다란 변화는 블랙 스완과 같은 예상치 못한 사건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기존의 경험과 데이터로 미래를 예측하기가 힘든 거야. 단순히 원인과 결과의 형태로서 사회 현상을 설명룰렛 것 역시 위험한 일이지.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지만 갑작스러운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엄청난 변화를 겪었던 것도 블랙 스완의 예라고 할 수 있어.
탈레브는 세계를 극단의 왕국과 평범의 왕국으로 나누어서 바라보았어. 평범의 왕국은 정규분포 안에서 움직이는 일상적이고 안전한 세상이야. 이 세계에서는 큰 변화도 없고 기존의 틀로도 어느 정도 설명과 예측이 가능하지. 이곳에 속룰렛 사람들은 단적인 예로 말하면 정상 발달 범주에 속룰렛 사람들일 거야.
하지만 극단의 왕국은 정규분포의 양 끝단에 위치한 획기적인 사건들, 즉 블랙 스완이 일어나는 세계야. 불확실하고 불안정하며 기존의 틀로는 설명도, 예측도 불가능하지. 정상 발달 범주 밖에 존재룰렛 양극단의 사람들이 여기 속하겠지.
이 세상을 획기적으로 변화시키는 사람들은 바로 이 양극단에 속룰렛 사람들이야. 검은 백조가 나타나 세상의 기준을 바꾸어버린 것처럼 말이야. 역사상 세상의 혁명을 일으킨 사람들을 생각해 보렴.
아인슈타인은 5살 때까지 말을 못 했고 학창 시절 선생님들은 그가 지적 능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했어.
에디슨은 어릴 적 ADHD로 학교생활에 적응을 못했고 심지어 ‘학습이 불가능한 아이’라고 평가되었지.
윈스턴 처칠 역시 학창 시절 말을 더듬고 성적도 좋지 않았지만 탁월한 연설 능력과 리더십으로 영국을 이끈 지도자가 되었어.
혁신의 아이콘 스티브 잡스는 학창 시절 문제아였으며, 일론 머스크는 자폐 스펙트럼 장애 진단을 받은 것으로 유명하지.
앞서 말했듯, 너희가 살아갈 앞으로의 세상은 더욱더 큰 불확실성 속에서 어떤 블랙 스완이 나타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극단의 왕국일 거야. 그 극단의 왕국 속에서 세상의 획기적 변화를 일으키는 주인공들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양극단에 위치한 ‘조금 남다른’ 사람들이겠지.
스텔라, 네가 바로 그 블랙 스완이 될 수 있단다.
엄마는 이러한 극단과 불확실성의 측면에서 너를 바라보는 관점을 다시 세우려고 해.
지금껏 살펴본 네 가지 측면- 기준, 기능, 시대, 그리고 극단과 불확실성-에서 엄마는 지금껏 가져왔던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으로 너를 바라볼 거야.
너를 가두고 있던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훨훨 날아가도록 너를 풀어줄 거야.
스텔라, 너만의 기준과 올바른 정신을 가지고 이 불확실한 세상에서 네 꿈을 펼치는 블랙 스완이 되렴.
룰렛는 그런 너를 늘 응원할게.
주1: 경제적, 정신적으로 자립심이 부족하여 부모에게 의존하려는 젊은 세대를 가리키는 말
주2: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 학생도 아니고 직장인도 아니면서 직업훈련도 받지 않는 근로 의욕없는 청년 무직자를 가리키는 말
주3: 특정한 직업 없이 돈이 필요할 때마다 임시로 일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
주4: 하워드 베커, 아웃사이더
주5: 정신 장애 진단 및 통계 편람(DSM)
주6: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 (2013).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5th ed)
주7: 네이버 사전
주8: Clifton, D. O., & Harter, J. K. (2003). Investing in Strengths. Gallup Press.
주9: 갤럽 프레스, 위대한 나의 발견 강점 혁명
주10: Augmentative and Alternative Communication. 보완대체의사소통. 말(구어)을 대체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의사소통을 룰렛 방법
주11: 정유선,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주12: 의수 화가 석창우
주13: 제프리 테이트
주14: 정유선, 나는 참 괜찮은 사람이고 싶다
주15: Carl Benedikt Frey & Michael A. Osborne (2013). The Future of Employment: How Susceptible are Jobs to Computerisation?
주16: 유기윤, 김정옥, 김지영, 2050 미래사회보고서
주17: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 블랙 스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