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단골집이 되어 주시겠습니까?
이삿날엔햄케이슬롯지.
P의 여행이란 원래 그렇게 아슬아슬하냐고. 출국을 일주일이나 앞두고 호텔 예약을 마쳤다며 즐거워하는 제게 그가 물었습니다. 보통은 이틀 전, 때때로 당일까지 숙소 고르는 게 익숙한 저는 오히려 몇 달 전부터 발 동동 구르는 J의 모습이 의아한 걸요. ‘그때 가서 무슨 일이 생길 줄 알고? 맘이 어떻게 바뀔 줄 알고?’
뉴욕에서의 첫 일주일은 월 스트리트에 있는 호텔에서 지냈습니다. 계속 이 호텔 저 호텔 전전하며 여행자의 삶을 만끽해 볼까도 했지만 12월 홀리데이 시즌의 맨해튼 호텔 숙박비는 무시무시하더군요. 주말에는 하루 백만 원이 우습게 넘어갔습니다. 다행히 에어비앤비를 통해 타임 스퀘어 근처 헬스 키친에 있는 낡은 아파트를 빌렸어요. 한 달에 오백만 원이 넘었지만 뉴욕에선 가성비 숙소가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집을 꽤 좋아했습니다. 영화배우 출신 집주인의 터치가 곳곳에 느껴지는 공간이 꽤나 아늑했어요. 언제든 타임 스퀘어에 갈 수 있었던 것도 그렇고요.
새 숙소에 대강 짐을 풀고 나니 자연스럽게 배가 고팠습니다. 머릿속엔 짜장면이 가득했지만 맨해튼 한복판에서 한국식 짜장면을 기대할 수 있나요. 대신 동네 맛집을 찾았습니다. 메뉴는 당연히 케이슬롯. 당연히 집 근처에 크고 작은 케이슬롯집들이 많았습니다. 타임 스퀘어 쪽에는 관광객 대상 맛집들이 즐비한데 서너 블록만 넘어와도 전형적인 동네 식당들로 분위기며 가격대가 확연히 달라지는 것이 재미있더군요. 그중 적당한 가격에 평이 좋단 이유로 선택한 집이 베어케이슬롯 헬스 키친 점이었습니다.
주소 : 366 W 46th St, New York, NY 10036, United States (헬스 키친 점) |https://maps.app.goo.gl/zyZLurs9mJhUgGzp6
메뉴 : $16.95 (슈프림)
홈페이지 :https://bareburger.com/|https://www.instagram.com/bareburger/
“우리의여정은음식그이상입니다.우리는도시에서가장훌륭하고고품질의유기농,친환경케이슬롯를만들고있습니다.뜨거운패티에서생기넘치는야채까지,한입한입풍미있는모험을이야기합니다.”
2009년에 오픈한 베어케이슬롯는 케이슬롯의 맛 못지않게 자신들의 행보를 자랑합니다. 유기농 식재료로 만든 친환경 음식, 지속가능성에 대한 고민 등을 곳곳에서 내세우고 있어요. 그것이 뉴욕과 뉴저지, 오하이오, 코네티컷 주에 30개 이상의 매장을 보유한 이 브랜드를 그저 그런 프랜차이즈와 달라 보이게 만듭니다. 맥도널드, 케이슬롯킹 등으로 대표되는 공장형 케이슬롯와 수제 케이슬롯 사이에 위치한 느낌이랄까요. 맨해튼 내에도 여섯 곳의 매장이 있으니 접근성으로도 그들에 뒤지지 않습니다. 제가 방문한 식당들 중 상당 수가 케이슬롯도 파는 곳이었지만 이 집은 케이슬롯가 중심인 식당이라는 것도 마음에 들었어요. 소고기 패티뿐 아니라 바이슨(아메리카들소), 엘크(사슴) 고기로 만든 케이슬롯 메뉴도 구비하고 있는 것에서 그들의 진심이 잘 드러나죠. 물론 비건을 위한 대체육 케이슬롯도 있습니다. 케이슬롯 메뉴만 20개 가까이 되고 번, 패티, 채소, 소스까지 직접 골라 나만의 케이슬롯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케이슬롯 외에 샌드위치, 치킨, 타코 등의 메뉴가 있고 일부 매장은 맥주와 칵테일도 함께 판매합니다. 그래서인지 매장마다 분위기가 꽤 달랐어요. 저녁에 방문한 헬스 키친 점은 칵테일 바가 있는 펍이었는데 워싱턴 스퀘어 파크 근처 THE VILLAGE 점은 셰이크 쉑 같은 프랜차이즈 식당과 비슷했습니다. 온라인 예약과 배달, 픽업 서비스를 모두 제공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점포가 긴 대기 없이 바로 식사가 가능합니다.
집 근처를 구경하다 밤이 깊었습니다. 시간은 여섯 시가 조금 지났을 뿐이지만 뉴욕의 11월 해는 서울보다 더 짧았어요. 타임스퀘어에서 서쪽으로 한 블록, 집으로 가는 길에 베어케이슬롯가 있습니다. 늦은 밤 그냥 집에 들어가기 뭣한 날에 찾을 동네 단골집으로 이만한 위치도 없죠. 고작 수십 미터지만 타임스퀘어와는 확연히 분위기가 다릅니다. 낮고 오래된 건물들, 희미한 가로등마저 몇 없이 어둑어둑한 골목. 그래도 이 주변에 이름난 식당들이 꽤 있습니다. 이탈리아, 인도, 중국, 일본 그리고 한국 요리까지 다국적 맛집 골목이라 저녁 시간엔 사람들이 여기저기 줄을 꽤 서 있어요.
식당의 경험은 시간대도 중요하죠. 노란 조명에 화려한 칵테일 바, 주변으로 작은 나무 테이블과 의자들이 적당한 간격으로 놓여 있는 것이 영락없는 동네 펍 분위기였습니다. 그간 보아 온 케이슬롯 전문점의 모습이 아니라 입구에 있는 간판을 한 번 더 확인했습니다. 혹 입구를 헷갈린 것이 아닐까 하고요. 나중에 확인한 바 1,2층을 모두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예약 없이 방문했지만 한창때를 앞둔 시간이라 매장은 비어 있었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건넨 직원은 테이블과 바 중 어느 쪽이 좋으냐 물었습니다. 저는 바에 앉겠다고 답했고요. 혼자 방문할 때는 테이블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것보다 바에 앉는 것이 마음이 편하더군요. 바텐더와 대화를 나눌 수도 있고요.
식당 내부 공간에서 특출 난 무언가는 찾지 못했습니다. 그저 편안한 분위기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도록 적당히 꾸며 놓았달까요. 점포 수가 많은 식당에서는 아무래도 효율을 따지기 마련이죠. 그보단 친절한 직원들의 응대가 좋은 기억으로 남았습니다. 바텐더는 제가 계산까지 끝낸 후에야 제가 쓰는 라이카 카메라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다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여행, 한국, 헬스 키친, 엘크 패티 등에 대한 얘기들을 나누고 있으니 정말 동네 단골집이 생긴 기분이었어요.
케이슬롯 전문점다운 화려한 라인업을 갖추고 있습니다. 메인은 유기농 소고기 패티로 만든 케이슬롯들입니다. 버몬트주 셸번에 있는 버몬트 컨트리 팜에서 항생제, 호르몬제 없이 초원 방목 방식으로 키운 소의 고기를 사용하는 것이 이 집의 자랑입니다. 패티는 브리스킷, 척, 숏 립 등 여러 부위를 섞어 패티로 만든다고 합니다. 살코기와 지방의 비율은 8:2. 업랜드(12화 업랜드, 치즈카지노 꽁 머니)의 케이슬롯 이야기에서도 나온 최적의 조합이죠. 유니크 케이슬롯에는 바이슨, 엘크 고기로 만든 케이슬롯 메뉴가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맛 볼 수 없는 메뉴라 인기가 있다고 합니다. 특히 엘크 고기 패티가 맛있다고 하는데 아무래도 좀 망설여져서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대표 메뉴인 슈프림 케이슬롯는더블치즈 케이슬롯에 감자 튀김과 양파 튀김을 넣은 것이 특징입니다. 쉽게 말해 케이슬롯 세트에 나온 튀김을 케이슬롯 안에 넣고 한 번에 먹는 것이죠. 저는 좋아하지 않습니다만 간혹 그런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슈프림 케이슬롯의 가격은 16.95달러. 패티를 와규로 변경하면 3달러가 추가됩니다. 그 외에도 번 교체, 베이컨 추가 옵션들이 있습니다. 각 메뉴에는 예상 칼로리가 적혀 있는데 이것도 다른 식당에서 볼 수 없던 것이라 흥미로웠어요. 옵션을 잔뜩 추가한 슈프림 케이슬롯 하나가 약 1600kcal. 거기에 콜라나 쉐이크까지 마시면? 새삼 미국놈들 대단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모양이 꽤나 근사합니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별 것 없는데도 한 데 모아 높이 쌓아 올리니 특별한 음식을 받는 기분이었어요. 구성은 더블 패티와 충분히 녹아 흘러내린 체다 치즈, 삐져나온 양상추, 매끈한 브리오슈 번 그리고 감자와 양파 튀김입니다. 보기에도 바삭해 보이는 튀김을 케이슬롯 안에 넣은 것도 모자라 뚜껑 위에도 올렸습니다. 가장 위에 있는 양파를 세로로 올려 케이슬롯가 두 배쯤 커 보이도록 연출한 것이 재미있죠.
다음으로 제가 주목한 것은 접시에 흥건한 육즙이었습니다. 소고기 품질에 힘을 준 만큼 패티에서 나온 육즙이 빵을 타고 흘러내려 접시에 고일 정도로 풍부했습니다. 겉면을 바싹 구운 스매시 케이슬롯와는 달리 겉과 속을 고루 익혀 식감이 부드러웠고요. 굳이 마이야르 반응에 기댈 필요 없는 좋은 고기라는 자신감일까요. 다만 각 패티의 양이 4온스 정도로 작아서 더블 패티라도 그 존재감이 압도적이진 못했습니다. 오히려 싱글 케이슬롯였으면 아쉬웠을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브리오슈 번의 쫄깃한 식감과 강한 곡향을 좋아해서 그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특출 난 개성이 있다기보단 선호도 높은 재료를 좋은 재료들로 만든 케이슬롯였어요. 우리 어머니가 콤비네이션 피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가장 먼저 케이슬롯 위에 올린 양파 튀김을 먹고 맥주 대신 진저에일을 시킨 것을 몹시 후회했습니다. 바삭한 식감도 식감이지만 시즈닝이 짭짤하게 되어 있어서 맥주 생각이 절로 나더라고요. 케이슬롯를 먹는 동안에도 그랬습니다. 그 안에도 감자튀김과 양파 튀김이 들어 있으니까요. ‘아, 그래서 걔들이 감자튀김을 케이슬롯 안에 넣어 먹었구나.’
튀김의 바삭한 식감을 제외하면 케이슬롯는 매우 부드럽습니다. 입 안에서 저항 없이 찢어지는 브리오슈 번, 음료가 필요 없는 육즙 가득 패티, 잘 녹아 소스가 되어버린 치즈. 클래식 치즈케이슬롯가 줄 수 있는 즐거움을 최대한 끌어올리려는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다만 튀김을 올린 것에 호불호가 갈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장점이라면 식감이 다채롭다는 것. 양상추가 두어 장 있긴 했지만 나머지 재료들이 부드러운 것들 뿐이라 튀김이 없었으면 씹는 재미가 없었을 것 같아요. 마치 감자 번으로 만든 스매시 케이슬롯처럼. 걔들은 조금만 힘주면 작게 뭉쳐질 정도로 연약하거든요. 단점은 튀김의 맛과 향에 유기농 소고기 패티와 체다 치즈의 매력이 가려진다는 점입니다. 소스와 베이컨의 존재감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강했어요. 그래서 나중엔 케이슬롯를 펼쳐 놓고 튀김을 따로 먹은 뒤 나머지 케이슬롯 재료들을 먹었습니다. 좋은 고기를 충분히 즐기기 위해 담백한 채소 튀김을 넣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북동에 있는 ‘너의 냠냠 케이슬롯’의 담백한 연근 튀김이 떠올랐어요. 물론 이 동네 사람들의 취향에 맞지 않겠습니다만.
그럼에도 동네마다 있는 케이슬롯집에서 이 정도 수준의 패티를 맛볼 수 있다면 충분히 단골이 될 용의가 있습니다. 하지만 튀김은 역시 따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 제 결론이라다음 방문 때는 스탠더드 케이슬롯를 먹어 보려고요. 아니면 사슴 고기 케이슬롯에 도전해 볼까요?
번 : ★★★
패티 : ★★★
구성 : ★★★☆
가격 : ★★★☆
분위기 : ★★★
튀김은 그냥 따로 먹읍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