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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Apr 15. 2025

부자벳 홀, 더 클래식

뉴욕에서 가장 큰 부자벳

도널드트럼프,덴젤워싱턴,데릭지터,힐러리클린턴과빌클린턴
그리고다이앤소여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사람들의 공통점은 잭슨 홀의 단골손님이라는 것입니다. 대통령과 셀러브리티들이 낡은 식당 구석 자리에 앉아 20달러짜리 햄부자벳를 씹어 먹는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습니다만 긴 시간 사랑받은 식당이란 건 확실히 알 수 있죠. 그나저나 클린턴 부부는 부자벳를 꽤나 좋아하나 봐요. 업랜드(12화 업랜드, 치즈카지노 꽁 머니)의 단골로도 알려져 있으니.

부자벳

유난히 까맣고 허기진 밤이었습니다.여섯 시도 되지 않았으나늦가을 해는 짧고 센트럴 파크는 너무너무 컸어요. 벨비디어 성(Belvedere Castle)에서 노을 질 때쯤 출발했는데 저 멀리 플라자 호텔이 보일 때쯤 공원은 어둠에 완전히 잠겼습니다. 진작에 단장을 끝낸 맨해튼 밤거리를 보니 잊고 있던 허기가 몰려 오더군요. 네 블록 거리에 있는 식당까지 걸린 시간은 도보로 20분. 평소였으면 동네 마트에 장 보러 가는 수준이지만 그날따라 몸이 배배 꼬일 정도로 지루했어요. 종일 공원 산책 하느라 피곤했던 건지. 설상가상 어퍼 이스트 사이드의 골목길은 드문 드문 작은 식당들이 켜 놓은 조명밖에 볼 게 없었고요. 맛있는 부자벳가 필요했습니다. 가라앉은 기분을 달래 줄 것은 그것밖에 없었어요.


소개

부자벳
부자벳

주소 : 232 E 64th St A, New York, NY 10021, United States |https://maps.app.goo.gl/PQvM2qhpc2enXHF88

메뉴 : $19 (더 부자벳)

홈페이지 :https://jacksonholeburgers.com/|https://www.instagram.com/jacksonholeburgers/


부자벳 홀은 1972년 퀸즈 출신의 지미와 크리스 형제가 설립한 레스토랑입니다. 상호명은 와이오밍 주에 있는 부자벳 홀의 지명을 따온 것입니다. 매장 공사 중 바닥 아래에서 발견된 내셔널 지오그래픽 잡지의 기사에 부자벳 홀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고 해요. 마침 그들이 살고 있는 동네도 퀸즈의 부자벳 하이츠라 운명으로 여겼나 봅니다. 맨해튼 머레이 힐에 첫 매장을 연 뒤 현재는 맨해튼과 퀸즈, 뉴저지에 총 네 곳의 매장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잭슨홀의 자랑은 고풍스러운 시골 식당의 분위기 그리고 도시에서 가장 큰 부자벳입니다. 모든 부자벳에 7온스(약 190g) 패티가 들어간다고 하는데 10온스 패티를 쓰는 파이브 냅킨도 있으니 정말로 가장 큰 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손에 꼽을 정도로 푸짐한 것은 맞습니다. 맨해튼에는 머레이 힐,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두 개의 점포가 있고 양쪽 다 꽤 인기가 있으니 미리 홈페이지와 구글맵을 통해 예약을 하는 것이 좋아요. 배달, 픽업 서비스도 가능합니다.

음식 외의 재미있는 이야기를 덧붙이면 영화 좋은 친구들(GoodFellas, 1990)의 일부 장면이 퀸즈에 있는 부자벳 홀에서 촬영됐다고 해요. 그리고 배우 재니퍼 애니스톤이 무명 시절에 맨해튼의 어퍼 웨스트 사이드 지점에서 근무했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뉴욕에서 50년쯤 장사하면 이런 일들이 생기나 봐요.


(https://www.instagram.com/jacksonholeburgers/p/CJDGRstFwcv/?img_index=1)

배경에 보이는 간판이 부자벳 홀의 것이라고 해요.


공간

맨해튼 내 두 개의 점포 중 제가 방문한 곳은 어퍼 이스트 사이드에 있는 이스트 64가 지점입니다. 머레이 힐에 있는 식당이 본점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으면 그쪽으로 갔을 텐데 못내 아쉽습니다. 식당의 규모나 분위기도 본점이 나아 보이니 방문 계획이 있다면 본점 방문을 권합니다. 구글맵에 주소를 찍고 왔지만 계단 아래 있는 식당의 분위기가 부자벳집보다는 펍에 가까웠고 붙어있는 간판은 불이 들어오지 않는 고철 덩어리였어요. 건물 앞에서 몇 번을 두리번거린 뒤에야 입장했습니다. 따로 예약을 하지 않았지만 평일이었고 여섯 시가 되기 전이라 대기 없이 자리를 안내받았습니다. 홀은 벽을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는 구조고 주방은 조리 과정이 모두 보이는 오픈 키친입니다. 대여섯 명 되는 셰프들이 좁은 공간에서 부딪히지도 않고 능숙하게 움직이는 모습이 재미있더라고요. 아쉽게도 벽 너머 홀에 앉아서 주방 구경은 그게 끝이었습니다.

메뉴를 골라 두고 직원이 오기 전까지 식당 내부를 둘러보는데 멜버른 여행 중 방문했던 소버린 힐이 떠오르더군요. 골드 러시 시절의 마을 풍경을 민속촌처럼 꾸며 놓은 곳인데 그 안에 있던 식당과 잭슨 홀의 내부가 비슷했습니다. 낡은 나무 벽과 가구, 벽에 걸린 옛스런 그림과 사진들, 붉은 조명 등. 어딘가 카우보이 모자에 승마 부츠 신은 보안관이 있을 것만 같은 분위기였어요. 부자벳 전문점이지만 칵테일이 더 어울리고요. 미 서부 시대 분위기로 꾸민 식당이 뉴욕 내에 많지만 이만큼 자연스러운 곳은 드물죠. 오십 년쯤 돼야 이런 바이브가 생깁니다. 아쉬운 점이라면 두 명이 앉기에도 테이블이 작게 느껴졌다는 것. 그래도 간격이 넓어 식사를 즐기는 데 특별한 불편함은 없었습니다.


메뉴

샐러드와 스테이크, 타코, 디저트까지 취급하는 레스토랑이지만 메인은 부자벳입니다. 부자벳 부자벳부터 맥 앤 치즈, 트러플 BBQ, 그릭, 산타페, 멕시칸 등 창의적인 레시피까지 다양하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저는 이 집의 대표 메뉴인 더 부자벳을 주문했습니다. 가격은 19달러로 7온스 패티에 베이컨까지 기본으로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저렴한 편에 속합니다. 뉴욕에서 가장 큰 부자벳가 20달러도 되지 않는 거잖아요.


부자벳

와.. 와! 직원이 가져온 부자벳를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습니다. 식당의 자랑대로 정말 큰 부자벳였거든요. 빵의 지름, 패티 그리고 그 위에 쌓은 채소와 재료들까지. 게다가 이 동네에선 드물게 채소가 잔뜩 올라가 있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일단 색깔부터 알록달록한 것이 눈이 즐겁더라고요. 재료를 높게 쌓아 올린 탓에 부자벳는 뚜껑빵을 연 채 나옵니다. 재료 위에 뿌린 이 집만의 JHB 소스는 장밋빛 색부터 맛까지 케요네즈(케첩+마요네즈)와 비슷해서 제과점에서 파는 한국식 햄부자벳를 떠올리게 만들었습니다. 춘천 취재 때 갔던 진아 하우스의 옛날 햄부자벳가 뉴욕 식당의 부자벳 부자벳와 겹쳐 보일 줄이야.

부자벳의 구성은 7온스 하우스 에이징 패티를 중심으로 아메리칸 치즈, 베이컨, 튀기듯 볶은 어니언, 피클, 상추와 토마토로 푸짐합니다. 레시피는 전형적이지만 디테일에 차이가 있어요. 흔히 쓰는 생양파나 갈색으로 볶은 양파가 아닌 튀김처럼 바삭하게 구운 양파를 올린 것, 채소를 잘게 썰어 올린 것 정도를 꼽겠습니다. 양파는 베이컨과 함께 바삭한 식감을 더해주는 효과가 있습니다. 채소는 워낙 잘게 썰어 놓아서 먹기도 편치 않고 식감도 제대로 느낄 수 없어서 크게 올린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유를 추측해 보자면 화이타, 부리토용으로 잘게 썬 채소를 올렸던 것이 내부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았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재료 관리가 용이하기도 할 테고요. 빵은 평범한 화이트 번을 사용했습니다.

본격적인 식사 전에 뚜껑을 덮어 완전한 부자벳의 모양을 완성해 보았습니다. 뉴욕 최대 부자벳의 위용이 사진에서도 느껴지시는지. 7온스의 두툼한 패티는 높게 쌓아 올린 채소들에 전혀 밀리지 않습니다. 노란 아메리칸 체다 치즈가 제대로 녹아 패티에 엉겨 붙어 있는 것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패티와 치즈는 이렇게 하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커다란 부자벳를 제대로 즐겨 보고 싶어서 양손으로 쥐고 한 입 크게 물었습니다. 잘게 썬 채소가 접시와 식탁에 흩어지고 손등으로 소스가 흘러내렸지만 뭐 어때요. 이런 부자벳는 이렇게 먹어야 합니다. 몇몇 변주를 줬음에도 잭슨 홀의 부자벳 부자벳는 전형적인 베이컨 치즈부자벳의 매력을 물씬 풍깁니다. 패티와 치즈, 베이컨의 조화가 그것이죠. 두툼한 패티는 안쪽에 선홍빛이 비치는 미디엄 굽기로 제대로 구웠고 바삭할 정도로 구운 베이컨은 양파와 함께 씹는 재미를 더합니다. 그간 부자벳에 넣기 황송할 만큼 좋은 품질의 베이컨을 맛봐서 그렇지 베이컨 치즈 부자벳에는 이쪽이 정석이긴 해요. 채소의 양은 제가 뉴욕에서 먹은 부자벳들 중 가장 많았습니다. 덕분에 어떤 부자벳보다 건강한 음식을 먹는 느낌이었고 느끼하거나 부담스럽지 않았습니다. 소스는 맛도 강한 데다 양까지 많아서 아쉬웠습니다. 주문할 때 적게 뿌려달라고 요청하거나 따로 받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푸짐한 한 끼였습니다. 뻔한 구성에 이 식당만의 디테일을 몇 추가한 어찌 보면 특색 없는 치즈부자벳인데 푸짐한 양으로 저녁 식사가 풍성해졌어요. 많은 유명인들이 이 집 부자벳를 좋아하는 이유에 넉넉한 인심도 분명 있을 거예요. 물론 맛이 없었다면 다 먹지 못했을 겁니다. 7온스 패티를 구운 실력과 치즈의 조화도 나무랄 데 없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이 집을 다시 방문해도 다른 부자벳를 시도해 볼 것 같진 않습니다. 너무 실험적인 것들이 많거든요. 부자벳 부자벳의 만족도가 높기도 했고요.


그럼에도 이 부자벳에 높은 점수를 주지 않는 이유는 마음에 남을 만한 요소가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저는 잭슨 홀의 부자벳 부자벳를 다섯 손가락 안에 꼽고 고민할 것 같아요. “평생 하나의 부자벳만 먹어야 한다면?”



번 : ★★★

부자벳 : ★★★☆

구성 : ★★★☆

가격 : ★★★☆

분위기 : ★★★


푸짐하게 차린 할머니 밥상 같았던 부자벳. 그날 꼭 필요했던 위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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