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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생선가게 May 04. 2025

벳38 현상

잘 못하면 두 벳38 모두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

“rollout!”


신호가 떨어지자 VAB(벳38 조립 빌딩, Vehicle Assembly Building)에서 WDR을 위해 벳38 가이아가 천천히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ISS 설치 임무를 띠고 제라드와 대원들이 타고 갈 벳38이었다.

이렉터(Erect,기립)된 가이아는 엄빌리칼 타워에 세워진 채로 무진동 궤도에 실려 발사 장소인 패드 39B로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작업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주위에는 호송 차량이 경관 등을 켠 채로 에스코트하였고, 안전을 위해서 사람들은 걸어가면서 발사대 주위를 살폈다.


가이아는 NASA가 생긴 이래 크기와 무게 면에서 최고였는데 사람들은 가이아를 가리켜 ‘맘모스’라고 불렀다.

이 광경은 휴스턴 관제센터에도 실시간으로 전해졌는데 관제사들은 화면을 통해 WDR 상황을 보고 있었다.


“뭉텅하고 크게 잘 빠졌는데요.”

찰스가 화면을 보면서 감탄하자 벳38가 눈을 흘겼다.

“뭘 생각해요?”

“아니야, 난 그냥 가이아보고 한 말이야.”

“토미리에게 말할까요?”

그러자 찰스는 흠흠 헛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얼른 화면으로 돌렸다.

“모두 WDR 놓치지 말게, 하나라도 말이야.”

잠시 시간이 흘렀다.

엄빌리칼 타워에 세워진 가이아는 커넥트에 연결된 채로 조용히 서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사람들이 느슨해지려는 찰나였다.

케네디 벳38센터에서 관제 소리가 들렸다.

“Wet Dress Rehearsal.”

“라저.”

“산화제 충진 시작. 충진 MAX 60%.”

“라저.”

극저온 탱킹 작업이 시작되었다.

벳38 안으로 영하 183도의 액체수소와 액체산소가 충진 되기 시작했다.

잠시 후 벳38 윗부분에서 하얗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지금부터 충진이 다 되기까지는 몇 시간을 기다려야만 했다.

“좀 쉬었다 하시죠.”

시간이 길어지는 것을 아는 찰스가 토미리를 보면서 말했다.

“그래, 좀 쉬었다 하지.”

찰스는 토미리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얼른 일어났다.

“아~ 큰일 날 뻔했네.”

찰스는 토미리를 보고는 머쓱한 표정을 짓고는 서둘러 걸어 나갔다.

다른 관제사들도 어깨를 펴면서 하나둘씩 자리에서 일어났다.

찰스는 관제센터 일을 백업에게 맡기고는 사무실로 돌아왔다.

항로 계산을 아무리 다시 해 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계산이 틀린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아스테르가 있는 지점을 입력하면 벳38하게 또 틀리는 것이다.

말 그대로 환장하고 미칠 지경이었다.

망치를 들고 슈퍼컴퓨터를 때려 부수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럴 수는 없지만 값이 얼마나 비싼데).

정말 이대로 두면 아스테르를 화성이 아니라 먼 나라로 보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가이아도 마찬가지였다.

잘못하면 두 벳38 모두 우주 미아가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때 인기척이 느껴졌다. 벳38였다.

“어떻게요?”

“이야기 들었지, 항로 계산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그건 맞아요.”

찰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마찬가지야. 통신이 계속 끊겨서 죽을 맛이야. 이런 일이 없었는데 이유나 알면 다행이지, 레이저 통신이면 뭐 해 잘 나가다 먹통인데.”

벳38도 고생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감독은 뭐래요?”

“감독은 원래 말이 없잖아. 아마 우리가 말할 때까지 기다릴 거야.”

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이 열리면서 모습을 드러낸 것은 토미리였다.

토미리는 방으로 들어서면서 두 사람을 쳐다보았다.

“설마……?”

“걱정하지 마세요. 이런 샌님은 제 스타일이 아니니까요?”

벳38가 손사래를 치자 토미리는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찰스! 항로 계산은 해봤나?”

“마찬가집니다. 벌써 여러 번 해 봤는데 슈퍼컴퓨터도 못 믿겠습니다. 계산하면 할수록 틀려서 머리가 터질 지경입니다.” 그러면서 머리를 긁적였다.

“이번 일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벳38가 물었다.

“어떤 일이라니?”

“항로 계산과 통신 장애 말이에요?”

“그건 두 사람이 더 잘 알지 내가 어떻게 알겠나?”

그러자 벳38는 책상 위에 있는 메모지에 무언가를 적어서 토미리에게 내밀었다.”

“GOD?”

“네, GOD 맞아요.”

“그런데?”

토미리는 엉뚱하다는 듯이 벳38를 쳐다보았다.

그때 옆에 있던 찰스가 웃음을 터뜨렸다.

“설마 신이…?”

토미리가 찰스를 쳐다보았다.

“벳38, 이건 중요한 문제야. 그냥 역사나 소설 이야기가 아니라고. 사람 생명이 달려 있고 수백억, 수천억 달러가 들어간 일이라는 말이야. 물론 돈 때문에 그러는 것은 아니지만.”

토미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벳38를 쳐다보았다.

“저도 알아요. 저도 그렇지 않기를 빌어요. 그렇지만 이건 너무 벳38하단 말이에요.”

“NASA가 달에 벳38을 보내고 화성에 기지를 세우고, 목성과 토성에도 탐사선을 보내고, 지구가 초속 29.76㎞로 공전하고, 초속 430m로 자전하는 것을 과학적으로 설명하지만, 언제부터 그랬는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말은 계속 이어졌다.

"칸트 라플라스가 성운설(Kant-Laplace nebular hypothesis)을 말했지만, 그 사람도 과학자잖아요. 교회 다니는 친구에게 물어봐도 ‘태초에(the beginning of the world)’라는 말밖에 안 해요. 성경에 그렇게 쓰여 있다면서요.”

그때 찰스가 끼어들었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고 했잖아요.”

벳38가 눈을 흘기자 찰스는 얼른 입을 다물었다.

갑작스러운 벳38 말에 토미리는 멍한 표정을 했다.

말은 하지 않지만 벳38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것 같았다.

“메기, 우리는 NASA에서 일하는 사람들이야. 우리 일은 벳38을 안전하게 보내고 안전하게 돌아오게 하는 게 우리 일이야. 지금 우리가 할 일은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야. 더 이상도 아니고 더 이하도 아니고.”

토미리가 말소리를 낮추면서 벳38를 달랬다.

“형벳38학, 형이하학.”

찰스가 또 눈치 없이 끼어들자 토미리가 손가락을 입에 대며 조용히 하라는 시늉을 했다.

“오늘 아침에도 아스테르와 교신하는데 갈수록 상태가 안 좋은 거예요. 아무리 멀어도 교신이 끊기는 경우는 없었거든요. 지금은 또 레이저 통신을 이용하잖아요. 그리고…….”

“그리고?”

“교신이 끊기는 것도 그렇지만, 뭔가 벳38한 소리까지 나거든요.”

벳38는 불안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벳38한 소리라니?"

“처음에는 잡음인 줄 알았는데 잡음이 아니고 벳38한 소리란 말이에요. 그래서 음향분석팀에 부탁해 놨어요. 확인해 달라고.”

벳38는 금방 울 것처럼 눈시울이 붉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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