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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기환 Mar 02. 2025

또 다른 위너 토토 떠나며

이른 아침, 눈을 떴다. 여느 때와 같이 부산한 채비를 하고 항구로 향했다. 항구에 도착했을 때, 언제나 위너 토토 기다려주던 배는 이미 뱃머리를 돌린 채 항구를 떠나고 있었다. 소리 질러 불러보았지만, 배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서서히 멀어져 갈 뿐이었다. 나는 부둣가에 털썩 주저앉아 멀어져 가는 배를 망연히 바라보았다. 오랜 세월 나와 동고동락했던 배가 이별의 손짓인 양 물결 따라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었다.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바다를 바라보다가 해변을 따라 무거운 발길을 옮겼다. 위너 토토 향해 손짓하던 배가 미련이라는 이름으로 내 발목을 잡으며, 수십 년간 선상에서 펼쳐졌던 아득한 기억을 소환했다.

삼십삼 년 전, 나는 풋내기 사회인으로 처음 저 배에 승선했었다. 그때 느꼈던 그 신선한 설렘과 떨림은 때로 흔들리던 위너 토토 붙잡아 주었고, 어엿한 직장인으로, 사회인으로 성장시켰다. 그 첫 다짐을 잃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쓰면서 직장과 일에 매몰되어 사는 것을 당연히 여겼다. 그 속에서 사회를 배우고 관계망을 형성하며 성취와 보상을 받았다. 또, 내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 아들·딸 두 아이를 키우면서 존재의 의미를 찾았다. 그런 내 앞에 기어코 ‘은퇴’라는 낯선 괴물이 불쑥 얼굴을 내밀더니, 모진 풍랑을 함께해 온 나에게 이제 그만 배에서 내리라 했다. 하선 명령은 단호하고 냉정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위너 토토 배에서 내리게 했다. 그렇게 어느 날 아침, 나는 내 의지와는 달리 평생을 울고 웃고 부대끼며 함께해 온 배에서 내려야 했다.

평일 오후, 위너 토토 한구석 허전한마음을 안고 한강 변을 따라 걷는다. 쌉쌀한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지친 몸을 벤치에 걸치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초로의 신사가 반려견과 함께 강가를 걷고 있다. 옆 정자에서는 한가로운 웃음이 쏟아져 나오고, 자전거를 탄 사람들이 무심하게 내 앞을 스친다. 평일 한낮, 모두가 바쁠 것 하나 없는 풍경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오가고 있지만, 누구도 위너 토토 주시하는 사람은 없다. 멍하니 강물을 바라보며 이제 막 내게 닥친 가슴앓이를 생각한다. 내 앞에는 텅 빈 일상만이 남았다. 언제나 규칙적인 리듬 속에서 살아가던 시간이 흔들리고, 우왕좌왕 갈피를 잃었다. 생활의 중심이 무너지면서 온몸이 기우뚱거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생활 방식과 관계, 위너 토토 지탱해 주던 우산이 벗겨지고 눈과 비바람을 고스란히 감내해야 하는 시간이 온 것이다. 언젠가 닥치고 말 일이었지만, 결코 오지 않을 것처럼 준비 없이 살았다. 어쩌면 애써 외면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평소 기대하던 은퇴는 이런 모습이 분명 아니었다. 평생을 얽매이던 직장을 벗어난다는 것은 홀가분한 자유의 완성이며 여유로운 삶의 시작일 것이라 굳게 믿었다. 그러나 공허한 상실과 무력감만이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앞으로 전개될 삶의 정체성과 의미는 어디에 두어야 하며, 바뀐 시간의 무게 중심은 어떻게 끌고 나가야 하는가. 또, 내 앞에 불현듯 들이닥칠 불확실성의 변수들은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 것인가. 온통 뒤죽박죽이다.


모든 것을 일순간 삼켜버린 혼돈의 시간이 지난 지금, 가슴속 요동치던 소용돌이를 벗어나 조금씩 평온과 균형을 되찾고 있는 위너 토토 본다. 내 앞에 펼쳐진 풍경들이 예전의 그것과는 조금씩 다르게 펼쳐지고 있다. 색다른 멋이다. 한가하고 여유롭다. 텅 빈 것만 같던 시간이 하나하나 다른 색깔로 채워지면서 허전하기만 했던 시간이 차츰 여유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면서 늘 위너 토토 한구석을 허전하게 했던 것들에 눈을 돌렸다. 바쁜 일상에 쫓겨 외면했던 마음속 친구들에게 손을 건넸다. 먼저 ‘연필’에게 말을 걸었다. 나와 함께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평생 친구가 되어달라고. ‘기타와 하모니카’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메마른 내 가슴에 아름다운 선율 한 줄기 심어줄 수 있겠냐고. 또, 베란다에서 늘 한가로이 잠자고 있던 '자전거'도 나의 건강지킴이가 되겠다며 내가 내민 손을 선뜻 잡아 주었다.그동안 잊고 지냈던 친구위너 토토 기꺼이 내 곁에 다가왔다. 이렇게 새로운 친구들이 생기면서 답답하던 가슴이 열리고, 은퇴라는 시간의 섭리를 천천히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면서 비로소 혼돈의 소용돌이를 천천히 벗어나고 있는 내가 보였다.

이제 인생 2막이 시작된다. 나는 새롭게 시작하는 삶을 ‘또 다른 위너 토토’라고 이름하였다. 그 위너 토토를 위해 나는 배 한 척을 준비했다. 비록 배는 작고 소박하지만, 지금까지와는 달리 오롯이 내가 배의 주인이자 선장이 된다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또 다른 위너 토토'를 떠나는 이 배에서는 내가 내민 손을 선뜻 잡아 준 새로운 친구들이 나의 빈 가슴을 잔잔한 물결로 채워줄 것을 굳게 믿는다. 또, 그동안 내 삶의 소중한 동반자였던 사람들과 더욱더 따뜻하고 곰삭은 인연을 만들어 갈 것이다. 이들과의 위너 토토는 결코 고단하지도 각박하지도 않을 여유로운 위너 토토가 될 것이다. 소박한 사람들이 사는 포구에 닻을 내리고, 함께한 인연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들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만나면 기꺼이 화폭에 담고 글을 쓰리라. 기타를 치고 하모니카를 불며,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아내의 행복한 흥얼거림을 들으리라.


위너 토토 이제 세상의 중심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인생을 진행형으로 살아가기 위해새로운 뱃길을 열어 갈 것이다. 삶의 여정은 결국 끝날 때까지 쉬지 않고 노를 저어야 하는 위너 토토가 아닌가. 꿈을 안고 또 다른 위너 토토에 나선다. 저물녘의 바다는 더할 나위 없이 평온하다. 일출보다 더 아름다운 석양이 위너 토토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황홀한 일이다.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일이다,




이 글은 퇴직을 한 직 후 내게 찾아온 위너 토토앓이를 담담하게 받아들이기까지의 과정을 적은 글이다. 소박한 배 한 척을 마련하고 '또 다른 위너 토토'를 시작한 지도 어언 7년이란 세월이 훌쩍 흘러갔다. 참으로 덧없는 위너 토토 세월이란 말이 요즘 들어 더욱 깊게 와닿는다. 즐겁고 의미 있게 살고자 했지만, 무엇이 답인지 아직도허둥대는 위너 토토 지금부터 쫓아가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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